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에서 왔다고 하자... 터키 학생들이 외친 한 마디

[천의 얼굴, 터키 여행 6] 고풍스런 오스만제국의 숨결이 남아있는 사프란볼루

등록 2019.05.17 09:29수정 2019.05.1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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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룬 사프란볼루. 자연과 꾸밈없는 어울림이 참 좋았습니다. ⓒ 전갑남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부 흑해 내륙지방 사프란볼루로 가는 길, 높지 않은 산과 넓은 평야가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마르마라 해를 끼고 달리는 풍광 또한 지루하지 않습니다. 가끔가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마을이 보이고, 마을마다 뾰족하게 서있는 모스크 첨탑들이 이국적입니다.
  
"사프란볼루 궁금하시죠? '볼루'가 도시라는 뜻이니까 '사프란의 도시'라는 뜻이죠. 한때 금값과 맘먹을 정도로 귀한 사프란 군락지여서 이름이 붙여진 곳이라고 해요."

사프란볼루가 가까워지자 가이드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사프란볼루? 이름부터 좋은 향기가 되어 코끝에 밀려듭니다.
    
사프란은 어떤 꽃일까?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봅니다. 여러해살이풀로 붓꽃과에 속합니다. 주로 가을에 꽃을 피우는데, 꽃을 따 약재로, 섬유 착색재로 또 요리용 향신료로도 이용합니다. 500g 정도의 사프란을 제조하려면 약 5만송이의 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곳 사프란볼루는 온화한 기후에다 기름진 땅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프란이 많이 재배되었다고 합니다. 도심에서 20여km 떨어진 다부토바스에서는 지금도 사프란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사프란꽃 이야기로 아름다운 향기를 피우다 보니 어느새 아름답고 아늑한 분위기의 사프란볼루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이슬탄불에서 다섯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곳, 사프란볼루! 해발 475m에 자리 잡은 마을이 정겹게 우리를 맞이합니다.
 

사프란볼루의 심볼인 사프란 조각상. 사프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 전갑남

 
버스 종점에 사프란꽃 조각상이 보입니다.

"저렇게 생긴 게 사프란꽃인가 봐?"

사프란볼루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있는 곳에서 버스가 멈췄습니다. 조각상의 꽃을 보니, 사프란은 뿌리 부분이 마늘과 비슷한 비늘줄기가 있는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황금색 암술머리에서 맛과 색을 내고, 수술은 약용과 염료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자주색 꽃잎이 참 아름답습니다.

정겨움이 묻어있는 사프란볼루


사프란볼루는 오스만튀르크시대 무역의 중심지로서 당시 가옥들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형태로 보존돼 있습니다. 비슷비슷한 모양의 3층집 목조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멋스러움을 더합니다. 적갈색 기와지붕, 하얀색으로 칠한 벽면, 또 세로로 낸 커피색 창문들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치 옛 오스만제국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사프란볼루에는 2000여 채의 옛 가옥들이 있는데, 그 중 1000여 채가 문화재 보존가옥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앞집, 뒷집, 옆집이 세계문화유산인 마을입니다.

예전 풍요와 여유를 누렸던 이곳 사프란볼루는 중세 동서양의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주요 길목이었다고 합니다. 대상(隊商)들이 기나긴 여정으로 쉬어가던 길목에는 마을이 들어섰고, 사프란볼루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사막이나 초원 등지에서 낙타나 말에 상품을 가득 싣고 떼를 지어 먼 곳으로 이동하면서 장사하는 대상들은 이곳에서 지친 몸을 내려놓고 쉬어갔을 것입니다. 

 

사프란볼루 차르쉬 광장 근처에는 터키 전통식 목욕탕인 하맘이 있습니다. 예전 실크로드 대상들도 이곳에서 여정에 지친 몸을 씻고 쉬어갔을 것입니다. ⓒ 전갑남

  

사프란볼루의 전통가옥. 돌출된 발코니가 인상적이었습니다. ⓒ 전갑남

 

광장이 있는 곳에서 바로 옆에 터키 대중목욕탕인 하맘이 눈에 띄입니다. 표고 버섯을 엎어놓은 것 같은 지붕이 참 인상적입니다.

아내와 나는 사프란볼루 역사박물관이 있는 마을 서쪽 언덕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지붕의 기왓장 하나, 굴뚝 하나, 그리고 바닥의 돌멩이 하나에서도 살다간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가 들려올 것 같습니다. 산비탈에 세워진 옛 집들은 오스만시대의 역사가 말을 걸어오고, 그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발걸음은 어느새 느릿느릿해집니다. 여기서는 서두를 것 없이 걸음을 늦춥니다. 

어느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금세 주인이 나와 반가운 웃음으로 손짓하며 맞이할 것 같습니다.

이국땅 골목에서 예전 잊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길이 아닌 골목길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초가집들과 해질녘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굴뚝연기가 지금 사프란볼루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가 고풍스러운 집들을 가리키며 내게 묻습니다.

"여기 집들 돌출 발코니가 색다르지 않아요?"
"서로 맞닿을 것처럼 그러네!"


나중 알고 보니, 외출을 꺼렸던 이슬람 여인들이 돌출 발코니로 집과 집 사이를 좁혀 이웃끼리 서로 소통하고 나눌 수 있도록 하했다고 합니다. 발코니는 여성들의 사교 공간이 되어 다정한 세상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습니다.

소중한 가치와 문화가 있는 사프란볼루

조금 걷다 골목길에서 마주친 여러 명의 학생들이 아내와 나를 반깁니다. 그들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과감히 허뭅니다. 

어디서 왔느냐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내가 "Korea"라고 하자 더욱 반가워합니다. 학생들은 곧바로 "BTS! BTS!"를 외칩니다.

방탄소년단의 한류 열기가 이곳까지 떨칠 줄이야! 아내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자 스스럼없이 응합니다. 우리네 학생들처럼 체험학습을 위해 사프란볼루를 찾았다는데 참 명랑하고 다정다감합니다.

반가운 인연을 뒤로 하고, 골목을 돌고 돌아 역사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높은 곳에 위치한 박물관에서 마을 전경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골목골목 미로처럼 얽혀있는 돌길에는 아기자기한 기념품과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를 만나게 됩니다. ⓒ 전갑남

 
세계 유명 도시라 하면 아파트며 현대식 건축물로 들어차는데, 어떻게 이곳은 옛 전통가옥들을 오랫동안 지켜낼 수 있었을까요? 19세기 동서 실크로드 무역이 쇠퇴하고, 그에 따라 사프란볼루도 자연스레 외부인들에게 잊히게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시는 굳이 탈바꿈을 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터를 덧대어 고치며 살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오늘날 소박함과 여유로 다가와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 됐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자신들의 소중한 가치와 문화를 지킨 사프란볼루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지만, 우리는 다음 여정을 위해 서둘러 길을 떠나게 돼 못내 아쉽습니다.

무릇 묵은 때에는 오랜 삶의 역사가 묻었습니다. 사프란볼루는 우리에게 수백년 박제된 흔적으로 남아있는 게 아니라, 전통과 삶의 여유를 간직한 보석 같은 모습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터키 #사프란볼루 #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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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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