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만 4시간, 이 결혼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른의 가출] 결혼이라는 제도, 며느리라는 구성원의 모순

등록 2019.05.14 09:24수정 2019.05.1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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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가출을 할 때가 있다'는 말, 놀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한 말인 것 같아요. 하루쯤은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어른들은 어떨 때 집안이 아닌 집밖으로 향하게 될까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새벽3시 무작정 차를 끌고 집을 나섰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 ⓒmaxwellridgeway,Unsplash

 
새벽 3시, 식구들은 모두 잠들어 집안은 고요했다. 내 마음만 시끄러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이대로 아침을 맞이해서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가족들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하루 종일 돌봄 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답답했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문득 여기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동차 키를 들고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시동을 켜고, 핸들을 잡았다. 그리고 무작정 달렸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현실로부터, 일상으로부터, 엄마라는 역할로부터, 아내, 며느리라는 역할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리웠다. 회사일과 육아, 가사노동 사이를 종종거리며 오가는 내가 안타까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족을 위해서만 살다가 그냥 그렇게 죽게 될까봐 두려웠다. 새벽 3시, 나는 그렇게 집을 나와 2박 3일간 나 홀로 여행을 했다.

결혼이라는 제도, 며느리라는 구성원의 모순
 

사람은 많았지만, 내편은 없었다. 나는 혼자였다. ⓒ ⓒ Graehawk, 출처 Pixabay

 
이것은 3년 전 2박 3일간 가출했던 이야기다. 당시 나는 시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었다. 남편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돈이 없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복직을 앞두고 두 아이의 양육이 두 번째 이유였다. 당시 남편은 다른 사업을 구상 중이라 수입이 한 푼도 없었다. 나는 출퇴근 시간 왕복 4시간의 거리를 오가며 삶을 버텨내고 있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므로….

아이들 양육은 시부모님이 도와주셨지만, 그것은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이었다. 내가 집에 오는 순간부터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내 몫이었다. 주말에는 시부모님과 아이들을 포함해 6명의 식사와 설거지, 집안일이 내 몫이었다. 설거지를 하고 뒤돌아서 한두 가지 집안일을 하다 보면 다음 끼니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어머님이 평일에 가사 일과 육아를 전담했으므로, 주말에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가 왕복 4시간 거리의 회사를 오가는 것을 안쓰러워 하셨지만, 아들인 남편이 설거지하는 것은 마음 아파하셨다. 며느리의 힘듦은 머리로 이해해주는 것이었고, 아들의 힘듦은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머리와 마음의 거리는 서울과 부산의 거리보다 멀었다.

외로웠다. 며느리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인 가족 구성원이었지만, 마음으로는 묶일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집안의 아이 돌봄과 가사노동은 온전히 여성의 몫이었다. 대를 이어 어머님과 며느리에게 이어지는 노동. 처음엔 분노하다가 나중엔 지쳐갔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서면서 내가 착각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여자가 생계를 책임지면 남자가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해줄 것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누가 생계를 책임지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남자만 생계를 책임지라는 법 있나?', '한 사람만 생계를 책임지라는 법 있나?' 싶었다. 능력이 되는 누군가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가 생계를 책임질 때와 여자가 생계를 책임질 때 집안의 노동 강도는 달랐다. 사회는 여전히 엄마의 몫을 가장 많이 원했고, 남자는 여전히 그저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다. 육아와 집안 노동의 주 책임자는 여자였다. 더군다나 시부모님과 같이 산다면 남자들은 가사노동에서 '완벽하게' 해방이었다.

두 번째 착각은 시어머니도 여자니까 며느리를 이해해줄 거라는 거였다. 물론 이해는 해주었다. 하지만 그 이해 뒤에는 이런 말이 따라왔다. "힘들지? 그런데 어쩌겠니. 엄마니까, 여자니까." 어머님 세대에서 여자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당연하지 않았다. 나는 여자만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것에 분노했지만, 어머님은 분노하지 않았다. 나와 어머님의 생각 차이는 컸다.

어머님과 갈등이 생겼다. 그리고 그 갈등은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부부 싸움으로 이어졌다. 분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의 분가 계획에 시부모님은 반대였고, 남편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이유는 돈이었다. 돈이 부족했다. 돈이 부족해서 시부모님께 얹혀사는 처지였으니까.

