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신혼여행 어떤가요? 현실이 된 어느 연인의 꿈

[동행취재] '평범한' 가정을 꿈꾸는 중증장애인 상우-영은 부부의 '특별한' 신혼여행

등록 2019.05.12 11:55수정 2019.05.1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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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가 꿈꾸던 제주도 여행, 사랑하는 아내 영은과 함께 꿈을 이뤘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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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씨는 처음 비행기를 탔다. 첫 비행기로 사랑하는 사람과 꿈꾸던 제주도를 향했다. ⓒ 이희훈

  
검푸른 하늘과 맞닿은 바다 사이의 붉은 경계가 사라져갈 즈음 결혼식을 마친 상우씨와 영은씨가 탄 비행기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두 분 오늘 결혼하셨나 봐요?" 

복잡한 기내에 모든 승객이 빠져나가고 항공기용 휠체어 승강기를 기다리던 두 사람에게 승무원이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결혼했어요' 콘셉트를 하고 있었다. 커플룩 차림과 수십 개의 핀을 꽂은 올림머리, 진한 신부 화장의 영은씨와 스프레이로 빳빳하게 고정된 가르마 머리의 상우씨는 누가 봐도 오늘 결혼한 신혼부부였다. 

항공사의 도움을 받아 리프트를 타고 비행기를 내려온 상우씨는 사랑하는 영은씨와 함께 오랜 시간 바라왔던 제주여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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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와 영은이 신혼여행 동안 지낼 보금자리 삼달다방. 삼달다방은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평등하게 쉴 수 있기를 바라며 지어진 곳이다. 상우는 이런 마음이 담긴 숙소 이음동의 첫 손님이 되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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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첫날밤. 영은은 상우의 얼굴만 봐도 즐겁다. ⓒ 이희훈

 
두 사람의 사랑을 축하하는 귤꽃 부케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는 누구나 평등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 '삼달다방'이 있다. 부부가 머물 숙소는 전동휠체어도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된, 최근 준공한 삼달다방의 '이음'동이었다.

이 숙소는 상우-영은 부부를 첫 번째 손님으로 맞았다. 입구쪽으로 설치된 경사로를 올라 문을 열자 하얀색 꽃길과 한 쌍의 '타월 백조(수건으로 만든 백조)'가 두 사람을 반겼다. 삼달다방의 다방지기는 두 사람의 행복한 출발을 바라며 순결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닌 흰색 귤꽃 부케를 건넸다. 


성대한 환영식을 마친 후 두 사람은 신혼여행 첫날 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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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결혼을 위해 결혼준비팀이 가동됐다. 마침내 치러진 결혼식에 모두가 축하하며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를 향해 만세를 외쳤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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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달다방은 전동휠체어를 위한 리프트가 달린 노랑버스를 운행한다. 상우영은 커플은 이 차를 타고 제주도를 누빈다. ⓒ 이희훈

 
두 사람의 결혼과 신혼여행이 있기까지 

두 사람의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위해 많은 이들이 손발을 걷어붙였다. 특히 장애인 인권 단체 '발바닥 행동'의 활동가 옥순씨와 삼달다방 다방지기 상엽씨 부부는 상우씨와 영은씨의 따뜻한 첫날 밤을 위해 선뜻 나섰다. 신혼여행 날짜에 맞춰 공사를 마무리하고 새 방을 청소했다. 침구류와 목욕용품도 새로 들여놓고, 침대 장식도 오롯이 두 사람을 위해 꾸몄다. 이들을 도운 자원의 손길도 끊이지 않았다.  

선배 부부의 마음이 담긴 그런 따스한 방이 그렇게 새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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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와 맑은 하늘, 신혼여행을 반기는 제주.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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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원사와 동행한 섭지코지.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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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정한 필수 코스 빛의 벙커에서 클림트의 작품을 만났다. 상우와 영은은 클림트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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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벙커에서 작품을 감상하던 영은씨의 머리가 헝클어지자 활동지원사는 재빨리 영은씨의 두 손이 되어 머리를 묶었다. ⓒ 이희훈

 
다섯명이 함께 하는 신혼 여행

부부의 첫 여행을 위해 임시 팀이 꾸려졌다. 둘만의 여행이 묘미인 신혼여행이지만 중증장애인인 두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우선 평소 함께하는 활동지원사가 여행팀에 합류했다. 거기에 제주관광가이드와 운전사를 자처한 상엽씨가 힘을 합쳤다.

