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인연을 이어가요"

[지역신문 인터뷰] 서울 은평구의 '화음', 꿈꾸는 합창단

등록 2019.05.09 18:20수정 2019.05.09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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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합창단 공연 모습. ⓒ 정가악회

 
합창은 다른 이의 소리를 듣는 일에서 시작한다. 내가 아무리 좋은 소리를 내도 옆에 있는 사람의 소리와 어우러지지 못하면 소용없다. 반면 음정과 박자가 다소 불안하더라도 옆에 선 사람에 기대면 노래를 이어갈 수 있다. 그렇게 서로의 소리를 듣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서로의 목소리는 화음이 되고 이야기가 되어 마을에 울려 퍼진다. 

꿈합 두 번째 단독 공연 

오는 5월 18일 꿈꾸는 합창단(이하 꿈합) 6주년 기념연주회가 서울혁신파크 50+에서 열린다. 2013년 5월에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7년째다. 2016년도에 처음 단독공연을 한 이후 두 번째다. 

처음 합창단을 해보자고 모인 사람은 세 명이었지만 지금은 합창단원이 오십여 명에 이른다.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삼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노래를 부른다. 이들이 일이 년도 아닌, 6년 동안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지난 3일 꿈합 단장을 맡은 김미영씨와 지휘를 맡은 선경희씨 그리고 차익수, 최지현 합창단원을 만났다. 

"합창 자체가 마법이에요. 안 믿으시네(웃음)" 지휘자 선경희씨가 단호하게 말한다. "합창 연습에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막상 모여서 노래를 하면 찌뿌둥하고 안 좋았던 컨디션도 좋아지거든요. 지휘자 선생님 말처럼 마법 같은 뭔가가 있어요." 3년 차 단원인 최지현 단원이 거들고 "안 믿어지죠? 거짓말 같죠?"하며 김미영 단장이 웃는다. 

그래도 단지 노래 하나로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끈끈하게 뭉칠 수 있는 건지 재차 물어봤다. "꿈합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기 보다는 서로 다독이고 인정하다 보니 서로 어우러지는 것 같아요." 선경희씨가 말한다. 

"꿈합은 특히 4~50대 남자들이 동네에서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좋은 모임이에요. 함께 노래하고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며 다른 놀거리도 즐기는 게 좋아요. 술모임, 악기모임, 성가모임, 당구모임 등이 만들어지면서 각자 재밌게 돌아가거든요." 김미영 단장이 전하는 꿈합 유지 비결이다. 

실제로 꿈합 단원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 외에도 함께 모여 그림을 그리고 우쿨렐레를 연주한다. 번개모임 김치파는 각자 재료를 갖고 모여 오이소박이를 담기도 한다. 합창 모임 안에 다양한 소모임 활동은 건조한 일상을 다채로운 활동으로 바꿔놓는다. 집과 직장을 반복하면서 무미건조했던 일상들이 꿈합을 만난 이후 재밌는 삶으로 변했다는 단원들의 증언이 잇따른다. 
 

은평시민 톡투유에서 노래하는 꿈꾸는 합창단. ⓒ 은평시민신문 정민구

 
마을에서 합창을 해보고 싶었어요 

꿈합은 2013년 5월에 시작됐다. 동네에서 노래로 호흡을 맞추던 김미영과 차익수, 그 두 사람이 합창단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데 의기투합하고 전문 음악인인 선경희씨를 찾아갔다. 때마침 마을엔 카페에서 진행하던 '동네예술치유학교' 프로젝트가 서울시 지원을 받게 되어서 악기구입에 필요한 비용과 약간의 운영비까지 마련한 상태였다.

"무슨 총회 자리였는데요, 저희가 합창단을 한 번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돈은 많이 못 드려요, 같이 해주실 수 있겠냐고 사실 굉장히 떨면서 얘기했어요. 근데 한 번에 오케이해서 기뻤고 이후 합창단원 모집한다고 오디션 한다고 여기저기 홍보를 했죠."

홍보는 동네마당발 차익수씨가 맡았다. 당장 동네사람들 오륙백 명에게 연락해 합창단 소식을 전했고 결국 열몇 명쯤이 합창단을 찾았다. 이전부터 합창단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어떻게 일을 도모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지휘와 반주를 맡을 사람을 찾고 나니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합창을 하겠다고 모인 열 몇 명의 사람들이 단체카톡방을 만들고 마을엔 카페에서 오디션을 진행했다. 

"합창을 하려는 사람들은 합창을 좋은 추억으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고등학교 때 합창단에 있었는데 그 때 기억이 너무 좋았어요. 마을 안에서 사람들과 합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김미영 단장님이 제안을 해주셨죠. 그런데 매주 연습을 하자니 시간과 품을 내야 해서 걱정이 됐는데 시간 안 되면 둘이 번갈아 가면서 연습하자는 말에 넘어갔죠." 지휘자 선경희씨가 웃으며 말한다. 

처음부터 매주 모여 연습한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다들 바쁘니까 2주에 한 번이라도 모여서 연습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사람이 이렇게 모일 줄도 몰랐고 지휘자 선생님 바쁘니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오시면 고맙고 나머지는 우리끼리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림도 없었죠." 김미영 단장의 말이다.
 

세월호 참사 5주기에서 노래하는 꿈꾸는 합창단. ⓒ 은평시민신문 정민구

 
'곰 세 마리와'와 '닐니리맘보'로 시작한 합창 

꿈합의 첫 도전 곡은 '곰 세 마리'와 '닐니리맘보'였다. 우선 이 두 노래로 천천히 연습을 해 나가겠다는 다짐은 처음부터 지켜지지 않았다. 동네 합창단이 생겼다는 소문에 여기저기서 공연 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관객들 앞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수십 곡에 달하지만, 4성부로 된 노래를 처음 불러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다 연습할 시간조차 넉넉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초대를 받다 보니 꿈합의 레파토리는 늘 '곰 세 마리'와 '닐니리맘보'였다. 그러다 보니 그 노래들은 이제 그만, 다른 노래를 불러달라는 동네 사람들의 주문이 이어지기도 했다. 

