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408호 폭행·감금 사건, 내가 '피의자' 편에 섰던 이유

[나는 왜 '나쁜 놈'을 변호했나 9] 범죄자의 속사정

등록 2019.05.10 09:07수정 2019.05.10 09:07
1
원고료로 응원
가해 청소년을 지원하면 언제나 '피해자 지원도 부족한 마당에 왜 가해자를 돕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도대체 가해 청소년들은 왜 지원을 받아야 할까. 전국에서 유일하게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돕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가 만난 청소년들의 사연에서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기사 내용은 실화를 토대로 했으나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을 쓰고 세부 사항도 재구성했다. - 기자말

"살려주세요!"

다급한 여성의 외침이 두세 번 반복해서 들렸다. 모텔 카운터를 지키던 직원은 급히 CCTV 모니터 쪽으로 눈을 돌렸다. 4층 복도를 비추는 화면에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전라의 남성이 상의만 걸친 여성을 들쳐 매고 엘리베이터에서 객실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여성은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1층 카운터에까지 고스란히 들렸다.

카운터 직원은 즉시 112에 신고하고서는 4층으로 뛰어 올라가 모니터 속 남성이 들어간 408호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더 이상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다만 남성이 무어라 말하는 소리만 새어 나왔다.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이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은 408호에 도착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하게 문손잡이를 돌렸다. 그런데 당연히 잠겨있을 것 같았던 문은 오히려 열리기를 기다렸다는 듯 스르륵 열렸다. 객실 안에는 상체에 티셔츠만 걸치고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여성이 있었고 그녀의 앞에 전라의 남성이 서 있었다. 경찰은 즉시 남성을 객실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러고는 여성이 옷을 입도록 도왔다.

우연한 합석이 불러온 비극 
 

ⓒ pixabay

 
남성은 이제 갓 성인이 된 20대 초반의 현태였다. 그리고 현태 앞에 앉아있던 이는 30대 후반 기혼 여성이었다. 둘은 사건이 있던 날 새벽 2시 편의점 앞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현태는 공장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 동료와 편의점 앞 간이 테이블에 앉아 쥐포와 소주 두 병으로 지친 몸을 달래고 있었다.

여성은 인근 친구 집에서 이미 거하게 마시다 술을 더 사러 편의점에 나온 길이었다. 소주 네 병과 약간의 마른안주가 든 봉지를 들고 편의점을 나서던 그녀는 현태 일행을 보고는 스스럼없이 합석했다. 그렇게 합석한 한 명의 여성과 두 명의 남성은 여성의 손에 들려있던 소주 4병을 함께 마셨다. 편의점 앞 간이 테이블 위 여섯 병째 소주병이 바닥을 보여 갈 때 여성이 현태에게 말했다.


"모텔에 갈래?"  

그렇게 둘은 택시를 타고 인근 모텔로 향했다. 택시비도 숙박비도 모두 현태가 계산했다. 현태의 팔짱을 낀 여성은 비틀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리다 넘어졌고 현태는 그녀를 부축했다. 그러고는 복도를 지나 408호로 들어섰다. 여성이 먼저 샤워를 했다. 여기까지 현태와 여성의 진술은 일치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여성의 진술

현태는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여성을 느닷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여성이 바닥에 넘어지자 올라타 목까지 졸랐다. 그러더니 갑자기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공포에 휩싸인 여성은 윗도리만 겨우 걸쳐 입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살려달라고 외치며 있는 힘껏 엘리베이터로 달렸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슴을 졸이며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던 여성은 전라인 채로 뒤쫓아 온 현태에게 잡히고 말았다. 20대 초반 건장한 남성의 완력을 여성은 당해내지 못했다. 그렇게 여성은 현태에게 들쳐 업혀 408호로 끌려가야 했다. 그러고는 경찰이 올 때까지 다시 폭행이 이어졌다. 여성이 진술한 그 날의 사건이었다.

현태의 진술

현태가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자 갑자기 살려달라는 비명이 들렸다. 급히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여성은 보이지 않았고 열려있는 문밖으로 살려달라는 비명이 계속 들렸다. 급히 복도에 나가보니 좀 전까지 408호에 함께 있던 여성이 상체에 티셔츠만 걸친 채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당황한 현태는 일단 여성을 다시 방으로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에 달려가 그녀를 안았다. 그러자 여성은 격하게 발버둥을 쳤다. 현태는 그런 그녀를 완력으로 안아들고 408호로 돌아갔다. 객실에 들어와 그녀를 침대에 앉혔다. 다행히 더는 비명을 지르지도 발버둥을 치지도 않았다.

