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가 시작한 '대북 식량지원'... 한국당의 무지 혹은 내로남불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김영삼이 대북 식량지원을 시작한 이유

등록 2019.05.09 16:01수정 2019.05.0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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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단거리 발사체가 국제사회를 긴장시킨 직후, 한·미 양국이 대북 식량지원에 대해 뜻을 같이했다. 원산 호도반도에서 단거리 발사체가 쏘아올려진 지 사흘 뒤인 5월 7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통화를 통해 대북지원에 공감을 표시했다. 문 대통령이 제의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동의하는 식이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불만스런 반응이 나왔다. 8일 나경원 원내대표는 "백악관 브리핑 내용에는 식량지원 얘기가 빠져 있다"면서 "백악관에 확인하고 대답하겠다"고 발언했고, 민경욱 대변인은 "미사일로 한반도를 폭파하겠다는 주적에게 먹을 것을 바치겠다고 하니, 이 정권의 종북관은 참으로 목덜미를 잡는 수준"이라고 논평했다.

미국은 대북 경제제재를 주도하는 나라다. 단거리 발사체에 놀라 대북 지원에 동의한 것처럼 보이게 되면, 미국의 위신과 일관성에 약간이나마 흠집이 생길 소지가 있다. 한국의 식량 지원에 동의했다는 사실을 브리핑을 통해 공개적으로 '광고'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 곤란을 느끼면서도 대북 지원에 동의했다는 것은, 북한 발사체가 미국을 상당 정도로 난처하게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그런 '광고'를 할 수 없는 미국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백악관에 확인까지 하겠다는 태도는 트럼프 대통령을 더욱 더 곤란케 하는 일이다.

이번 발사는 한미연합훈련에 대응한 측면도 있지만, 인민군 자체 훈련을 위한 면도 강하다. 거기다가 발사 방향도 한국 쪽이 아니다. 이번 발사의 목표가 '한반도 폭파'인 듯이 과장하는 민경욱 대변인의 논평은 공연히 국민 불안만 가중시키는 무책임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대북지원의 역사 모르는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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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북한 식량생산 10년 사이 최저... 136만t 지원 필요"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은 3일 올해 북한의 식량 수요를 충족하는데 필요한 곡물 수입량이 136만t이라고 발표했다. 사진은 공동 조사단이 지난 4월 황해남도의 배급소를 방문한 모습. 2019.5.3 (FAO·WFP 제공) ⓒ FAO·WFP 제공/연합뉴스


보수세력 내의 극단주의자들은 대북지원을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전매특허'인 것처럼 비난하지만, 이는 대북지원의 역사를 감안하지 않은 주장이다. 대북지원은 제1차 북·미 핵위기(1993~1994) 직후인 1995년에 북한의 긴급지원 요청을 계기로 시작됐다. 그 후 24년간의 대북지원을 주도한 쪽은 한국 정부보다는 유엔 기구들이다.

한국 정부의 대북지원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기복을 보인 데 비해, 유엔 기구들의 지원은 기복이 있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일관성을 지키며 유지돼 왔다. 한국·미국 같은 개별 공여국의 지원과 달리 비교적 지속적인 특성을 보여왔다. 문경연·이수훈·전명수의 공동 논문 '유엔 기구의 대북지원 20년(1995~2016) : 성과와 과제'는 이렇게 설명한다.
 
"유엔 기구의 대북 지원이 개별 공여국 차원의 대북지원과 차이점은 비록 규모의 축소는 있었으나, 지속적으로 대북지원 사업의 명맥을 유지하면서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생명선의 기능과 북한에 대한 정보 제공자의 역할 그리고 북한과 대화 채널을 위시한 레버리지 기능을 담당하였다는 것이다." - 한국세계지역학회가 2018년 발행한 <세계지역연구 논총> 제36집 제2호.
 
유엔 기구들의 대북지원은 대화 채널 유지 같은 지렛대 기능도 하지만, 유엔을 통해 대북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미국의 이해관계와도 부합한다. 하지만, 이는 무엇보다도 북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인도주의적 성격이 특히 강하다. 유엔 기구들의 지원이 24년간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사람 목숨을 살리는 인도주의적 선행이었기 때문이다. 대북 퍼주기가 주 목적이었다면 이 정도로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 정부의 대북 지원 역시 인도주의적 동기를 저변에 깔고 있다. 제1차 핵위기 때 북한과 갈등을 빚은 김영삼 정권이 그 직후인 1995년부터 유엔과 보조를 맞춰 북한을 지원한 것은, 북녘 동포들이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기를 바라는 동포애에 기초한 것이다. 그런 선의의 에너지가 없었다면, 극단적 보수세력의 훼방 속에서 24년간이나 대북지원 명맥이 유지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편, 한국 정부의 대북지원에는 현실적 동기도 상당부분 작용하고 있다. 식량 지원을 통해 대북 영향력을 높이는 한편 한반도 안정을 제고하려는 의도도 분명히 존재한다. 대북 퍼주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안정을 위해 북한을 돕는 측면도 강한 것이다. 배성인 명지대 교수의 논문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적 지원'에 이런 문장들이 있다.
 
"정부 차원에서 지원되는 개별 국가의 행위는 인도적 목적을 표명하면서도, 상당부분 내면적으로 정치·외교·안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북지원의 주요 개별 국가들인 남한·미국·일본·중국은 궁극적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의 정치·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려는 의도에서 대북지원을 하고 있다." - 한국국제정치학회가 2004년 발행한 <국제정치논총> 제44집 제1호.
 
