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반대측에 '동네 폭력배' 촌철살인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평전 3회] 글머리에 ③

등록 2019.05.17 14:12수정 2019.05.1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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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다스는 누구 것 입니까?"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국회 법사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문무일 검찰총장게 질문하고 있다. ⓒ 이희훈

 노회찬이 살았던 1950년대부터 2010년대의 한국은 '극단의 시대'였다.

전 케임브리지대학 역사학 교수 에릭 홉스봄이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진단하고 동명의 책을 썼지만, 한국의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6ㆍ25 동족상쟁의 폐허와 냉전, 이승만과 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와 반독재투쟁, 전두환ㆍ노태우로 승계되는 군부독재와 민주화운동, 김대중ㆍ노무현의 민주 정부와 독재 잔당의 저항, 이명박ㆍ박근혜의 국정농단과 촛불 저항이 대결하는 구도의 극단적인 모습이었다.

좀 더 소급하면 1945년 8ㆍ15해방과 함께 나타난 통일정부 수립론과 분단정부론, 친일민족반역자 처벌론과 옹호세력, 남북화해 정책과 수구냉전세력, 군사정권 비호 측과 민주정부지지 측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극단의 시대였다. 지역 갈등도 극단적이었다.

해방 70여 년 동안 친일→분단→냉전→독재세력 즉 변통세력이, 독립운동→통일정부→민주화운동의 정통세력을 누르고 장기집권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들이 희생당하거나 사회적으로 낙오되고, 친일ㆍ분단ㆍ독재세력이 권력과 부와 명예를 차지했다. 후자들은 친일과 독재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을 기반으로 기득권층이 되고 이를 세습하면서 오늘의 강고한 인적ㆍ물적 토대를 만들었다.

그동안 4ㆍ19혁명→한일굴욕회담반대운동→반유신운동→부마항쟁→광주민주화운동→6월항쟁→촛불혁명 등이 전개되어 민족사의 정통성 회복에 나섰지만, 박정희의 5ㆍ16쿠데타→유신정변→전두환의 5ㆍ17쿠데타→3당 야합→'이명박근혜' 집권 등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기득권을 유지했다. 김대중ㆍ노무현 10년의 집권 기간이 있었지만, 족벌신문을 핵심으로 하는 수구세력의 반격에 부딪혀 개혁다운 개혁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명박의 부패와 박근혜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촛불의 위세에 놀란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동조로 국회에서 탄핵이 이루어졌다. 이어 헌법재판소의 심판으로 박근혜가 권좌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수구 기득권 세력은 온존하고, 촛불혁명의 산물로 태어난 문재인 정부의 개혁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남북화해 정책까지 '김정은의 대변인' 운운하는 시대착오적인 막말까지 퍼부으며 역사를 냉전시대로 되돌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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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 입구에 추모의 글이 적힌 메모가 가득차 있다. ⓒ 이희훈

 
이것이 노회찬이 살았던 시대와 사후 1주년 동안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단의 시대상'이다. 어느 시대, 사회나 다르지 않지만 극단의 시대에는 권력지향ㆍ외세지향의 수구파와 민주지향ㆍ자주독립의 양심세력이 맞서게 된다. 수구파에게는 권세와 부와 안전이 보장되고, 양심세력에는 핍박과 간고와 죽임이 따른다.

노회찬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반유신운동에 참여한 이래 학생운동 10년, 노동운동 10년, 진보정당운동 12년, 현실정치 10여 년으로 이어지는 간고한 삶을 살아온, 우리 시대 대표적인 진보인물이고 양심세력의 주자였다.

새가 두 날개로 날 듯이 국가가 발전하려면 진보와 보수(수구가 아닌)가 건강하게 마주하고 공존해야 한다. 그럼에도 긴 세월 한국에서는 진보를 좌파로 몰고 이를 박멸하는데 국가권력이 동원되었다. 이승만의 조봉암 사법살인으로부터 시작된 국가폭력은 박정희ㆍ전두환 정권에서 극점에 이르고 지금도 그 적폐가 작동되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차점보다 무려 550만 표 이상을 득표하고 집권한 현직 대통령까지 용공으로 몰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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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3일 저녁 창원 범블비이벤트아트홀에서 노회찬 국회의원,, 박한용 교육홍보실장과 함께 '적폐청산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 윤성효

 
독재정권과 사이비 문민정부에서 '무균실 수준'의 진보 말살 책동에서도 노회찬과 같은 진보정치인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깝다.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6ㆍ25의 상흔과 긴 세월의 냉전, 그리고 극우가 '진보~친북'의 프레임을 꾸준히 생산하는 상황에서 그는 움츠리지 않고 활동했다. 지금도 족벌언론과 수구 지식인들이 '좌파여론' 생산의 '주류'가 되고 있다.

노회찬에겐 진보 진영의 그 누구도 갖지 못한 대중적 메시지 전달 능력이 있어, 이건 정말이지 너무도 중요한 자산이다. 그동안 진보 진영의 언어는 방언이었으니까. (웃음) 자기들 끼리나 통하는 암구호를 대중이 해독하지 못한다고 투덜대던 진보 진영에서 최초로 등장한 동시 통역사였지. 물론 현재까지도 최고의 동시통역사고. 게다가 대중의 정서를 간파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도 발군이라고. 이런 진보정치인, 아니 이런 대중정치인 자체가 우리 정치판에서 거의 없어. 대한민국 정치 현장에서 이만한 양반 찾기 진짜 힘들다고. (주석 1)

노회찬은 조봉암이 해내지 못한 진보정치의 대중화에 다시 물꼬를 트고 메마른 논에 물을 댔다. 2017년 9월 20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에 완강히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동네 파출소가 생긴다고 하니까 그 동네 폭력배들이 싫어하는 것과 똑같은 거다.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사느냐?"라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동네 폭력배'에 비유하는 촌철살인을 날렸다.

백 마디의 비판 성명서보다 훨씬 날 선 멘트이고 비유였다. 시간을 건너뛴 2019년 4월 말, '사법개혁법안' 상정을 물리적으로 막고자 국회를 점거한 한국당의 행태에, 저승에서 노회찬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노회찬의 시의적이고 직설적인 멘트는 당대 정치인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그 만의 장기였다. 그것도 어쩌다가 가끔 튀어나온 촌철살인이 아니라, 긴 세월 다양한 독서와 사회활동으로 숙성된 철학적 이데아였다.

이와 관련 그는 말한다.

"재미있는 화술은 현란한 기교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적인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반보수 투쟁은 죽창 하나 들지 않고도 거함에 구멍을 내는 비수가 되었고, 따라서 적대세력이 그만큼 많아졌다.

이명박 정권은 노회찬의 존재에 크게 거북스러워했다. 권력의 수하들은 주군의 심지를 읽었던지 검찰은 '삼성 X파일' 폭로를 기소하고 법원은 정치인에게 사형선고와 다르지 않은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했다. 끊임없이 기득세력에 촌철살인의 말 폭탄을 쏘아대고, 이에 국민들이 환호하자 의원직을 박탈한 것이다. 재벌과 검사들의 비리 폭로에 보복당한 셈이다.

법정에서 노회찬은 담담한 어조로 소감을 밝혔다.

"폐암 환자를 수술한다더니 폐는 그만두고 멀쩡한 위를 드러낸 의료사고와 무엇이 다르냐."

주석
1> 김어준, 『닥치고 정치』, 229~230쪽, 푸른 숲, 2011.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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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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