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사일을 눈 앞에서 보고 든 생각은요..."

[인터뷰] <우리가 아는 북한은 없다>의 저자 신은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등록 2019.05.10 22:16수정 2019.05.10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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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59년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조봉암(1898~1959)은 이승만의 북진 통일과는 다르게 평화 통일을 주장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후 52년 만인 지난 2011년, 조봉암은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생사람을 억울하게 죽여 놓고 반세기 만에 무죄 판결을 내리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국가보안법은 조봉암과 같은 비운의 정치인을 만들었다.

한국의 사상가 함석헌(1901~1989)은 장준하(1918~1975)의 <사상계> 1958년 8월호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6.25전쟁이 주는 역사적 교훈'을 쓴다. 그리고 그는 곧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돼 "감옥에서 거꾸로 매달려 매를 맞는" 등 고초를 겪은 후 풀려난다.

이 글에 따르면, 함석헌을 구속한 경찰은 "(함석헌이) 대한민국을 '꼭두각시'라 한 것은 국체(國體)를 부인하는 것이고 북한 괴뢰와 대한민국을 동일시한 것이며, 또 군의 전투 의욕을 감퇴시키고 비상시기에 놓인 사회의 사상 질서를 문란케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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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몰이' 논란에 휩싸여, 끝내 강제퇴거 처분을 받게 된 '재미동포아줌마, 북한에 가다' 저자 신은미씨. ⓒ 이희훈

 
그후 56년이 지난 2014년 11월. '평양에 다녀온 그녀들의 통일이야기 - 신은미&황선 전국순회 토크문화콘서트'를 열던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극우 단체들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북한찬양혐의)로 고발당한다.

얼마 뒤 2014년 12월엔 전북 익산시의 한 성당에서 열린 신은미씨의 토크콘서트에서 한 고교생이 인화 물질을 던져 청중 2명에게 1도 화상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후 황선씨는 구속 기소되고 신은미씨는 미국으로 강제 추방되는 어처구니없고 시대착오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011년 10월, 평범한 주부이자 아이들의 엄마인 재미동포 신은미씨는 남편과 함께 북한을 여행한다. 호기심을 안고 우연히 떠난 여행이었지만, 북한에서 그는 처음으로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과 민족애를 느꼈고 동시에 통일에 대한 염원이 생기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호기심을 안고 우연히 방문한 북한에 대해 글을 쓴 그가 모국으로부터 받은 처벌은 너무나 가혹했다. '강제추방, 향후 5년간 입국금지'였다.

 

신은미 '우리가 아는 북한은 없다' 표지. ⓒ 말

   
하지만 이런 믿을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은미씨가 남북 평화통일의 선구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동안 그는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2012년),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2015년), <남과 북의 오작교가 되어> (2016년)를 썼다. 또 그는 지난달 북한에 관한 네 번째 책 <우리가 아는 북한은 없다>를 출판했다.

물론 그는 우연히 북한을 여행하고 평범한 시각으로 기행문을 쓴 것뿐이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하면서 드는 생각은 역사의 기적은 거의 대부분 필연보다는 우연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 그래서 '남북평화통일의 선구자' 신은미 기자와 지난 5월 3일부터 8일까지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싣는다.


- 1990년 중반 북한이 최악의 식량난(고난의 행군)으로 약 33만 명 북한 동포들이 아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이 붕괴하지 않고 존립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고난의 행군 시절 엄청난 숫자의 인민들이 아사했다. 하지만 나라가 붕괴하지 않고 존립한 것을 두고 나는 '불가사의'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북녘의 동포에게 직접적인 표현으로 물은 적이 있다.

'고난의 행군 때 어떻게 나라가 무너지지 않고 견뎠나요?'라고 물었는데 질문을 들은 북한동포가 몹시 불쾌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홍수와 가뭄으로 흉년이 계속됐다고 나라가 무너집니까?'