대북지원이 국제질서 안정에 기여하는 핵심 원인 중 하나는, 그것이 북한 난민 사태를 예방하는 데 이롭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식량난 가중으로 인한 대거 탈북 사태를 막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전체회의)에서 자력갱생을 유별나게 강조한 것처럼, 북한은 1950년대 중반부터 자력갱생을 경제전략의 핵심 축으로 활용했다. 그런 속에서 미국의 경제제재를 뚫고 생존해왔다. 이처럼 북한 경제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튼튼한 측면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식량사정이 극도로 악화되면 대규모 탈북 사태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 수 없다. 한·미 양국 정부가 극단적 보수세력의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대북지원의 명맥을 유지해온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탈북자 속출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찾을 수 있다. 위의 배성인 논문은 "(대북지원에 참여하는) 이들 나라 모두 북한의 급격한 붕괴에 의한 대량 난민 발생, 군사적 도발 위험성, 파탄된 북한 떠맡기 등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미 양국 정부는 표면상으로는 탈북자를 환영한다. 탈북자의 출현을 '대북 우월성' 혹은 '체제 승리'의 징표로 활용하곤 한다. 하지만, 그 숫자가 너무 불어나 통제불능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히' 염려할 수밖에 없다. 시리아 난민 사태가 유럽 정치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는 데서 느낄 수 있듯이, 대규모 탈북 사태는 미국과 동북아 국가들한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 관리 또는 주민 관리에 실패한 국가는 얼마 안 있어 사라지고 말았다. 대규모 난민 사태나 민족이동은 국가권력의 관리능력을 크게 떨어트린다. 대규모 민족이동이 있을 때마다 국가들이 명멸해온 사실이 잘 증명하듯이, 대규모 난민 사태는 기존 정권들한테 득보다는 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만철 일가나 이웅평 소위처럼 소규모로 찾아오는 탈북자는 환영할 수 있어도 대규모 탈북자들은 환영하기 힘든 이유가 거기 있다.

그런 사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예방 조치 중 하나가 바로 대북 식량지원이다. 대북지원은 최소한의 수준에서나마 북한 경제를 지켜줌으로써 대규모 탈북 사태를 막고 동아시아 정치질서를 보호하는 데 기여한다.

남한의 이익과 관련된 대북지원

대북지원에 담긴 그런 메커니즘은, 이를 공식 개시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인식에서도 잘 표출된다. 그는 대북지원을 대규모 탈북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인식했다.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 상권에 이런 대목이 있다.
 
"1994년, 특히 그해 7월의 김일성 사망 이후에는 대량 탈북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현실적인 문제로 대되었다. 과거 탈북자들은 대개 '체제 승리'의 상징 정도로 여겨졌으나, 나는 탈북 주민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도와야 하는 현실적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5년 6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은 대북 쌀 지원 방침을 밝히면서 "우리 쌀의 재고가 부족하면 외국에서 사서라도 북한에 쌀을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발언했다. 극단적 보수세력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그가 '수입해서라도 대북지원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대북지원이 남한의 정치적 이익과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995년 6월 23일자 <동아일보>. ⓒ 동아일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은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을 거쳐 자유한국당으로 계승됐다. 한국당은 민자당이라는 뿌리 위에서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선배인 민자당이 제1차 핵위기 직후에 대북 식량지원을 개시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안 그래도 미국의 제재를 받는 북한이다. 그런 북한에서 식량난마저 가중돼 대규모 탈북 사태가 벌어지면, 한·미 양국의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도 한·미 양국이 대북지원을 개시했다는 것을 한국당은 진짜 모를까? 물론 인도주의적 동기가 대북지원의 최대 요인이지만, 이에 더해 그 같은 현실적 이해관계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한국당은 국민들에게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당이 간과하는 또 다른 측면도 함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과 국제사회가 대북지원을 공식 개시한 것은 1995년이지만, 이것이 민간 차원에서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5년 전이었다. 동구권이 흔들리고 독일 통일이 가시화되는 탈냉전 흐름 속에서 한국 민간의 대북지원이 시작됐던 것이다.

이런 흐름을 주도한 쪽은 종교단체들이다. 민병기·박재정의 공동 논문 '대북 식량지원 운동의 정치 기회구조와 남남갈등: 김영삼 정부 시기를 중심으로'는 이렇게 설명한다.
 
"1995년 이전의 대북 식량지원은 민간 특히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1990년부터 간접지원 방식을 통해 소규모로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민간 차원의 대북 식량지원 활동의 단초가 되었던 것은 1990년 2월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본부'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주관으로 창립되면서 시작된 '사랑의 쌀 나누기운동'으로 볼 수 있다." - 한국정치학회가 2009년 발행한 <한국정치학회보> 제43집 제3호.
 
대북지원에 대한 극단적 보수세력의 훼방 속에도 대북지원이 3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속에 담긴 인도주의적 에너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치권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종교단체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종교단체들이 대북지원을 해온 최대 동기는 인도주의적 사랑에 있다. 그에 더해 부수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선교 필요성 혹은 목적이다. 종교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북한을 상대로 향후 선교 활동을 펼치고자 하는 종교단체들의 입장도 그 속에 담겨 있다.

이처럼 대북지원은 인도주의적 측면 외에 한국 및 동북아의 정치 안정과 더불어 한국 종교의 장래 활동과도 관련을 갖고 있다. '백악관 브리핑에는 식량지원 이야기가 없다'느니 '주적에게 먹을 것을 바치는 꼴'이라는 무책임한 말들은 이런 현실적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의 정치적·종교적 이해관계를 무시한 발언들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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