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난 후, 부부에게 일어난 변화

[육아, 너와 내가 자라는 시간 ⑧]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상

등록 2019.05.31 15:27수정 2019.05.31 20:1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얼마 전 결혼 3주년을 맞이한 저희 부부는 아이가 태어난 후로 20개월 만에 처음으로 둘만의 외출을 했습니다. 전날 낮잠을 많이 잔 탓인지, 밤에 잠을 설치던 아이가 내내 눈에 밟혔지만 아이는 다행히 콧물을 많이 흘린 것 빼고는 어린이집에서 아주 잘 놀다 왔습니다. 
 

아이 낳고 오랜만에 찾아 온 영화관. ⓒ 전은옥

 
신접 살림을 차린 곳이 시부모님과 한지붕 아래였던 탓에 저희 부부는 결혼 준비 과정부터 사생활이나 신혼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생활 공간은 분리되어 있었고 한가로운 둘만의 시간도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후, 둘만의 여유로운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기를 재워놓고 둘이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여가생활을 즐기는 일은 시도할 수 없었습니다. 

육아로 늘 수면부족과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처지였기 때문에, 차라리 그 시간에 아기와 함께 잠을 자는 게 나았습니다. 아기가 자는 동안 자두지 않으면 쉴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또 아기가 자는 시간 중 일부는 집안일을 하는 데도 쪼개 써야 했습니다.

남편은 출근하면 아기와 떨어져 있고, 아기가 자다가 깨서 울거나 몸이 아플 때에도 곁에서 아이를 돌보는 제가 있어 혼자서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아기의 뒤척임과 불편한 호흡에도 신경을 쓰지만, 남편은 아기가 심하게 울지 않는 한 잠에서 깨거나 일어나지 않습니다. 세상 일 다 잊고 깊은 잠을 자기 때문입니다.  

신생아기에는 밤낮으로 모유 수유하고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지쳐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24시간이 아기에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신생아기와 돌을 지나고 20개월이 된 아기는 혼자서도 잘 놀지만, 여전히 호흡기 질환에 자주 시달려서 잠을 많이 설치는 편입니다.

혼자 잘 놀 때도 있지만, 그건 잠시뿐이고 저와 함께 놀아주기를 바랍니다. 제가 다른 일로 바쁘면 훼방하러 쫓아다닙니다. 그래서 아직은 손이 많이 갑니다. 덕분에 제 신경은 거의 아기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남편이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육아든, 가사든, 직업적 일이나 사회적 일이든 '일'에 집중하면, 오로지 그 하나에만 몰입하는 타입인데요. 남편은 말썽쟁이 아기가 집에 있어도 아기에게만 집중하지 못합니다.

출근할 때나 퇴근 후 아내의 포옹과 입맞춤, 스킨십을 그리워하고 따뜻한 위로와 환대, 사랑과 관심을 갈구합니다. 아내가 아이 돌보는 데만 집중하면 남편은 풀이 죽어 TV나 스마트폰, 군것질 등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휴식을 취합니다.
 

아기를 낳기 전 남편이 준비해준 아내의 생일 케이크. ⓒ 전은옥

 
이런 남편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늘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고, 집안일에 치여 살다보니, 저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안데 현실은 늘 지친 엄마, 피곤한 아내 상태입니다. 그래서 남편의 작은 스킨십도 사양하게 됩니다.

더운 여름에도 아기를 업어줘야 하니, 남편의 피부에서 전해지는 온기도 사양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남편의 뽀뽀조차 싫게 느껴집니다. 이런 제게 남편은 "뽀뽀도 못 하냐?"라고 묻고, 저는 "그래, 못 해" 하는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아기에게 대신(?) 뽀뽀를 합니다.

남편은 가사와 양육을 많이 분담해주는 편이지만, 그래도 가사와 양육은 압도적으로 제 담당입니다. 퇴근 후와 쉬는 날, 저는 우는 아기를 업고 재우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데 남편이 혼자서 TV를 보거나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면 슬슬 화가 납니다. 하루에도 5번 이상 혼자서 설거지를 하는 날에는, 왜 나 혼자서만 종일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냐며 억울해지기도 합니다.