간혹 사람들이 '우리는 북한 정권과 북한 동포들을 구별해야 한다,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지 북한 동포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관찰한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은 별개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였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북한이 고난의 행군 시절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내 조국 한반도에 절대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여성 항일유격대를 재현한 행렬. 2015년 10월 10일 북한 열병식 중에서 -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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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 신은미

 
- 2015년 10월 남한 유일의 기자로 북한 노동당 창건 70돌 행사를 직접 취재했다. 당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자격으로 기자 완장을 차고 정식 취재했는데. 이때 느낀 점은?
"열병식이 시작하자마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유격대를 재현한 행진이었다. 그중에는 여성들로 이뤄진 부대도 있었다. 열병식을 통틀어 제일 인상적이고 또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 장면들이었다.

그러나 온갖 무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을 땐 덜컥 겁이 났다. 미사일의 경우, 맨 마지막에 등장한 탄도로켓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었다. 이를 보는 순간 그 모습에 너무 압도돼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전쟁 나면 다 죽어'라는 말을 한다. 막연하기만 했던 이 말을 눈 앞에서 본 것이다. 열병식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무기들을 보면서, '남한에도 이에 상응하는 군대가 있고 또 막강한 화력을 가진 미군이 있는데, 전쟁이 나면 정말 우리는 끝이구나'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열병식을 취재하며 느낀 점은 한마디로 '내 조국 한반도에 절대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 2015년 1월, 박근혜 정부에 의해 모국에서 강제추방 당하고 5년 동안 입국금지 당하게 됐다. 내년 1월이면 강제추방 당한 지 꼭 5년이 된다. 2020년 1월 이후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 있는지? 
"벌써 5년이 다 돼 간다. 나는 남한을 '모국'이라고 부른다. 나를 낳아준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과 북 전체를 '조국 한반도'라고 부른다. 우리 선조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이기 때문이다.

내년 1월이 돼 입국금지가 풀리게 되면 바로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 중이다. 미 국무부의 '미국국적자 북한여행금지 조치'가 해제되는 날 남과 북을 동시에 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까 싶어서다."

- 모국에서 강제추방 당한 이후였던 2015년 6월, 다시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을 다시 방문하며 느낀 감회가 있을 것 같은데.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북한의 수양딸들을 만나기 위해 나리타 공항에서 심양으로 가 고려항공에 몸을 싣고 평양으로 갔다. 남한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고 그리운 고국을 지척에 두고 북으로 가는 심정을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전에는 내게 '남한은 마음대로 갈 수 있지만 북한은 갈 수 없는, 아니, 가서는 안 되는 나라'였다. 그런데 이제는 '북한은 마음대로 갈 수 있지만 모국 남한은 갈 수 없는 나라'가 됐다.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내게 벌어진 것이다. 분단된 조국을 가진 내가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홉 차례 북한여행, 난해한 점과 배울만한 점은... 
 

“쌀은 곧 사회주의입니다”라는 글귀. - 2013년 8월 23일 흥남비료공장 - ⓒ 신은미

  
- 그동안 아홉 차례의 북한여행을 통해서 보통 한국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북한의 속살을 직접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북한 사회를 가까이 접하며 공감하는 장면도 있는 반면,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북한에 대해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또 북한에 대해 우리 남한이 배울 점이 있다고 느낀 점은?(이것도 국가보안법 위반이 되나?)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식량배급에 관한 것이다. 북한의 식량자급 자족율이 90% 정도라고 한다. 10%의 식량 부족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면 북한 인구의 10%, 그러니까 북한의 인구를 2500만 명이라고 할 경우 약 250만 동포들이 굶는다는 말이다. 

외화가 부족해 모자라는 10%를 수입할 사정이 안 된다고 해도, 식량이 골고루 배급만 된다면 큰 무리가 없을 텐데 왜 문제가 되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북한의 농지가 자연재해에 취약해 약간의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들어도 생산량이 급감하기 때문 아닌가 추측해본다.