합창단 출범 이후, 일 년에 스무 번 이상 공연 요청이 들어왔다. 협동조합 총회자리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자리에서, 밀양 할매들을 응원하는 자리에서, 연대하고 응원하고 축하하고 슬퍼하고 함께 기억해야 할 많은 자리에서 꿈합은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다 웃고 노래를 부르다 울컥 눈물이 났다. 그런 꿈합의 노래를 들으며 관객들도 따라서 웃고 울었다.

"노래를 잘 부르고 못 부르고를 떠나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러요. 노래를 들을 준비, 박수칠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들이 와서 응원을 하니 연습 때의 걱정과는 달리 무대에 오르면 용기를 내어 더 잘하게 돼요." 선경희 지휘자의 말이다. 

"꿈합은 행사 맞춤형이에요(웃음). 합창 래퍼토리를 생각할 때 마을에서 어떻게 쓰일지 염두에 두고 고르죠. 이런 생각을 사전에 함께 공유하고요. 은평시민신문 창간 10주년 때 공연도 생각이 나네요. 지역신문 만드는 게 힘드니 안타까운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죠." 김미영 단장의 말 속에서 마을을 사랑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느껴진다. 

"학교 밖 청소년 '작공' 아이들과 국악단체 '정가악회'와 함께 한 공연이 기억에 남아요. 사람들이 소위 '문제아'라고 부르는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했는데 처음엔 이 아이들과 같이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아이들이 예쁜 목소리로 노래하는 걸 보며 서로 다가가기 힘든 사람과도 노래로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최지현 단원이 전하는 이야기로 합창이 탁월한 소통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렇게 합창은 지휘자와 단원을 넘고 세대를 뛰어넘어 마을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지난해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생활형 SOC 현장방문으로 구산동도서관마을을 찾았을 때 축하 공연을 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생활밀착형 사업을 보러 오셨으니까 우리도 생활밀착형으로 공연한다는 의미로 평소와 똑같이 공연을 했죠." 선경희 지휘자가 재치 있게 설명한다. 동네 사람들 앞에서나 대통령 앞에서나 똑같은 공연, 그게 꿈합이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합창은 해본 사람만이 아는 그리운 마법

"노래를 좋아하긴 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꿈합에 들어와서 혼자서 노래 부르는 건 힘들어도 옆에 단원들이 같이 있으니까 떨지 않고 할 수 있어요. 평소에 자신감도 강한 편이 아닌데 꿈합 활동하면서 자신감도 많이 생겼어요. 노래할 때 화음이 맞으면 온 몸으로 전율을 느낄 때가 있어요." 최지현 단원에게 꿈합은 자신감과 행복을 선물했다. 

"초등학교 때 '오빠생각'을 불렀는데 그 때 알토를 하면서 화성을 느꼈고 합창을 통한 전율을 느꼈죠." 차익수 단원의 회상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노래도 잘하고 리코더, 하모니카도 잘 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노래를 불렀고 대학시절엔 기타를 치며 노래를, 성당 성가대에서도 십여 년 이상 활동을 했으니 이젠 그가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 되어 버렸다. 

김미영 단장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합창단활동을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2부 합창을 하던 걸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아이들 얼굴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 분위기는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죠."

아무리 합창을 좋은 추억으로 갖고 있다 해도 돈벌이도 되지 않는 합창단 지휘를 이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물음에 선경희씨는 "화음을 맞춰서 노래하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알아요. 얼마나 그립고 하고 싶은 마법인지."라고 답한다.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 노래하는 꿈꾸는 합창단. ⓒ 은평시민신문 정민구

 
오래오래 마을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

매주 삼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에서 노래를 한다. 하루 이틀이 아닌 6년의 시간 동안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이쯤 되면 거창한 미래비전이 나올 법도 하다. 

"영화에서 할머니들이 모여서 배구도 하고 함께 활동하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마을에서 같이 늙어가며 7,80대에도 20대와 함께 노래 부르면 좋겠어요. 단장님이 늘 '우리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오래오래 함께 인연을 이어가자'고 이야기하는데 저도 동의해요." 거창한 미래비전을 기대한 질문에 선경희 지휘자의 대답이 싱겁다. 

차익수 단원이 옆에서 같이 거든다. "저도 똑같아요. 죽을 때까지 노래하는 거죠." 

"저도 할머니가 될 때까지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최지현 단원의 대답도 같다. 

"여긴 '은평공화국'이다(웃음). 공화국 시민들이 더 좋은 은평을 만들려고 각자 노력하고 있고 마을에서 행복하기 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죠. 서로 돌보는 마을, 그게 은평이고 은평스러운 거 같아요." 김미영 단장의 이야기다. 

일 년이면 마을 내 축하공연만 스무 번 넘게 하다 보니 정작 꿈합 정기공연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첫 단독공연도 창단 3년 만에 했고 이번 공연이 두 번째 단독공연이다. 꿈합의 이번 공연은 정가악회와 함께 한다. 정가악회가 '은평이야기 1,2'를 통해 꿈합에 만들어준 노래와 작공 청소년들과 함께 부른 노래도 들려줄 계획이다. 

배가 고픈 것처럼 늘 노래가 고프다는 꿈합 사람들. 혼자 불러도 좋지만 같이 부르면 더 좋은 노래. 그런 노래로 이야기하고 합창으로 소통하는 사람들. 마을에서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고 힘을 내는 이들이 많도록 오랫동안 꿈합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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