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이 뭐가 무서워, 남자인데"

어긋난 '남성성'을 요구하는 사회... 나는 불편하다

등록 2019.05.15 08:59수정 2019.05.1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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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 혼나고 힘 쓰는 일엔 여지없이 동원됐으며 밤길 정도는 안 무서운 척 팔자걸음으로 씩씩하게 걸어야 '남자'가 됐다. ⓒ unsplash

 
남성성(男性性)은 일종의 젠더 정체성이다. 남성과 구별된다. 그럼에도 남성성은 종종 남성의 성질을 획일적으로 대변하는 상징처럼 치부되는 경우가 있다. 


1988년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학교 운동부 남학생들이 타학교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일은 일부 학생들의 정학처분으로 종결됐다. 학교도 학부모도 모두 쉬쉬한 그 일은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지역신문조차 다루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학생이 원래 날라리였다는둥, 이미 몸을 함부로 굴리던 아이였다는둥, 근거 없는 2차 폭력으로 이어져 마치 그렇기에 그런 일을 당해도 무방하다는 듯 치부됐다. 심지어 범죄의 형별적 관심보다 일부 남학생들 사이에 퍼진 부러움과 우러르기는 강간을 성적판타지 쯤으로 여긴 저열한 성의식의 민낯을 그대로 대변했다. 당시 티브이에선 멀쩡히 길을 가던 여성들이 봉고차에 납치되어 섬에 팔려가는 인신매매 뉴스가 끊이질 않았다.

"남자가 눈물이 많아서 어디에 써."
"힘 쓰는 일은 남자가 해야지."
"남자인데 밤길이 뭐가 무서워."


나는 이러한 말을 듣고 자란 세대다. 울면 혼나고 힘 쓰는 일엔 여지없이 동원됐으며 밤길 정도는 안 무서운 척 팔자걸음으로 씩씩하게 걸어야 '남자'가 됐다. 동성친구에게 가을 단풍을 정성스레 말려 책갈피를 만들어 주는 짓은 '소녀감성' 프레임에 갇혔고 말투가 나긋해도 달리기를 못해도 공을 못던져도 계집애 같다는 말을 들었다. 마치 그건 남성성에 위배되므로 비하받아 마땅한 조롱거리였다.

공감력과 감수성은 여성의 전유물인 양, 그것과 멀어질수록 확보되는 게 남성성처럼 여겨졌다.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에서 남자 선생님들이 남학생들에게 가감없이 토해내는 여성 비하적 음담패설은 같은 남자들 끼리여서 용인되는, 사춘기 소년들을 진정한 남자로 만드는 교보재처럼 둔갑되었다. 판단 능력이 있든 없든 호불호도 상관없이 선생님이나 학생들이나 그저 다같이 낄낄거려야 남성성으로 하나되는 기이한 장면들이 연출됐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잠재적 성폭력이었다.


남자가 해야죠

이십대, 소규모 게임 회사를 다닐 때 일이다. 근거리 사무실 이사를 위해 휴일에 전 직원이 강제 동원 됐다. 당연하다는 듯 집기를 들고 나르는 일은 남자 직원들의 몫이었다. 어느 직원은 디스크가 있어도 어느 직원은 근력이 약해도 예외없이 남자니까 힘을 써야 했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남성과 여성 자체를 분리해 대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분화된 생물학적 성별 구분에서 나아가 사회적 인간의 개별 성질을 보다 세밀한 시선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자신의 고유한 성질대로 존중받길 원치 않는 사람도 있을까. 누구나 알듯이 존중(尊重)의 사전적 정의는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이다.
#남성성 #여성성 #남성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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