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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귀신같이 알아보고..." 전주영화제의 '미소'

[인터뷰] 전주국제영화제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 전주영화제 이후를 말하다

19.05.08 18:10최종업데이트19.05.0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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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 ⓒ 이선필

 
상상력과 다양성의 보고. 올해로 20회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인, 영화팬 사이에서 그렇게 자리매김했다. 바꿔 말하면 주류라는 흐름에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대안과 실험의 장이 된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 2일 개막해 어느덧 후반을 맞이하고 있다.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를 영화제 기간에 만났다. 과거 여러 이유로 전주영화제가 위기를 겪던 때 정상화에 힘쓴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다른 프로그래머들과 함께 전주 만의 특징이 담긴 영화 선정은 물론이고,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백> <노무현입니다> 등의 다큐멘터리를 발굴 및 제작하며 대안, 다양성이라는 기치에 맞게 영화제를 운영 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관객들은 여전히 갈증이 있다"

김영진 프로그래머는 "계획했던 것들은 차질없이 진행 중인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영화제 기간 동안 그가 이충직 집행위원장과 함께 영화의 거리, 팔복예술공장 등을 오가며 부대행사와 게스트를 챙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묵직하게 행사를 운영하는 게 최근 전주영화제 사무국의 특징 중 하나다. 

"올해 몇 개 포인트가 있는데 첫 번째는 경계의 확대다. (영화의 거리뿐만 아니라) 20주년을 맞아 팔복예술공장에서 전시와 상영을 결합한 행사를 진행 중인데 굉장히 힘들게 준비했었다. 다행히 성황리에 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다. 또 뉴트로전주 섹션을 마련해 전주를 거쳐간 감독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것 역시 우리 역사성을 확인하는 셈이라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주요 행사 현장들. ⓒ 전주국제영화제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주요 행사 현장들. ⓒ 전주국제영화제

 
그는 지난해부터 시작한 아카이빙 기획, 한국영화 특별전 섹션도 언급했다. 2018년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명가인 디즈니 전작을 관객에게 소개했고, 올해엔 스타워즈 전편을 전시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를 두고 영화제가 상업성과 결탁한 게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김영진 프로는 "디즈니도, 스타워즈도 사실 비주류였다"며 말을 이었다.

"비주류 장르로 여겨졌던 애니메이션이 이젠 주류 중 하나가 됐다. 스타워즈 역시 SF인데 (창시자인) 조지 루카스 감독은 자신의 돈을 반납해가면서 그 시리즈를 키워왔고 이젠 신화적인 팬덤 문화가 되지 않았나. 그런 걸 보자는 것이지. 전주영화제를 통해 커리어를 시작하는 감독들이 많다. 대안 예술을 확보하고 있는 건데 (아카이빙 기획은) 전주가 주류의 모양을 바꿀 이들을 발굴하고 지원한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드리는 행사로 보면 된다.  

와일드 앳 하트는 21세기 중반까지 이런저런 시도를 했던 흥미롭고 모험적인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부문이다. 지금의 한국영화가 예산은 늘었지만 반복되는 기획으로 실패를 거듭하는 모양새인데 모험적 시도를 했을 때 흥행할 수 있었던 시대의 영화로 지금의 영화계가 자극받길 원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게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문에 관객들이 몰리는 걸 보며 여전히 관객들은 갈증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어두웠던 시절들

긍정적인 자평이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대로 현재의 한국영화는 100억대 예산이 심심찮게 등장하면서도 흥행에서는 주춤한 형국이다. 한 영화가 성공하면 비슷한 이야기와 소재의 영화가 이어지는 현상도 여전하다. 전주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국내 영화제가 끊임없이 신작과 새로운 영화인을 발굴하고 있지만 과연 이들이 한국영화 산업에 잘 정착해 새로운 동력 내지는 흐름을 바꿀 주역이 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게 우리나라 국제영화제가 당면한 딜레마고 돌파할 과제다. 전주영화제도 현재까진 절반의 성공이다. 전주영화제 타이틀을 걸고 개봉했을 때 어떤 흔적과 파장을 남기는 걸 의식했다. 전주영화제가 수입한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이 성공했고, JCP(전주시네마 프로젝트)라는 우리가 직접 영화를 기획 개발하는 사업도 시작했다.