한바탕 부부 싸움을 하고 나서 누웠는데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새벽 3시에 나는 집을 나서게 된 것이었다.

엄마, 아내, 며느리 이전에 나라는 여자

한참을 달려 바닷가에 도착했다. 해변에 차를 대놓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날이 밝고 숙소를 찾았다. 딱히 생각나는 곳은 없었다.

예전에 가족들끼리 놀러 와서 장기숙박을 하던 민박집이 생각났다. 그 민박집 아주머니의 푸근한 인심이 그리웠다. 그 민박집을 찾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정에 굶주렸던 것 같다. 아주머니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물었다.

"혼자 왔어요?"
"네……"


아주머니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방에 불을 넣어주고, 이불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조금 뒤에 라면과 김치, 버너와 냄비를 가지고 왔다.

"아침도 안 먹었을 것 같아서... 뭐라도 좀 먹으라고..."

그 말에 울컥,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아주머니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눈치로 아는 것 같았다. 왜 내가 혼자 왔는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아무 말도 묻지 않고 푹 쉬라며 나가셨다. 그렇게 라면과 김치를 받아 들고, 민박집 방 한 켠에 앉아 한참 동안을 울었다.

결혼 이후 밀렸던 설움들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라면으로 늦은 끼니를 때우고 바닷가 산책을 나섰다. 생각을 정리했다. 나라는 여자에 대해서, 결혼에 대해서, 그리고, 나는 왜 참지 못하고 분노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자유를 욕망하던 사람이었다. 혼자 여행하기를 즐겼던 사람이었다. 직장인이 되면서 타협할 것이 많아졌다.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나니 참고 견뎌야 할 것이 많아졌다. 엄마가 되고 나니 희생해야 할 것이 많아졌다. 내가 욕망하던 자유는 내 곁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다들 참고 사는데, 나만 이상한 건가? 내 삶은 왜 이 모양인가? 하는 온갖 생각들이 올라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2박 3일간 치열하게 고민했다. 나는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남들처럼 입으려 했다가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결혼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상적인 결혼생활, 우리가 잘 해냈다
 

가족은 희생이 아니라 같이 해내는 것이다 ⓒ ⓒ juanmount, 출처 Unsplash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남편과 살고 있다. 이혼은 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이혼은 '보류'였다.

3년 전 집으로 돌아온 날, 남편과 나는 밤새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혼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나에게, 남편은 이혼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자신도 노력해보겠다고, 아직 기회는 있다고. 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머님도 며느리의 돌발행동에 상처를 많이 받으셨다. 어머님을 이해한다. 어머님의 상실감이 무엇인지도 이해한다. 그 시절엔 당연했던 것이 지금은 당연하지 않다. 순종적인 며느리는 없다. 희생하는 며느리도 없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며느리를 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이해하지만, 어머님의 생각을 따를 수는 없었다. 생각이 달랐으니까. 결국 서로의 차이를 좁힐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분가를 결정했다. 담보대출과 마이너스통장, 퇴직금 일부를 상환해서 집을 마련했다. 멀리 가지는 못했다. 시부모님과 같은 아파트 단지였다.

남편과 이혼을 보류하고, 시부모님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이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이들 때문에 참을 수도 있지만, 그냥 참는 것이 아니다. 개선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무조건 참고 희생하며 눈물을 흘리는 존재여야 할까? 힘들지만 자신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존재여야 할까? 당연히 후자일 거라 생각한다. 물론 참고 희생하는 것이 엄마의 행복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그 엄마의 모습이 내 모습은 아니다. 그건 남들의 기준이지 내 기준이 아니다.

3년 전 그날,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서 많은 부분을 내려놓았다. 서로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았다. 내 옆의 배우자가 평생 함께 살 것이라는 보편적인 생각을 버렸다. 대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우리가 해야 할 약속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논의했다. 내가 고치고 노력해야 할 부분도 분명 있었다. 가족의 행복은 한 사람의 희생이 아니라 구성원의 협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군가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수정해야 한다.

지금도 여전히 남편과 나는 가끔 다툰다. 그날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다툼이 이혼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달라져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로 관점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노후에 '참고 살았다'는 멘트가 아니라, '우리가 잘 해냈다'로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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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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