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사장님'은 어디에 있나요?

11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란 들고 청와대로 가려는 이유

등록 2019.05.09 20:58수정 2019.05.0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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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창원공장 정문 앞에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 윤성효

 
"비정규직이 노조한다고 탄압받고 해고되고 있습니다."
"아, 예... 근데 비정규직이 뭔가요?"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거리에서 선전전을 하면 이런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에게 비정규직이라는 개념 설정도 되어 있지 않았다. 고용이 보장되는 정규직이 대부분의 고용 형태였기 때문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을 통과시킨 이후 비정규직이 확대되었다. 정리해고법으로 정규직을 쉽게 해고하고, 그 자리에 파견법을 활용하여 비정규직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미미했던 숫자가 지금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1100만 명에 육박한다. 이제 비정규직이 뭐냐는 질문을 받지는 않는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형과 누나, 동생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 다들 느끼는 것이 있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같다는 점이다. 노조를 만들고 노동조건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한다. 그런데 누구도 사용자로 나서는 이가 없다. 형식적으로 소속된 하청업체에 교섭을 하면 사장들은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원청에서 해주지 않으면 여력이 없다"고 한다.

원청을 찾아가면 "당신들은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이다, 하청업체에 찾아가 봐라"며 탁구공 넘기듯 이리저리 책임을 떠넘긴다. 비정규직은 현장에서도 왠지 남의 일터에 온 손님 같은데, 노조 활동하는데도 천덕꾸러기 취급받는다. 도대체 비정규직의 사장은 누구인가? 노동자들이 사장을 찾아다니는 웃픈 현실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정규직의 진짜 사장이 원청인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일하는 곳에는 한국지엠, 현대차, 기아차, 아사히, 현대위아, 현대모비스라는 간판이 크게 달려 있고, 우리가 만드는 것도 원청의 제품이다.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오른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달고 있다는 얘기는 너무 많이 해서 지겹기까지 하다.

대법원에서도 제조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일해야 했는데 원청이 부당하게 비정규직으로 고용했다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어려운 말로 불법파견이라고 부른다.

수천 수만 개의 계란으로 바위를 내려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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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9 세계노동절 대회'에 참석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청와대까지 행진하고 있다.(자료사진) ⓒ 권우성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사장들이다. 대법원에서 한국지엠에 두 번이나 불법 파견 판결을 내리고 정규직 전환을 명령했다. 법원에서만 7차례 판결을 받았다. 노동부에서도 불법파견이니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판정을 두 차례나 내렸다. 하지만 한국지엠 사장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오히려 김앤장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재판 시간끌기에 몰두한다.

상식 좀 지키고 살자고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들고 투쟁을 한다. 그러면 찾아오는 것은 하청업체 폐업과 해고다. 이런 일이 2003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벌어지고 있다. 노무현부터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까지 정권은 바뀌었지만 비정규직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부터 시작해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자신감 있게 얘기했다. 후보 시절에는 "판결을 공공연히 위반하는 사용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처벌받기는커녕 제대로 기소조차 안 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조 활동은 독립운동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헌법과 노동3권이 어떻고, 대법원 판결이 어쩌고 하며 상식을 얘기해도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걸 바꾸기 위해 싸우기 때문이다. 또 거대한 자본에 맞선 작은 비정규직 노조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런 얘기에 우리는 이렇게 얘기한다. '일제가 망하겠냐, 되지도 않는 독립운동은 때려치워라'는 얘기를 독립투사들이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하지만 광복은 찾아왔다. 계란으로 바위를 내리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비정규직들도 잘못된 것은 어렵더라도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싸우고 있다. 수천, 수만 개의 계란으로 바위를 내려치려 한다.

5월 11일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청와대로 계란을 들고 간다.
덧붙이는 글 진환 기자는 한국지엠 창원비정규직지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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