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만난 산불 이재민 할머니가 오열한 이유

[현장] 산불 40일만에 첫 방문, 한국당 "정부 보상 미미"... 이재민 "한국당은 뭐했나"

등록 2019.05.13 21:12수정 2019.05.1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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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산불 이재민 변아무개(76, 여)씨가 13일 오후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대피소를 방문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이날 나 원내대표는 산불 발생 40일만에 처음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 김성욱

 
변아무개씨(76, 여) : "도와주세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 "죄송합니다..."
변아무개씨 :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흑흑흑..."


13일 오후 4시 11분,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위치한 이재민 대피소. 한 할머니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손을 붙잡고 연신 허리를 꺾으며 오열했다.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지난 4월 4일 고성 산불이 발생한지 40일만에 나 원내대표가 처음 피해 현장을 찾은 자리에서였다. 이 대피소엔 아직 28명의 이재민이 천막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관련 기사 : "발에 채이는게 기자들이더니 이젠 아무도 안 와~").

그가 통곡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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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3일 방문한 고성군 천진초등학교 이재민 대피소에서 눈물 흘리는 변아무개씨를 껴안으며 위로하고 있다. ⓒ 김성욱

 
나 원내대표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할머니를 꼭 껴안았지만 천진초 대피소에 도착한지 정확히 5분만에 다음 일정으로 향했다. 애초에 천진초 대피소 방문은 공식 일정에 포함돼 있지 않았지만 "우리 상황을 한번만 봐달라"는 이재민들 호소에 따라 예정에 없이 이뤄진 터였다.

나 원내대표와 취재진이 대피소를 빠져나갔지만 할머니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천진초 대피소 이재민 변아무개(76, 여)씨다. 그는 이번 산불로 인해 집이 모두 불에 탔다.

- 많이 울더라.
"너무 억울해서... 너무 억울해서..."

"에휴, 속상하니 말도 안 나오지." "그만 우세요 할머니.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 변씨의 통곡에 주변에 있던 이재민들도 함께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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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아무개(76)씨가 나 원내대표가 떠난 뒤에도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다. ⓒ 김성욱

- 나 원내대표에게 뭐라고 했나.
"도와달라고... 도와달라고... 그뿐이지. 억울하다고... 억울하다고... 흑흑흑."

- 무엇이 억울한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남한테 악하게는 안 했어. 근데 내가 무슨 죄를 지어놨길래 이렇게 집이고 뭐고 다 타버렸는지... 흑흑흑."

-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는 말하지 않더라.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농기계... 아이고 농기계들이... 집도 탔지만 우리 농기계가 엄청나게 탔어. 한 1억 5천만원 어치는 탔다고... 우리는 농부인데... 우리는 나이가 있잖아. 영감도 곧 80이고, 나도 곧 80이야. 그 돈 빚져서 어떻게 다 갚겠느냐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걸 갚을 길이 없어... 흑흑흑."

변씨는 아침 8시 15분 쯤이면 버스를 타고 자신의 밭에 나가 감자와 옥수수를 심는다. 농기계는 불에 탔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해놔야 하기 때문이다. 변씨는 차가 없어서 주변의 콘도나 연수원으로 가지 못한 채 대피소에 남아있다고 했다. 고성 이재민 959명 중 609명은 주변 연수원과 콘도, 109명은 마을회관, 213명은 친인척이나 지인 집, 그리고 28명은 변씨처럼 천진초 대피소에서 임시 숙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 다 하지 못한 얘기가 있나.
"얼른, 얼른 보상을 해줘야지. 정부든 한전이든, 좀 도와줘야지. 그래야 빨리 돌아갈 거 아니야. 여기서 살면서 일하려니까 몸도 시원치가 않어. 옥수수 숨그는데 쓰러질 것 같았어. 내가 그런 적이 없는데,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산불 40일 지났는데 이제야 방문해...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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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3일 고성 산불 40일만에 처음으로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 김성욱

 
앞선 오후 3시, 천진초 대피소 바로 옆에 위치한 토성면사무소에선 나 원내대표가 현장 브리핑을 듣고 이재민들에게 복구 대책을 약속하는 간담회가 열렸다.

