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에 담은 진안, 낮은 푸르고 밤은 붉다

푸른 숲 그리고 밤하늘을 수놓는 은하수

등록 2019.05.17 14:37수정 2019.05.1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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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사진은 모두 네거티브 필름을 이용해 촬영 후 직접 스캔하였으며 사이즈 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 사진마다 필름의 종류를 괄호 내에 표기하였습니다. - 기자 말

진안고원의 푸른 숲

5월 초순의 숲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산의 한 면이 한 눈에 들어올 만큼의 거리에서 여름이 물들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녹색들이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다. 다 함께 진녹색을 띠는 7월의 숲도 참 좋지만, 어린 잎들이 제각각 다른 채도를 뿜어내는 5월의 숲은 그래서 더욱 좋다.

'호남의 지붕' 전라북도 진안은 대표적인 한국의 고원이다. 고원이란, 다른 지역과 급경사면으로 구분되어 있고 표면의 기복이 작은 곳을 말한다. 이곳은 봄과 여름이 늦게 찾아온다. 당연히 가을과 겨울은 다른 곳보다 조금 성급하다. 5월, 진안에서는 다양한 녹색들과 함께 아직 지지 않은 산벚꽃들이 마지막 자태를 뽐낸다.
 

5월의 숲(Pro400H)운장산 갈크미재를 내려오며 ⓒ 안사을


진안에서 가장 유명한 산은 마이산이다. 지질 탐구의 현장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말의 귀처럼 쫑긋 솟아오른 그 모습은 진안 어디에서 보아도 잘 보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기이한 풍경을 지니지만, 다양한 다른 풍경 속에서 고명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부귀산 전망대에서 새벽녘 운해를 바라보면 마이산의 모습이 화룡점정이 된다.
  
돌만 있을 것 같은 마이산에도 당연히 숲이 있다. 전국에서 가장 늦게 피는 벚꽃 길 또한 유명하다. 아래의 사진은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위치한 곳에서 서편으로 1km 남짓(직선거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전망대를 담은 것이다. 해맑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소처럼 연둣빛 새 잎들이 각각의 생명력을 분출하고 있다.
 

마이산의 숲(Pro400H)비룡대와 전망대 ⓒ 안사을

 
진안에는 마이산 외에도 매력적인 산들이 더 있다. 수려한 경관과 잘 보존된 환경에 비해 찾는 이가 적어 더욱 좋다. 운장산은 깊은 숲과 계곡이 일품이고 구봉산까지 연결해서 걸으면 충분히 긴 산행을 할 수 있다. 가을철 구봉산의 경치는 작은 금강산이라 일컬어도 부족함이 없다.
 

연화제와 구봉산(Pro400H)구봉산 북쪽에 놓인 작은 저수지. 남쪽을 바라보고 찍기 때문에 역광이 심하다. 역시 다양한 색깔이 산의 경사면을 수놓고 있다. ⓒ 안사을

 
부귀산의 전망대에서는 조금만 일교차가 심해도 운해를 자주 볼 수 있다. 덕태산과 선각산을 연결하는 산행 경로도 참 좋다. 특히 선각산은 남원과 무주, 장수와 진안의 유명한 산들을 쭉 조망할 수 있는 숨겨진 명산이다.

필자는 별을 찍기 위해 선각산을 자주 올랐다. 주변 산들보다 높이 솟아 있고(1,142m) 광해가 적어 천체 관측 및 촬영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텐트를 칠 수가 있어서 촬영 사이사이 쪽잠을 자기에도 편하다.
 

선각산과 별일주(Portra800/F8/노출 4시간)별의 선이 끊어진 곳은 구름이 지나간 자리이다. ⓒ 안사을

 
밤하늘을 수놓는 은하수

이 시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비단 낮에만 있지 않다. 5월의 밤은 1년 중 가장 화려한 은하수가 떠오르는 때이다. 물론 은하수는 사계절 모두 관측할 수 있다. 은하수란, 특정한 별자리 하나가 아니라 우리은하를 구성하는 별들의 띠이기 때문에 그렇다. 마치 바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면 어디에나 수평선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 중에서도 여름철의 은하수가 가장 화려한 이유는 궁수자리와 전갈자리가 떠오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우리은하의 중심부로, 색깔로 보나 두께로 보나 가장 화려한 은하수의 띠가 존재하는 곳이다. 육안으로 보면 하얀 별들의 띠로 보이지만, 우주에서 오는 희미한 빛을 긴 시간 동안 기록하면 색색의 천체가 필름에 담긴다. 가장 화려한 색은 단연코 발광성운이 뿜어내는 붉은 빛일 것이다.
 