북한에 대해 남한이 배울 점이 있다면, 그들의 '자주정신' 그리고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싸운 항일 레지스탕스와 그들의 후손을 지극히 모시는 일'이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까지 있는 남한과는 무척 비교가 된다.

얼마전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문재인 대통령 전용기로 모셔오는 장면을 눈물 글썽이며 봤다. 그 모습을 보며 '이제 모국 남한이 자리를 잡아가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무척 자랑스러웠다."

- 지난 2년 동안 문재인 정부로부터 강제추방과 관련한 완화 조치 같은 연락을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들은 적이 있는지?
"전혀 없다. 나보다 더 급한 분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형을 살고 있는 양심수들이다. 왜 이분들이 사면 복권되지 않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예전 전두환씨도 소위 '정치범'들을 사면한 걸로 아는데..."

"문 대통령, 힘든 난관 있더라도 극복하고 나아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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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식장으로 이동하는 남-북 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오전 판문점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후 공식 환영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남북관계에 있어서, '전문가' 입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을 듯하다.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지 절대 '북한 전문가'가 아니다. 이제 겨우 눈을 뜬 정도다. 물론 다른 분들에 비해 북한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여행하긴 했다. 북한의 9개 도(함경남북도, 평안남북도, 황해남북도, 자강도, 량강도, 강원도)를 모두 가 봤으니까. 아름다운 조국의 금수강산, 무엇보다도 심성이 곱고 착한 북녘 동포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바로 '통일'이다.

남과 북의 정치인들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 통일'이라고 믿는다. 그가 누구든 이를 이룩해내는 지도자는 금세기 최고의 민족지도자로 기록될 것이다. 북한의 김여정 제1부부장이 방한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께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돼 달라'라고 한 걸 기억하고 있다. '힘든 난관이 있더라도 꼭 이를 극복하고 나아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같은 말을 김정은 위원장께도 드린다."
  
- 어디선가 "지금 북한은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 오히려 남한이 북한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라고 한 적이 있던데,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예를 들어, 북한을 여행하며 나는 '공산주의'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흥남비료공장에 갔더니 '쌀은 곧 사회주의다'라는 글귀가 있었다. 예전에는 '쌀은 곧 공산주의다'였다고 하더라.

게다가 수확량의 자율적 지분을 보장하는 북한 농촌의 '포전담당제', 자율 경영과 이익의 자율 처분을 보장하는 '독립채산제' 등은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제도다. 북은 이처럼 신속히 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남쪽에서는 '문재인은 빨갱이 공산주의자' 같은 말을, 그것도 공당 대표라는 분이 그런 말을 하고, 일부는 그런 허언에 동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이런 걸 두고 '북맹'이라고 평가하더라. 사실 내 책 제목 <우리가 아는 북한은 없다>도 김진향 이사장이 항상 하던 말씀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북한을 옛 스탈린주의식의 공산국가로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북한에 대한 가짜뉴스, 엉터리 반공교육 그리고 북한의 현실에 대한 접근을 불허하는 국가보안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포전(내 땅)임을 강조하는 구호. - 2015년 7월 6일 황해남도 - ⓒ 신은미

 
- 남한 사람들이 극복해야 할 북한에 대해 가장 안 좋은 선입관이나 편견은 뭘까.
"아직도 많은 분들이 북한을 '인민들을 학대하고 조금만 잘못하면 재판도 없이 총살시키는 무시무시한, 무지막지한 사회 그리고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는 집단'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북한의 악마화'에 따른 결과물이다.