특히 밤중에 저 혼자 잠 못자고 아이를 업고 달래고 다시 재우는 일을 반복할 때면, 혼자서 쿨쿨 잠만 자는 남편이 야속할 때가 많습니다. 수시로 아기 체온을 재고, 아이가 추운지 더운지 계속해서 신경쓰고, 물을 먹이기도 하고, 잠못 자는 아이 덕분에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데 남편이 대신해서 아이를 돌봐주지 않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남편은 출퇴근을 해야 하니 잠이라도 편히 자게 해주려고 제가 먼저 배려해주는 측면도 있습니다. 게다가 제 손목과 허리가 휘어질 것 같이 아파도, 자꾸만 업어달라는 아기를 남편도 대신 업어주고 싶다 하지만 아이가 거부합니다. 아이는 엄마 아니면 외할머니에게만 업히려고 합니다. 업히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엄마에게만 떼를 쓰지, 아빠에게는 잘 다가가지 않습니다. 남편은 아이가 자신에게 오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제가 아기 돌보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 돌보는 일이 아니라도, 집안일 역시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남편 뒷바라지로 해야 할 일도 의외로 엄청 많습니다. 시댁에 관련된 일도 아들인 남편보다는 모두 며느리인 제 차지입니다. 워킹맘이 아니라 전업주부라 해도 엄마에겐 쉴 시간이 없습니다. 

가정은 부부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데, 저희 집은 아직은 아기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언제까지 아이 중심으로 살아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아기보다 아내가 더 소중하다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아내와 아이 중 누구의 비중이 더 커졌는지는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지만, 엄마가 된 저와는 온도 차가 분명 존재합니다.

여전히 아내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고, 여전히 아내의 내조를 필요로 합니다. 틈만 나면 안아보자 하고, 뽀뽀하자 하지만, 아기 엄마가 된 저는 남편과는 자연스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랑과 관심이 아이에게로 이동한 느낌입니다.

먹는 음식도 이제는 남편의 입맛보다는 아기 위주로 요리를 하고 저도 아기에게 맞춰 음식을 먹습니다. 더워도 아기가 감기에 걸릴까 봐 냉방을 충분히 할 수 없고, 바람이 불 때는 창문도 마음껏 열지 못합니다. 아이의 수면에, 아이의 교육에 해롭다고 TV 프로그램도 가려보아야 하고, 모든 생활이 아이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부부 사이의 대화는 그 전처럼 많은 편이지만, 주로 아이에 관한 것, 경제적인 문제에 관한 것, 양가 부모님에 관한 일이 주되며, 그밖의 일로 대화할 일은 별로 없습니다. 

오랜만에 남편과 단 둘이 영화를 보고 점심식사를 하고 집에 왔습니다. 긴 외출은 아니었지만, 지난 20개월 동안 꿈도 꿀 수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남편은 손을 잡고 걷자고 했습니다. 함께 시장을 보고 남편이 물건을 들어주었습니다.

남편은 틈만 나면 단 둘의 외출, 혹은 아이를 데리고서라도 세 사람만의 여행과 시간을 이야기하지만, 육아에 지친 저는 혼자만의 휴식이 필요합니다. 절약과 저축을 위해서라도 자주 여가를 즐기기 어렵고, 대신에 아이를 위해 투자하거나 연로하고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더 자주 찾아뵈어야 합니다. 어린 손자를 보고 싶어 하시고, 자녀의 위로와 일손 도움을 필요로 하시니까요.  

그래도 가끔씩은 이렇게 가족의 중심은 부부라는 것을 서로 되새기며, 오롯이 서로를 챙기고 위해주는 그러한 시간을 가져야 하겠지요? 나이 들어서 부부 둘만 남겨질 때, 둘이 함께 있음이 어색해지는 그런 부부가 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육아 #아기를 키우면서 생긴 부부 사이의 변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