3인조로 구성된 '신혼여행 어벤저스'팀은 휠체어 리프트로 두 사람을 노랑 버스에 태우고 첫 일정을 향해 달렸다. 여행 첫날의 콘셉트는 제주도 동쪽의 자연, 예술, 맛집 투어.

제주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섭지코지와 다양한 바다생물을 볼 수 있는 아쿠아리움을 구경했다. 이어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생선조림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한 후 클림트의 명작을 즐길 수 있는 빛의 벙커 전시를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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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영은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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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지코지의 올레길 중간에 만난 계단, 저멀리 보이는 글라스 하우스. ⓒ 이희훈


여행 계획을 어떻게 정했냐고 묻자 상우씨는 "두 사람이 제주도 여행책을 보면서 가보고 싶은 곳 정했어요"라고 답한다.

현지인인 상엽씨는 사람이 붐비는 유명 관광지 보다 숨은 명당 중심으로 이들을 안내했다. 대부분의 여행지는 전동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섭지코지의 유명건축가가 지은 글라스 하우스를 향하는 올레길에는 장애인용 경사로가 없어 중간에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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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앉은 영은과 상우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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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을 위한 재즈 선율, 나란히 앉아 작은 콘서트를 감상 중인 영은과 상우 ⓒ 이희훈

 
메인요리는 재즈, 디저트는 파스타와 레드와인

하루의 마지막, 상우씨와 영은씨는 상엽 가이드의 안내로 재즈뮤지션 임인건씨가 운영하는 소박한 홈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혼여행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은 임인건씨는 선물로 레드와인과 두 곡의 피아노곡을 준비했다고 미리 알렸다. 

서로 마주 보던 상우씨와 영은씨는 치아바타 샌드위치와 파스타가 놓이자 자연스레 시선을 접시로 옮겼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상우씨와 영은씨 그리고 신혼여행팀은 건배를 외쳤다. 두 사람이 와인잔 옆으로 손을 가까이 대고 활동지원사가 잔을 대신 부딪쳐 건배를 완성했다. 

접시를 비우자 피아니스트 임인건씨는 두 사람 결혼과 신혼여행을 축하하며 재즈를 연주했다. 주황빛 조명 아래 퍼진 선율은 선홍빛으로 살짝 달아오른 두 사람의 볼처럼 신혼여행을 무르익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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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와 영은은 하늘 위에 있는 드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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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영은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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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룩을 입은 부부.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다 웃음이 터졌다. ⓒ 이희훈

 
결혼이 곧 인권 활동

상우씨와 영은씨는 장애인 인권 옹호 활동가다. 2015년 우연히 같은 날 장애인 시설을 나와 독립한 두 사람은 장애인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자 폐지를 위해 싸워왔다. 그리고 "자신들의 결혼 생활이 다른 장애인들의 사랑에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자주 건넸다. 

"탈시설해 마음껏 연애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과 결혼하세요." 

뻔한 말로 들릴 수 있으나 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도전을 주저하고 용기내지 못하는 장애인 동료들에게 조언했다. 그리고 두 사람 역시 더 평범한 삶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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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일정을 마친 영은과 상우, 삼달다방 식구들이 만들어 준 웨딩카 장식과 함께 인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신혼여행이 끝나면 상우씨와 영은씨는 부부 활동가로 자신들과 동료 장애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또 거리로 향할 계획이다.

[관련 기사]
아주 특별한 결혼식... 이들이 서로 사랑하는 방식 ☞ http://omn.kr/1ip67 
전동 휠체어 탄 신랑·신부... 보통 결혼식이 아닙니다 ☞ http://omn.kr/1j6wf  
#장애인부부 #중증장애인 #상우영은 #탈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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