"저기요. 왜 그러세요?"  

현태가 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여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답 없이 질문만 반복하던 중 경찰이 들이닥쳤다. 현태가 기억하는 그 날의 사건은 이랬다.

112 출동 경찰의 현장 보고서에는 신고자인 모텔 직원의 간이 진술과 범죄 현장인 객실 사진 그리고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의 얼굴과 목을 촬영한 사진이 있었다. 객실은 흐트러진 물건 하나 없이 단정한 상태였다. 사진 속 여성의 얼굴은 약간 붉어 보이기는 했지만 폭행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모텔 직원의 진술은 비명을 듣고 CCTV를 확인한 후 112에 신고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다음 날 경찰 진술에서 여성은 병원 치료를 받겠다고 했지만 진단서를 제출하지는 않았다.

검찰은 현태를 '폭행 및 특수감금' 혐의로 기소했다. CCTV 녹화 화면에서 현태가 저항하는 여성을 힘으로 억압하고는 객실로 끌고 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러고는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여성은 더는 객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CCTV 화면만으로는 '폭행 및 특수감금'이 확실했다. 현태 말을 모두 믿는다고 해도 저항하는 여성을 억압해 다시 객실로 끌고 들어간 점은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현태에게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현태의 사정

현태에 대한 법률지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청소년 시기 현태는 반복되는 비행으로 소년법 처분을 받아 소년보호시설에서 1년 동안 살아야 했다. 그때 처음 현태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을 마치고 소년보호시설에서 퇴소한 현태는 다소 부침이 있기는 했지만 비행을 더는 저지르지 않았다. 20살이 넘어서는 공장에 취직해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 이번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제 마음을 잡고 사는가 싶던 현태가 다시 사고를 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에 대한 실망과 분노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사건 자료를 살펴보고는 현태가 무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태에게는 지적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태가 무죄라고 확신은 했지만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선명하게 찍힌 CCTV 속 현태는 범죄자였다. 폭행 현장인 객실의 비품이 흐트러지지 않은 점, 객실 문이 잠겨있지 않은 점, 여성이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은 점 등 현태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많았지만 무엇 하나 CCTV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

"무죄 받기는 어려울 거야. 그래도 설마하니 구속이야 되겠냐. 너무 걱정하지 마라."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기일을 기다리는 현태에게 조금은 장난기 섞인 말로 위로를 했다. "설마하니 구속이야 되겠냐" 긴장한 현태를 풀어주기 위해 농담 삼아 한 말이었지만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로서, 청소년 사건만 5년을 넘게 다뤄온 전문가로서 구속을 피하긴 어렵다고 예상했다. 결국 법정에서 현태의 혐의는 모두 인정되었고 징역 10월이 선고되었다. 현태는 법정에서 구속되었다.

느닷없이 제출된 항소취하서

그로부터 3일 뒤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선고 즉시 항소장 취하서가 현태 명의로 제출되었다. 그렇게 무죄를 주장하던 현태가 돌연 항소를 취하한 것이다. 취하서의 현태 이름 옆에는 지장까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한번 제출된 항소취하서는 철회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항소 취하서를 제출한 이유는 더욱 황당했다.

의레 그렇듯 구치소에 수감 된 현태에게 감방 동료들이 무엇 때문에 들어왔는지 물었다고 한다. 수차례 재판을 받으며 교도소를 들락거려 법리를 깨우쳤다고 떠벌리는 소위 감방의 돌팔이 변호사들은 사건을 설명한 현태에게 "항소해도 어차피 변할 거는 없어. 그냥 항소 포기하고 조용히 지내다 출소하는 게 좋아. 너 괜히 항소했다가 미운털 박히면 형량만 늘어난다"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는 겁에 질려 곧바로 항소취하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그날의 사건의 진실을 다퉈볼 수 있는 두번째의 기회는 이렇게 사라졌다. 돌팔이 변호사의 말만 듣고 바로 항소를 취하하는 어리바리, 현태는 그런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이처럼 치밀하게 변호사에게까지 거짓말을 했을까.

죄인은 현태가 아니라 성인과 청소년의 경계에서 지적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에게 증거만 가지고 다투라는 재판, 서류 한 장에 모든 절차를 종결하는 재판절차, 감방 돌팔이 변호사보다 신뢰를 얻지 못한 변호인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소년법 #특수감금 #폭행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4. 4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5. 5 김종인 "윤 대통령 경제에 문외한...민생 파탄나면 정권은 붕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