또 천운이 따라서 <노무현입니다>가 대박이 났지. <자백> 역시 전주를 거치면서 흐름을 탔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었다. 찻잔 속 태풍이지만 상대적으로 전주가 다른 국내영화제 보다 훨씬 진일보한 흐름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이 흐름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데 그럼에도 관객들이 귀신같이 영화를 알아보고 있다는 건 긍정적이다. 그런 영화들을 다 알아보시고 연일 매진 행렬이다. 관객이자 미래의 창작자일 수 있는 그분들이 전주에서 자양분을 얻고 10년 후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주국제영화제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 ⓒ 이선필

 
현재 전주국제영화제는 독립영화센터 건립을 진행 중이다. 부산에 영화의 전당이 있다면 전주엔 다양성의 첨병인 독립영화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 김영진 프로그래머는 "김승수 전주시장의 의지가 확고하다. 현재 재원도 마련돼 있다"며 "부산처럼 규모를 지향하기보다는 내실을 알차게 해서 1년 내내 영화제를 한다는 느낌의 프로그램을 배치할 것"이라 전했다. 

내홍과 갈등, 전주영화제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지역 언론과 갈등 등으로 아픔을 겪던 시기가 있었다. 전주뿐 아니라 부산, 부천, 최근엔 여성영화제 등 국내 주요영화제가 조직 내 혹은 관계 당국과의 갈등을 겪으며 위축되거나 망가지기도 했다. 이에 대한 의견을 김영진 프로그래머에게 구했고, 그는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저 역시 선의로 해결하겠다고 전주에 왔을 때 엄청난 비난과 공격을 받았지만 공식적으로 얘기하진 않았다. 박 터지게 싸우더라도 내부의 갈등은 최대한 내부에서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세상에 문제없는 조직은 없다. 단기 스태프와 자원봉사자에 의존하는 시스템도 큰 차원에서 논의하며 바꿔나가야 한다. 상시 인력 순환 구조를 만든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개인 의견이지만 스태프들도 정예화돼야 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한다. (지난해 임금 대장 미작성 등 행정미비로 전주영화제도 고용노동부의 지적을 받았다-기자 주)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천안함 프로젝트>나 <자백>을 상영했을 때 많은 일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는데 그럼에도 영화제 자체엔 문제없었다. 당시 경위서만 두 달간 쓴 것 같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전주시에서 잘 받쳐줬다. 지금의 시장님도 엄호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전주가 그간 여러 갈등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지켜오면서 조직원들 역시 강해진 면이 있다. <자백> 상영 때 다들 위험하지 않냐고 했을 정도로 정치적 강박이 있었지만 잘 해내면서 어떤 자긍심이 생긴 것 같다. 위기를 잘 치러내면 그렇게 조직은 강해지는 것 같다." 


이런 흐름을 봤던 걸까. 지난 2일 개막식에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신임장관도 자리했다. 문체부 장관이 전주영화제를 찾은 건 박지원 전 장관 이후 20년 만이라고 한다. 김영진 프로그래머는 "일단 전주영화제 위상이 높아진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며 "영화계는 다양성이 보장되지 못하면 살 수가 없는데 그 화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 전주다. 주무 장관이 와서 현장 목소리를 듣는 건 당연한 일이다. 관심을 갖고 오신 건 중요한 이벤트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자백>을 이어 올해 뉴스타파의 <김복동>, 오마이뉴스의 <삽질> 등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도 꾸준히 발굴해 온 것에 대해 물었다. "롱텀(긴 기간의 탐사보도를 기본으로 한) 다큐멘터리인데 저널리즘의 본령을 생각하게끔 한다"며 김영진 프로그래머는 "<삽질>은 12년, <김복동> 역시 할머니에 관한 오랜 자료를 기본으로 했다. 사안의 핵심을 오랜 시간 끈질기게 파악하는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는 의미가 크다"고 답했다. 
 

"위기를 잘 치러내면 그렇게 조직은 강해지는 것 같다." ⓒ 이선필

전주국제영화제 김영진 전주 삽질 김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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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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