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망언으로 먹고사는 그들이 위험한 진짜 이유

[서평] 5.18 기념재단 '너와 나의 5.18'... 광주의 오월을 이해하기 위한 교과서

등록 2019.05.15 20:25수정 2019.05.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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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 한강 <소년이 온다> 중에서

인간이 권력을 얻기 위해선 못 할 짓은 없는 걸까요? 죽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무참히 짓밟혔던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의 물음은 또 한 번의 5월을 맞은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힘겹게 읽으며 '5.18 민주화운동'을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지도 3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틈나는 대로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책, 기사, 영화 등 기록물들을 접하며 5.18을 조금은 더 알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은 여전히 '나'의 이야기는 될 수 없었습니다. 아니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이 고통의 역사를 겪지 않은 이들에게 그것이 온전히 내 이야기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기억하고 진실과 대면하며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깨어있을 뿐.

교과서를 펴자

하지만 1980년 5월 광주 학살의 주범들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여전히 역사의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악다구니를 쓰는 모습을 보고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5.18의 진실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왜곡하려는 이들이 이 땅에서 마음껏 활개 칠 수 있는 이유는 온전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독재의 잔당들과 의식들을 몰아낼 수 있을까요?
 

책 표지 ⓒ 오월의봄

 
올해엔 각 가정에 5.18 교과서를 한 권씩 마련해 온 가족이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5.18기념재단이 기획하고 김정인, 김정한, 은우근, 정문영, 한순미 다섯 사람이 함께 쓴 <너와 나의 5.18>엔 '다시 읽는 5.18 교과서'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그동안 5.18 기록물들이 민주화운동 당시 사실을 확인하고 알리는 역할을 했다면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더해 5.18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를 종합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특히 5.18을 둘러싼 왜곡과 거짓말, 망언이 국회에서까지 남발되고 있는 요즘 2019년의 대한민국 시민들이 집중해서 살펴볼 부분은 이 책 5장(5.18, 진실과 거짓말: 그들은 왜 5.18을 왜곡 조작하는가?)과 6장(모두의 5.18로 가는 길)입니다. 살았어도 죽은 것과 같은 삶을 살아온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주지 않도록 전 국민적 차원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5.18


5장에서 은우근 교수는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주체, 왜곡·조작의 내용, 왜곡의 이유와 영향을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5.18 당시 군사반란 세력이 남겨놓은 유산을 먹고 살아가는 현재 극우세력과 그들에게 협력하는 언론들은 여전히 거짓으로 확인된 사안들을 가지고 논란을 만들려고 시도합니다. 이러한 행태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은우근 교수가 인용한 문구들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거짓말은 처음에 부정되고, 그다음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괴벨스, 나치의 선전장관)
"그것을 행했다라고 나의 기억이 말한다. 그것을 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나의 자존심이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 마침내 기억이 굴복하고 만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

극우세력들의 가당치도 않은 왜곡과 날조를 그동안은 무시해 버렸으나 은우근 교수의 지적을 접하니 생각이 달라집니다. 은우근 교수는 국회, 법원 등 국가와 시민사회가 역사적 진실과 법률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평가하는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의 의도를 살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날조의 의도에 그들이 감추려 했고 또 감추려 하는 5.18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점과 평가의 다양성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반인륜적 행위와 반민주적 범죄를 미화하는 것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는 과거 청산이 근본적으로 미진한 탓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교육을 통해 5.18의 의의와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 진실이 널리 알려지고 학습될 때, 사회 전체가 민주주의를 향해 확실하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231쪽)

정부와 시민사회는 역사 왜곡 세력들이 우리 역사와 민주주의를 유린하려는 행위들을 면밀히 살피고 처벌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면 엄격하게 벌해야 할 것입니다. 이전처럼 화합이라는 명목으로 쉽게 사면하고 용서해서는 지금까지와 같은 일이 반복될 뿐입니다. 은우근 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왜곡과 날조를 방관하면 우리 사회의 건강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나'의 5.18로 나아가는 길

김정한 교수는 6장에서 '어떻게 하면 5.18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되게 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합니다. 우리 사회가 5.18을 '달력에서만 기억하는 기념일'로 여기게 되면 5.18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여전히 진행 중인 고통에 공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5.18에 죽어간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기념은 끝나지 않았다'는 김정한 교수의 말을 다시 읽게 됩니다.

김정한 교수는 전 세계인이 공감하게 된 홀로코스트의 사례를 들며 우리도 5.18의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감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합니다. 홀로코스트가 인류의 비극이 되기까지는 서적, 영화, 연근 등 문화 매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를 통해 대중들은 홀로코스트 당사자들의 경험을 '개인화'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희생자들이 '보통의 나'와 동일시 된 것입니다.

홀로코스트의 사례처럼 5.18도 소설, 시, 만화,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으로 재현돼 왔지만 대중들의 심리적 동일시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을 김정한 교수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안내를 통해 그동안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관찰했던 소설, 만화, 영화 등을 '나'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피해자라면? 혹은 가해자라면?'이라는 질문을 하며 찬찬히 읽었습니다.
 
"'나'는 군인이 쏜 총에 하나뿐인 혈육 진우를 잃었다!"
"'나'는 군인이 쏜 총에 졸지에 엄마를 잃었다!"
"'나'는 국민을 향해 총을 쏘는 군인에게 이러면 안 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총을 들었다!"
"'나'는 살았으나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제대로 사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으나, 결국 '나'는 폭도라 불리고 말았다!"

"'나'는 아무 죄도 없는 가녀린 소녀를 죽였다!"
"'나'는 평생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평생 속죄와 참회의 삶을 살고자 한다!"
"나도 사실은 용서를 빌고 싶었다!"
(본문 248~252쪽에서 발췌)

5.18 희생자의 외침, 그리고 가해자들의 고백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 '다시 읽는 5.18 교과서'를 통해 이전에 읽었던 5.18 관련 기록물들을 찾아보며 다시 한번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5.18국립묘지를 참배하러 간 학생들이 비석에 쓰인 이름과 사연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추모하는 <오월상생>이라는 애니메이션처럼 "죽어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마음으로" 돌아보고 있습니다.
 
"5.18이 국가 주도의 기념일과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과거로만 기억되는 한, 5.18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의 꿈은 실현되기 어렵다.

우리 모두가 5.18을 1980년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에도 일어날 수 있는, 그렇지만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감성으로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고 공감할 수 있을 때, 5.18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동시에 모두의 5.18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59쪽)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너와 나의 5.18 - 다시 읽는 5.18 교과서

김정인 외 지음, 5.18기념재단 기획,
오월의봄, 2019


#5.18 #광주민주화운동 #국가폭력 #5.18기념재단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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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지치지 말기를. 제발 그러하기를. 모든 것이 유한하다면 무의미 또한 끝이 있을 터이니. -마르틴 발저, 호수와 바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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