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옥상 "왜 그렇게 땅과 흙을 그렸냐면..."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 민중 화가 임옥상 인터뷰 ②

등록 2019.05.19 19:32수정 2019.05.1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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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600여 년 동안 문화의 역사를 일궈온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는 종로에서 나고 자라며 예술을 펼쳐왔거나, 종로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 시대의 예술인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임옥상 화가 ⓒ 임옥상미술연구소

 
성찰의 힘으로 굳건히 세운 작품세계

그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넓혀가면서도 스스로가 향하는 방향성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림 연구장'을 꾸준히 써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열심히 할 때는 그 연구장이 금세 채워지는데, 방황하고 그럴 때는 그것도 안 써지더라고요. 사람 인생이라는 게 어찌 보면 흘러가는 거잖아요?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가는 건 불행한 거죠. 그런데 글을 쓰면, 언표(言表)가 되잖아요. 흔히 스스로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들 하지만, 글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더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게 되죠. 다른 누구 탓을 하기보다, 나한테 혹독하게 책임을 묻게 되니까요."

광주교대(1979~1981)와 전주대 미술학과(1981~1991) 교수를 역임하던 시절 학생들에게 유독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왜 그림을 그리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답만을 찾아가는 여정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어제 그린 그림이 좋았다면 무엇이 잘 됐고,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뿌리가 없는 사람은 자랄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와 전통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왜 이런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그 철학적 배경에 대해 돌아볼 줄 알아야 해요. 스스로만 우뚝 설 것이 아니라, 세상을 두루두루 껴안으면서 열심히 성찰해야죠."
 

흙_2018 ⓒ 임옥상미술연구소

 
누구보다 열심히 성찰해온 그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 흙을 주로 활용해왔다.

"처음에는 땅을 열심히 그렸어요.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인즉슨, 결국 내가 직립하는 토대잖아요? 나의 모태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땅을 많이 그렸는데 그 땅은 결국 일제 식민지, 전쟁과 분단을 다 겪고, 독재 속에 노출된 땅을 상징적으로 표현해낸 것이었죠. 땅을 많이 그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흙을 만지게 됐고, 흙을 작품에 많이 쓰게 됐어요."
 

땅4_1980 ⓒ 임옥상미술연구소

 
줄곧 뿌리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던 그는 우리 전통 시서화(詩書畫)를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서화를 그려왔다.

"동양화를 전공하면 고리탑탑한 틀 속에 갇힐 것 같다는 생각에 상대적으로 조금 자유로워 보이는 서양화를 선택했던 거예요. 차악(次惡)의 선택이었지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죠. 전통에서 벗어나는 순간 죽도 밥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를 좋아한다면 시 낭송을 하면서 써보기도 하고 노래를 좋아한다면 '얼씨구' 따라 불러봐야 그 맛을 알듯이, 뭔가를 좋아한다면 최소한 따라 하기라도 계속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벼루에 먹이 마를 틈을 주지 않기로 결심한 거예요. 바깥에 나갈 때는 휴대용 붓펜을 들고 다니면서 씁니다. 나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와 서예와 그림이 하나가 되는 전통은 그림 상으로 보면 최고로 완벽한 형태라고 봐요.

오늘날에는 우리는 생각하는 것도 별로 없고 인용만 잘하죠. 쓰는 건 컴퓨터나 휴대폰 자판으로 두들기다가 끝나고, 그림은 내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상관없는 종목으로 전락했죠.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유기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마네킹 같은 존재와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시서화의 전통을 오늘날에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흙_2018 ⓒ 임옥상미술연구소

     
뿌리와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예술이 우리 삶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노력해온 그는 비정상적인 자본주의가 넓은 예술 저변을 삼키고 장악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림에 관심을 갖고 구매하는 일부 컬렉터들이 작품을 독점해 버리게 되면, 일반 대중은 그들의 노리개로 전락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죠. 상업화된 작품들이 마치 문화의 전부인 것처럼 사람들이 흠모하고 손뼉 치는 구조를 만들어서 관중들을 구경꾼 내지는 무능력한 사람들로 규정지어 버리기 때문이죠.

그런 문제점을 불식하려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 필요가 있어요. 비싼 작품을 사서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녀들이 그린 그림이라도 집에 한두 개 붙여놓을 수 있는 그런 사회만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거죠."


끊임없는 회의와 성찰을 통해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대중과 소통해온 그는 앞으로도 화폭에 세상을 담고, 그 그림을 세상에 꺼내놓으면서 소신 있는 예술가로서의 행보를 이어갈 것이다.
 

보리밭_1983 ⓒ 임옥상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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