최현익 고성산불 비대위 홍보분과장 : "일단 늦게라도 방문해주신 건 감사하지만, 정치인은 국민들 아픔을 헤아려야 된다고 본다. 근데 지금 불이 난지 한달, 아니 40일이 지났는데 이제야 방문한 것에 대해 주민들을 대표해서 유감을 표한다."

나경원 원내대표 : "진작 찾아뵙고 싶어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인사만 하면 복구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지금 왔다. 대통령부터 총리까지 쭉 오시는데 저희까지 오는 게 번거롭기만 할 것 같았다. 안정적으로 다시 일상과 일터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국회에서 여러 논의를 하겠다."


산불 발생 이후 40일만에 처음 현장에 방문한 제1야당 원내대표를 향한 항의는 있었지만 간담회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 한 시간여 진행됐다.

간담회에서 나 원내대표는 정부의 복구 대책이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나 원내대표는 "완파된 경우 1300만원 지원 등 정부가 대책을 내놨지만 이 같은 보상은 너무 미미하다"라며 "정부가 말로는 위로하지만 결국 이재민들은 잿더미 위의 빚더미에 앉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어 "마치 정부와 여당이 추경안이 통과되지 않아 재해 복구가 안 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라며 "추경안엔 소득주도성장에 따른 경제적 부작용을 입막음 하려는 예산이 많다. 자유한국당은 이 예산은 줄이고 이재민들에 대한 피해 복구 보상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앞장 서면서 예비비도 집행할 수 있도록 정부에 다시 한번 촉구하겠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또 "아직도 산불 원인에 대한 명확한 규명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면서 "한전이 책임지라고 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먼저 책임지고 나중에 한전에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 원인 규명이 안 된다고 차일 피일 보상을 미뤄선 안 된다"고도 했다.

정용기 한국당 정책위의장도 "추경은 원래 이런 재난 재해 때 편성하는 것인데 정치적 목적의 추경을 편성해놓고 언론에 추경 때문에 피해복구가 안 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이낙연)총리께서 깨알 메모했다고 홍보하더니, 그렇게 메모 했으면 뭘 했나. 바로 조치하는 게 정부가 할 일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현아(비례)·안상수(인천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이만희(경북 영천시청도군)·이양수(강원 속초시고성군양양군)·이철규(강원 동해)·정양석(서울 강북갑)·정용기(대전 대덕구)·정유섭((인천 부평구갑, 원내부대표)·황영철(강원 홍천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 한국당 의원들이 참석했다.

"정부도 문제지만... 제1야당 한국당은 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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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산불 이재민이 13일 고성군 토성면사무소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피해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 김성욱

 
그러나 이재민 쪽에선 한국당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노장현 고성 산불 비대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알맹이 없는 정부 종합 대책도 문제지만 종합 발표가 나기 전에 제1야당인 한국당은 정치권에서 무슨 대안을 제시했나"라며 "한국당은 추경이 안 된다고 말만 하지 말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촉구했다.

또 "정부에선 법대로 대책을 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럼 그 법을 바꿔야 하는데 그건 국회에서 해야 하지 않나"라며 "국회에서 특위를 구성하든 특별법을 만들든 정부나 한전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국당이 포문을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산불 관련 대책 940억이 포함된 정부·여당의 추경안은 선거제 개편 패스트트랙 이후 한국당의 장외 투쟁 등 여야의 극심한 대립에 가로막힌 상황이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추경안에는 ▲ 대형 산불진화용 헬기 도입 등 장비 보강 ▲ 산불 특수진화대 인력 확충 ▲ 산사태 등 산불로 인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긴급벌채·조림, 임도 개설·정비를 위한 940억이 포함돼있다.

한편, 산불이 발생했던 4월 4일 당일 저녁 정부의 위기 대응 컨트롤 타워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국회에 묶어둬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나 원내대표는 이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없이 간담회 자리를 떴다(관련 기사 : 난감한 나경원 "민주당이 산불 심각성 잘 설명했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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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3일 고성 산불 40일만에 처음으로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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