그러나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우리는 북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책의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북녘의 동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음악을 들으며, 무슨 영화를 보며, 무슨 음식을 먹고, 무슨 일을 하고, 아이들은 어떤 모습인지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와는 많이 다른 북녘 모습을 틀린 것이 아닌, '다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문화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만일 우리의 잣대로 북한을 바라보고 판단한다면 남과 북은 영원히 화합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이는 북녘의 동포가 남한을 바라보는 자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남녘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북녘 동포들도 평화를 갈망한다"
 

안아보고 싶어하는 내게 아이를 건내는 북녘의 애기엄마. ? 2012년 4월 17일 평양 - ⓒ 신은미

 
- 책에서 "머지않아 한반도에서 평화가 정착하리라 나는 확신한다"라고 했다. 그 확신의 근거가 뭔지 궁금하다.
"남녘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북녘의 동포들도 모두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북한에도 당연히 여론이 있으며 이는 무시되지 않는다. 나는 북녘 동포들로부터 남녘에 대한 적개심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의 적은 남한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이었다. 내가 북에서 목격한 많은 구호들이 반미·반일 구호들이었다. 북미협상이 잘 마무리지어지고, 북일관계가 개선되면 조국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리라 확신한다. 

최근 북한을 여행하고 돌아온 분들께서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에서 반미 구호가 사라져 가고 있다고 전했다. 어서 협상이 잘 해결돼 하루 빨리 평화체제가 들어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하고 있다."

- 영국에서 장애인 학교를 가까이 볼 기회가 있었다. 장애인들을 위한 국가의 지원과 복지 혜택이 잘 갖춰져 있고, 무엇보다 사회적 편견이 없었다. 우리와 비교해봤을 때 부러운 점이 무척 많았다. 평양에서 장애인 학교를 방문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때 느낀 점이 궁금하다. '장애인은 평양에서 살 수 없다'는 소문도 있어서.
"나와 남편이 남한의 한 장애인 예술단 이사로 있으면서 북한에서 장애인들이 차별을 당한다는 뉴스를 많이 접했다. 심지어 장애인은 평양에서 살 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이에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평양을 여행하던 중 한 장애인이 손수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세발 자전거 모양의 휠체어를 타고 혼자 운전해 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평양에도 장애인들이 살고 있다면 분명히 장애인학교가 있을 것이고, 현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북한 당국에 장애인학교 방문을 요청해 다녀왔다. 비단 평양뿐만 아니라 북한의 여러 도시에 장애인학교나 그들을 위한 시설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만 한 가지, 이들을 위한 시설이 낙후돼 보여 안타까웠다. 어서 남북 교류가 확대돼서 북녘의 이들에게도 지원의 손길이 닿길 소망한다."
 

북한의 장애인 학교. ? 2015년 7월 1일 평양 - ⓒ 신은미

  
- 2016년 큰물 피해를 입은 함경북도 동포에게 쌀을 전달하기 위해 '신은미 재단'을 설립하고 모금운동을 벌여 약 4000만 원의 성금을 모았다. 그후 중국에서 58톤의 쌀을 구해 화물트럭에 싣고 조중친선다리(압록강철교)를 넘어 신의주로 가 이 쌀을 '해외동포위원회'의 도움과 안내를 받아 북한적십자사에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신은미 재단'의 주요활동은 무엇인지? 또 향후 활동계획은?

"신은미 재단(Shin Eunmi Foundation)은 북녘의 동포들을 지원하고 교류를 넓히기 위해 설립됐다. 그러나 북한에 지원물자를 보내려면 미 재무부의 허락(license)을 지원할 때마다 받아야 한다. 게다가 2017년 9월 1일부터는 미 국적자의 북한 여행이 금지돼 북한에 가려면 미 국무부로부터 특별여권을 발급 받아야 한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북한의 장애인학교에 쌀을 전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상징적인 지원으로서 남녘 그리고 해외동포들이 북녘의 동포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북녘에 대한 지원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선 남녘 정부가 지원을 대규모로 해야 한다. 마침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식량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디 지원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 신은미 기자는 대구 출생으로 어려서 리틀앤젤스 단원으로 세계 40여 개 나라에서 공연했다. 그후 이화여자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에서 음악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받은 상으로는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2013년 2월), 제20회 통일언론상 특별상 (2014년 10월), 제17회 한겨레 통일문화상 (2015년 7월)이 있다.
#신은미 #김성수 #북한 #통일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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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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