"대전 감옥터 망루, 일제강점기 아닌 1971년에 설치"

3.1운동 100주년 기념 대전추진위, 대전 감옥 100년 심포지엄... 기록 재정비 필요성 지적

등록 2019.05.08 15:07수정 2019.05.0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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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감옥 망루 변천사 ⓒ 심규상

 

대전 감옥 설치를 보도한 관련 신문 기사 ⓒ 심규상

 
대전 감옥(현 대전 교도소 옛 터)에 남아 있는 콘크리트 망루의 건립시기가 애초 알려진 일제강점기가 아닌 1971년으로 확인됐다. 또 대전 감옥 설립 계획이 확정 날은 1919년 5월 8일로 나타났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대전추진위원회'는 8일 오전 10시 30분 옛 충남도청 본관 2층 소회의실에서 '대전 감옥 100년 기념, 대전시 근현대역사문화사업에 대한 평가와 제언'(사회 황성미 대전인권센터 사무처장)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팀장은 이날 '대전감옥 100년, 역사성과 제언' 주제 발표에서 대전 감옥 옛 터에 남아있는 '타원형 콘크리트 망루'가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 "국유재산대장(대전교도소,1978)을 보면 1971년 12월 20일 신설로 기록돼 있다"며 "당시 대전교도소 모서리 네 군데에 설치된 망루 중 하나가 확실하다"고 말했다.

대전시는 콘크리트 망루를 지난 2001년,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7호로 등록했다. 하지만 건립 시기를 일제강점기로 추정하는 등 정확한 고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망루 변천사도 흥미롭다. 대전 감옥의 초기 망루는 형무소 담 외부에 나무 초소였다. 1940년 이후 콘크리트 재질의 사각 기둥 망루로 교체됐다.

임 교육팀장은 대전감옥 신설 계획을 확정한 때를 '1919년 5월 8일'(조선총독부령 제86호 근거)이라고 못 박았다. 그 동안 신설 계획 확정 일시를 놓고 5월 1일설 등 여러 의견이 있었다.

대전 감옥 설치 계획은 1917년부터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장기수와 특수범죄 수형자를 수용하기 위해 대전본감 설치를 계획했다. 1918년 2월에는 조선총독부 사법부장관이 대전을 방문했고 그해 5월 경 약 3만 평의 감옥 부지 매수와 설계도 작성에 착수했다. 
 

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팀장 ⓒ 심규상

 
임 연구팀장은 대전시에 제안한 '대전 감옥 활용방안'에서 '기록물 재정비'를 요구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연합군에 쫓기는 북한군이 6000여 명을 무참하게 학살했다'는 기록을 '1500여 명의 우익인사'로 수정하라고 권고했지만 그대로다. 남아 있는 콘크리트 망루의 건립 시기를 '일제강점기'로 쓴 것도 수정대상이다.


그는 이밖에도 ▲ 우물을 대전시 문화재자료로 포함시킬 것 ▲ 감옥 터에 남아 있는 버드나무의 수령과 연혁 조사 ▲ 일제강점기와 민주화 운동 시기 대전 감옥 독립운동가의 삶과 행적 조사 ▲ 새로운 자료 발굴 ▲ 특정 단체(자유총연맹대전시지부) 점유하는 공간이 아닌 개방된 시민의 공간으로 변모 시킬 것을 제언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 대전 감옥 100년, 그 터에서 살아가는 생활자들의 기억 방법에 관하여(민양운 풀뿌리여성마을숲 공동대표) ▲ 대전시 3·1운동 100년 기념사업에 대한 평가와 제언 ▲ '옛 충남도청사 본관 활용 방안 놓고 무슨 일이 있었나'(안여종 대전문화유산울림 대표) 주제 발표가 함께 진행됐다. 
#대전 감옥 #대전형무소 #망루 #자유총연맹 #문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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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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