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모습에 문익환 목사가 오버랩되다

[문익환 방북 30주년 특별 기고 ⑤] '영원한 청년' 늦봄 문익환을 상상하며

등록 2019.05.13 15:48수정 2019.05.1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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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통일맞이는 방북 30주년을 맞아 당시 전대협, 노동계, 기독교, 학계, 통일운동, 일반 대학생 등 각 부분별로 7명의 기고문을 통해 판문점선언, 평양공동선언 시대에 '늦봄의 방북사건'을 재조명하고, 판문점선언시대 문익환 방북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찾고, 이를 재평가하고자 합니다. 다섯 번째 글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중인 박동찬씨가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2018년 4월 27일, 그날의 기억은 실로 벅찼다. 11년 만에 남북이 다시 만났다. 그중에서도 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출한 특유의 유머가 잊히지 않는다. 저녁 식사로 어렵게 평양냉면을 가지고 왔다는 말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 하는 것이었다.

'멀다'. 나의 기억 속에는 분명 '멀다'와 연관된 또 다른 장면이 있는 듯싶었다. 그래, 정확히 30년 전 문익환 목사의 방북 때다. 구룡연 폭포 그림 앞에서 문익환 목사와 김일성 주석이 사진을 찍고 착석하였을 때 김일성 주석이 말했다. "이거 너무 멀어서 안 되겠으니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회담에 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에, 통일의 물꼬를 틔우겠다는 일념으로 김일성 주석을 만난 문익환 목사가 오버랩되었다.
 

문익환 목사는 김일성 주석을 만나서 박용수의 '겨레말사전'을 선물했다. ⓒ 사단법인 통일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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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 군사분계선 사이에 두고 첫만남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지난 4월 27일 오전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첫 만남을 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1996년생인 나는 1994년에 타계한 목사님을 당연히 한 번도 뵌 적 없다. 그에 대한 나의 존경과 애정은 전적으로 목사님의 저서와 평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나의 이 기고문은 목사님에 대한 회상이라기보다는 상상이 더 정확할 것이다. 상상이면 어떠하랴. '잠꼬대 아닌 잠꼬대'를 적으신 목사님도 대단한 몽상가였으니 말이다. 궁극적으로 통일도,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1989년, 문익환 목사가 투옥과 납치, 피살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방북을 선택한 것은 당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분신하고 투신했던 젊은 청년, 학생들 때문이었다. 1986년 서울대학교 학생 김세진, 이재호의 분신 이후 문 목사는 "제발 죽지 말고 살아서 민주와 통일을 쟁취해야 할 게 아니냐"며 청년들에게 읍소했다.

하지만 그렇게 부르짖던 현장에서, 문 목사 목전에서 이동수가 또 죽음을 선택한다. 문 목사는 청년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고, 그 자책감은 두 팔을 벌려 절절하게 열사들을 호명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서, 역사 변혁의 뜨거운 현장에 함께하기 위해서 문익환 목사는 청년들의 고난의 십자가를 함께 지려고 하였다. 그렇게, 1989년의 방북이 이루어졌다.

'민통령'으로 통하는 문익환 목사의 사회적 참여도 물론 일찍이 시작되었겠지 많이들 생각한다. 그러나 문 목사는 확실한 늦깎이였다.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선생의 사망을 계기로 각성하였고, 본인이 장준하의 뒤를 잇기로 결심한다. 아호 '늦봄'도 여기서 유래하였다. '늦봄' 중의 봄은 계절이 아닌 눈으로 보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1976년 민주구국선언에 참여하면서 세상에 뒤늦게 눈을 뜬 본인을 염두에 두었던 게다. 늦어졌다는 부채의식 때문인지 어떤 젊은이보다도 열심이었다. 분신한 청년의 소식을 접하면 한밤중이라도 달려갔고, 밤을 새우는 학생들의 모임에도 참여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사실 문 목사가 청년으로 살 수 있었던 데에는 개인의 노력도 한몫하였다. 옥살이 와중에 한방의학을 독학하였고, 돌아가시기 전에는 건강법에 관한 책을 펴낼 준비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정신으로나 육체로나 '영원한 청년'으로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남북문제, 통일문제를 국가 정부 차원에서 다룰 문제로 치부한다. 통일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현실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남북관계가 밀월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거듭하고, 대북정책이 일관되지 못했던 것은 결국 통일문제에 있어서 제대로 된 시민, 나아가 청년의 참여가 없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문익환 목사의 '잠꼬대'가 하나둘 성취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는 몽상가가 아닌 시대의 예언자였다. 분단의 반대말은 통일이 아니고 일상이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이 '늦봄'이 되어 역사를 살고, 통일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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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중인 박동찬(23)씨 ⓒ 통일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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