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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이성의 영역? 배심제가 들춰내는 재판의 또 다른 영역

[리뷰]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19.05.12 18:39최종업데이트19.05.1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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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인의 성난 사람들> 포스터 ⓒ Orion-Nova Productions

 
 
오는 15일 한국영화 <배심원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는 지난 2008년 대한민국 첫 국민참여재판을 다루는 영화로 나이도 직업도 제각각인 8명의 배심원들이, 피고인이 갑자기 혐의를 부인하자 예정에 없던 유무죄를 다투게 되는 내용이다.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형사사건에서 유/무죄의 판단 및 사실관계에 대한 판결을 내리면 법관이 배심원 판결에 따라 형량을 판단하는 배심제는 사법 제도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키고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생겨난 제도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과 함께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을 말한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의문을 해소해 가는 과정이 민주주의이다. 배심제는 이런 민주주의의 원칙 아래에서 움직이는 제도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법정 영화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다. 빈민가 소년이 자신의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였다는 혐의로 기소된 재판에 참석한 12명의 배심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사법제도가 지닌 진정한 '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푹푹 찌는 더위 때문에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 12명의 배심원은 최종결정을 앞두고 회의실에 모인다. 조그마한 선풍기 아래에 선 그들은 소년의 유죄를 주장한다. 빈민가 출신의 소년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칼을 잘 쓴다. 여기에 증인이 있고 판사가 증거들을 모두 인정했다는 점에서 소년이 유죄라고 결론을 내린다. 헌데 8번째 배심원, 데이비스만은 소년이 무죄라고 주장한다. 더운 날씨의 영향 때문인지 배심원들은 사건을 빨리 끝내고 싶어한다. 그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배심원은 데이비스의 주장에 목소리를 높인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스틸컷 ⓒ Orion-Nova Productions

 
세 번째 배심원은 큰 덩치만큼 목소리가 큰 인물이다. 그는 소리를 질러대며 상대에게 주장을 강요한다. 세 번째 배심원이 위협과 강압을 통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반면 네 번째 배심원은 이성적으로 데이비스를 압박한다. 그는 법원에서 나온 증언과 증거를 내세우며 데이비스의 의견에 반박한다. 법정은 철저한 이성을 통한 증거와 증언이 판단되는 장소라 여겨진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판사가 인정한 증거나 증언에 대해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증거나 증언 하나하나를 의심하고 합당한 주장과 근거를 통해 무력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처음 배심원들이 다수결에 들어갔을 때, 데이비스를 제외한 11명이 유죄를 주장하였다. 상황이 압도적으로 기울어졌을 때에도 그들은 토론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승패가 기울어진 재판에서도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 반론을 이어가는 건 가장 합리적인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이 작품의 카타르시스는 이에 기인한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배심원들의 생각이 변화를 보인 것이다.
 
데이비스의 논리적인 어조는 다른 배심원들의 편견과 아집을 무너뜨리고 재판 이면에 숨겨져 있던 진실로 다가선다. 하지만 재판의 과정에는 이성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적인 논조와 논리에 의해서만 판결이 내려지지 않는다. 네 명의 배심원은 이성의 영역인 재판에서 감정에 기댄 선택을 내린다. 일곱 번째 배심원은 야구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생각이 아닌 다수결에 따라 선택을 결정한다. 열두 번째 배심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다수가 무죄를 주장하자 무죄로 의견을 바꾼다.
 
열 번째 배심원은 생떼를 쓴다. 그는 편견이 가득한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악에 받쳐 화를 내다 스스로 지친 채 의견을 바꾼다. 세 번째 배심원은 왜 재판이 이성의 영역만이 존재하지 않는지 잘 보여준다. 네 번째 배심원이 논리적인 측면에서 데이비스의 의견을 받아들인 반면 그는 끝까지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 그는 소년이 사회의 악이며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될 인물이라 생각한다. 그런 세 번째 배심원의 마음을 바꿔놓은 건 사진 한 장이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스틸컷 ⓒ Orion-Nova Productions

 
다른 배심원들과 격렬한 토론 중 그는 자신의 지갑에 넣어둔 아들의 사진을 보게 된다. 아들의 모습에서 재판에 선 소년의 모습을 발견한 그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의견을 바꾸게 된다. 재판은 절대적인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재판의 판결문에서 여러 가지 감형 이유를 발견하곤 한다. 이런 감형의 이유는 재판부가 지닌 감정의 영역에 해당한다. 배심제는 이런 감정적인 요인에 더욱 휩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판결에는 감정이 있기에 더욱 이성적인 영역을 돌아볼 수 있다. 소년에 대한 동정심이 없었다면 판사의 판단은 이성의 영역이라 여겨지고 결국 유죄를 선고받았을 것이다. 철저한 이성은 편견을 낳기도 한다. 2차 대전 당시 가장 이성적이라 여겨졌던 독일 민족은 그 이성을 바탕으로 인간을 나누고 학살을 자행하였다. 재판 역시 마찬가지다. 재판을 절대 이성의 영역이라 판단하고 사법부의 판단을 온전히 존중하는 태도는 편견과 오류를 낳게 된다.
 
배심제는 이성이 아닌 감정의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이성의 편견에 갇힌 진실을 발견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배심제가 지닌 의의를 조명한다. 재판은 절대 이성의 영역만은 아니다. 그러기에 신이 아닌 인간의 시선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선택을 내려야 한다. 재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재판은 99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는 데 그 존재 의의가 있다'는 말이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신의 영역을 대신한 자리인 만큼 '인간'을 위한 가장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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