은하수, 목성, 전갈자리(Portra800/F4/노출 20분)왼쪽 아래의 붉은 부분은 궁수자리 부근의 성운이다. 파랗게 빛나는 것은 별이 아니라 목성이다. 오른편으로는 전갈자리. ⓒ 안사을

 

길게 늘어선 우리은하의 별들(Portra800/F4/노출 20분) ⓒ 안사을

   
기사의 첫머리에 밝혔듯이 모든 사진은 필름으로 촬영했다. 중형 컬러필름에서 최고감도는 현재 800이다. 2000 이상으로 감도를 올릴 수 있는 디지털에 비하면 노출 시간이 몇 배는 더 필요하다. 필름 감도 800과 디지털 감도 1600은 단순히 두 배의 노출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상반칙불궤 현상 때문에 4배에서 6배 정도의 노출시간이 더 필요하다.

디지털로 은하수를 담는 설정은 일반적으로 <셔터스피드 20초/조리개2.8/감도3200>으로 잡는다. 감도 800인 필름으로 조리개 설정을 4로 놓으면 노출 시간은 30분으로 늘어난다. 30분 동안 셔터를 열어놓으면 당연히 별은 길게 흐른다. 지구는 끊임없이 자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수자리 은하수(Portra800/F5.6/노출 20분)새벽3시 반, 궁수자리 은하수. ⓒ 안사을

 
이때 적도의라는 장비를 사용한다. 지구의 자전 방향 반대로, 같은 속도로 돌려주는 장비이다. 말은 참 간단하지만 정확하게 지구 자전의 중심 축을 잡아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녹록지 않다. 물론 극축과 별의 위치를 자동으로 잡아주는 장비들이 있지만 산 위로 가지고 올라가려면 헐크 정도의 근력은 있어야 할 것이다.

휴대용 적도의 세트는 5kg 정도의 무게이기 때문에 배낭에 넣어서 올라갈 수 있다. 텐트와 카메라에 그 무게를 더해야 하기 때문에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이 날도 25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한 시간 가까이 산을 올랐다. 
 

장비와 텐트(핸드폰)휴대용 적도의에 카메라를 연결한 모습. ⓒ 안사을

 
한 컷당 20분에서 30분 정도의 노출 시간이 필요하고, 매번 극축을 맞춰주어야 하니, 보통 한 장을 찍는 데에 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밤을 꼬박 새도 다섯 장 정도밖에 찍을 수 없다. 그믐이어야 하고, 구름이 없어야하며, 되도록 주말이어야 하는 촬영 조건 때문에, 하루에 다섯 장이 아니라 한두 달에 다섯 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올해는 운이 기가막히게 좋았는지 연휴 기간 동안 은하수를 찍을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찾아왔다. 첫 번째 촬영은 5월 4일 새벽으로 삭 직전이었고, 두 번째 촬영은 7일 새벽으로 삭 직후의 월령이었다. 당연히 밤새 달이 뜨지 않았고 미세먼지가 꽤 있었지만 산꼭대기의 대기는 비교적 청명했다.

두 번째 촬영지 역시 진안이었다. 첫 번째 촬영 날보다 대기의 질이 훨씬 좋아서 굳이 산꼭대기로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깊은 산중의 작은 저수지로 차를 몰았고, 역시 밤을 꼬박 새서 하늘을 담았다. 
 

은하수(Pro400H/F2.8/노출 25분)165mm(환산82.5mm)의 준망원 화각으로 담은 은하수. 점상이 또렷하여 여러개의 성단이 확연히 보인다. ⓒ 안사을

   

은하수(Pro400H/F2.8/노출 25분)바로 위 사진과 같은 위치이지만 화각이 다르다. 90mm(환산45mm)로 담았다. 별과 성운들 사이 까만 부분은 우주의 먼지가 빛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 안사을

 
육안으로 위 사진과 같은 색색의 밤하늘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달이 없는 밤, 동남쪽 하늘을 수놓은 하얀 물결만 보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은하수는 우리가 속한 '우리은하'의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좀 더 감격스럽다.

우리은하를 전지 한 장의 사진으로 크게 뽑더라도, 그 속의 태양계는 하나의 점보다 더 작으며 그 속의 지구는 말 할 것도 없다. 우리는 먼지보다 작은 곳에 서서 지름의 길이만 10만광년인 은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체 우주 속에서의 우리은하의 크기는? 그 역시 먼지보다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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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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