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정치가 이혼해야 한다고?

[주장] 핵무기 개발 등 역사의 '오점' 존재하지만... 정치와 과학, 분리할 수만은 없어

등록 2019.05.28 09:59수정 2019.05.2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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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의 정치화.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들리는 말이다. 이 말은 정치적 중립이 필요한 사항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연관되어 그 순수한 의미를 훼손당할 때 주로 쓰인다. 여기서 빈칸에 들어가는 단어 중 자주 보이는 것이 "과학"이다.

과학은 정치와는 별개의 것으로 그것과 연관되는 순간 정치의 도구로 전락해 학문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막기 위해서 과학을 정치와 분리하여 정치적 요소가 과학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과연 이런 생각이 옳은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정치가 과학을 위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를 제시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과학은 정치와 연관된 적이 있으며 그 결과가 좋지 않았던 사례들이 존재한다.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자신의 나라가 전쟁에서 이기도록 독가스 무기를 발명하였으며, 독일군 고위층에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그 의견이 받아들여져 그의 독가스 무기는 수많은 프랑스군과 러시아군의 목숨을 앗아갔다.

"평화 시의 과학자는 세계에 속해있지만, 전쟁 시의 과학자는 국가에 속해있다"라는 그의 발언은 하버가 그의 과학적 지식을 자신의 국가를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끔찍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으로 망명한 과학자들은 나치 독일의 핵무기 개발에 대응하여 미국 또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결국 미국은 핵무기를 개발, 사용했고 그 위력을 본 여러 강대국들이 뒤따라 핵무기를 만들어내면서 인류는 스스로를 위협하는 이 무서운 무기에 떨게 되었다. 이 또한 과학자들이 정치적 의견을 피력해서 일어난 결과이다. 이러한 사례는 앞선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선 과학과 정치가 분리될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과학은 세상의 진리,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학문을 말한다. 과학의 대상은 원자핵보다도 작은 쿼크에서부터 거대한 은하들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과학과 연관된 사람은 직접적으로 과학을 탐구하는 과학자, 공학자만이 아닌 과학기술을 누리며 이용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다.


정치는 특정한 단체의 권력을 잡기 위해 투쟁하며, 구성원의 안녕과 이익을 위해 행하는 활동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정치는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이상 없어질 수 없다. 과학은 인간이 주체가 되어 행하는 학문이므로, 정치는 과학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과학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과학 또한 정치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과학과 정치는 분리될 수 없다. 

이는 과학이 정치에 휘둘려 그 의미와 순수성을 잃어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과학이 정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과학은 정치를 올바른 방향을 이끌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사례에서는 과학이 정치와 어울려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것을 바로잡으려 노력한 사례 또한 존재한다. 앞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 과학자 중 한명이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핵무기의 파괴력을 깨닫고는 훗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였다. 그리고 핵무기 반대 운동에 참가하였다. 

정치가 과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다. 우수한 연구에 대한 지원금 제공, 세계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 간의 협력 증진 등은 정치의 힘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로, 사회 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을 통해 이를 실현할 수 있다.

과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해 과학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며, 연구결과를 명확하게 전달해 정치인들의 정책 결정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한 예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 (브렉시트) 당시 영국의 과학자 13명은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공동 서한을 발표하였다.

이들은 브렉시트 실행 시 과학 연구비 지원 축소와 유럽 여러 나라 과학자들 간 협력하는 환경의 악화를 우려하며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각국 정부가 과학자 단체에 자문을 구하거나 특정 사항에 대해 연구소, 대학에 분석을 의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 지도자는 과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고 실행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플라톤이 철학자, 또는 철학을 공부한 사람에 의한 정치인 "철인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처럼, 현대에는 과학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에 의한 정치인 "과학인정치"가 필요하다. 고대 그리스인과 현재의 우리와의 차이점은 우리에게는 정치 지도자를 뽑을 힘이 있다는 것이다.¹

과학계, 정치계에 종사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의 역할이 바로 이것이다. 이 평범한 사람들은 선거권을 행사해 정치가 과학 발전에 기여하도록 할 수 있다. 과학의 혜택과 부작용이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것에 따라 그에 대한 결정과 책임 또한 정치라는 형태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1. 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당시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었으나 참정권이 없는 노예의 존재와 여성참정권의 제한 등 현대적 관점의 민주주의에는 미치지 못한다.
#과학 #정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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