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자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평전 5회] 글머리에 ⑤

등록 2019.05.19 16:14수정 2019.05.1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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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광장에 시민분향소를 마련하려던 '용산 참사' 유가족들과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 선대식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이라는 노블레스(noblesse)와 '책임이 따른다'는 오블리주(oblige)가 합친 말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1808년 프랑스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 등 어수선한 사회상을 반영하여 나온 말이 자국의 영역을 넘어 국제적인 도덕 교과서처럼 쓰이게 되었다.

봉건군주체제→식민지→분단과 전쟁→백색독재와 군사독재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실현되지 못한 역사였다. 왕족과 지배층은 사복 채우기에 권력을 남용하고 한말 대신들은 매국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

6ㆍ25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은 도망치기에 바쁘고 군부 책임자들은 전란통에 군수물자 착복으로(국민방위군사건) 수천 명 청장년의 사상자를 냈다.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주모자들은 남의 기업과 대학을 가로채고 천문학 수준의 뇌물을 받아 챙겼다. 그들의 혈통과 정신적 DNA를 받아 집권한 위정자들 역시 공권력을 사유화하면서 국고는 물론 뇌물을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들의 추종자와 부역자들도 행태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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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와 함께하는 '트위터 번개' ⓒ 김영국

 
그들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는커녕 신분을 이용해 이권을 챙기는 산적 노릇을 해온 것이다. '정의 없는 권력은 산적'(플라톤)이라는 가르침이 전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권력을 신분 상승용으로 이용하고 재물을 갈취하면서 오블리주는 버리고 노블레스만 행사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바탕에서 발달한 서구식 자본주의가 유교와 식민지의 유재로 가득한 한국 사회로 전임되면서부터 사단이 일어났다. 일제 협력자(친일파)들이 미군정의 요직에 들어가 귀속재산을 가로채고, 이후 독재정권과 유착하면서 자본가가 되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 재벌기업은 권력의 특혜ㆍ밀수ㆍ저금리ㆍ탈세ㆍ저임금을 통해 축재하고 권력에 정치자금을 바치고 족벌신문에 광고를 주면서 먹이사슬의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래서 재벌공화국이 되고, 재벌은 정ㆍ검ㆍ언과 유착하여 거대한 공룡이 되었다. 노희찬이 이들을 건드렸다가 의원직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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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진보신당 주최로 열린 '반MB연대 토론회'에서는 비판적 관점에서 반MB연대론이 검토됐다. ⓒ 진보신당

 
노회찬은 노블레스가 될 수도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국회의원의 신분이면 노블레스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귀한 신분의 유지보다 진보의 가치확산을 우선에 두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였다. 진보신당 대표시절이던 2009년 8월 12일 진보신당이 주최한 대토론회 〈반MB연대, 이대로 좋은가〉에서 발표한 글이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이명박 정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부분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특정 사회 세력들의 대변자에 불과하다. 즉 우리가 맞서 싸울 상대로, MB 이전에 'MB족'이라고 해야 할 집단이 있다.

누가 MB족인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은 MB족의 정체를 너무도 솔직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그들은 바로 부자 감세의 혜택을 입은 재벌, 금융ㆍ부동산 불로소득자 등 소수 부유층이다.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고위 관료와 이들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일부 수구 언론이다.

이들은 세계 경제 위기 와중에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고 그나마 얼마 안 되는 복지 정책을 축소하면서까지 자신들의 과세 부담을 줄일 정도로 뻔뻔하다. 그 뻔뻔함 뒤에는 이들의 치부 방식의 야만성이 숨어 있다.


노회찬의 진단은 이어진다. 첫째 부분을 소개한다.

이들의 치부 방식은 첫째 약탈이다. 약탈이라 함은 단기적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추출하기 위해 사회의 다른 커다란 부분, 즉 다수 대중을 희생시키며 아예 그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그 주된 희생자의 명단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고, 중소기업이 있고, 영세 자영업자들이 있다. 이들을 약탈한 대가로 재벌 대기업에만 부가 쌓여간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명박 정부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양산하고 기존의 보잘것없는 권리마저 회수하려 한다. 또한 이들은 영세 자영업자는 죽어 나가도 아랑곳없이 중소 유통업까지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장악한다. 이미 숱하게 인용된 사회 양극화 지표들이 이러한 약탈의 결과들을 증언한다.

그렇다고 이게 최근의 '파시즘' 논쟁에서 주목하는 것 같은 초법적 폭력으로만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 민주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으로 포장한 '폭력'이 공공연히 행사되고 있는 것이다. 신규 인력을 무조건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도, 세입자들의 권리를 철저히 무시하며 재개발을 강행하는 것도 모두 다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폭력이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의 부를 더욱 늘리기 위해 약자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이런 사회는, 이미 '파시즘'이 논란되기 이전부터 '인간의 나라'이기보다는 '동물의 왕국'이었다.


부패 정권과 재벌의 연관성을 이처럼 예리하게 분석하기란 쉽지 않다. 진보적인 경제학자 아닌 정치인의 글이기 때문에 더욱 값지다. 노희찬은 정경유착의 구조에서 노블레스의 신분 유지보다 오블리주의 역할에 충실한 보기 드문 정치인이었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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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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