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 출신 장관, 김앤장 고문된 전 장관을 만나다

[사법농단-임종헌 공판] 강제징용재판 두고 전방위 로비... 윤병세, ‘재판거래’ 거듭 부인

등록 2019.05.15 21:01수정 2019.05.1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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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발언을 하는 모습. ⓒ 이희훈


'사법농단' 재판 증인이 된 전직 외교부 장관은 "역사 앞에서 증언한다는 심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역사에 일제강점기 징용 피해자들의 삶은 빠져 있었다.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윤종섭)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을 증인으로 불렀다. 윤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내내 외교부를 이끌었고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재하고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 차한성·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이 참여한 '일제 강제징용 재판 거래' 의혹 관련 비밀회동에 모두 참석한 인물이다.

그리고 윤 전 장관은 2009년 1월~2013년 1월까지 한국 최대 법률사무소 '김앤장' 소속이기도 했다. 이날 법정에선 그와 김앤장의 인연이 장관 시절에도 긴밀하게 이어져 왔고, 주요 시기마다 양쪽의 교감이 있었다는 사실이 상세히 드러났다.

윤병세-김앤장의 꾸준한 인연

윤 전 장관이 김앤장에 근무하던 2012년 5월,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공업과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1·2심과 달리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당시 피고 일본기업의 법률대리인이었던 김앤장은 대법 판결 후 여러 차례 고문들을 모아 회의를 열었다. 윤 전 장관은 당시 대북문제 등 한반도 이슈를 담당했으나 이 회의에도 참석했다.

2013년 1월 퇴사 후 윤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한다. 그때 미쓰비시 공업 고문이 된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일본대사가 김앤장에 '강제징용 재판 관련해 한일 양국 정부의 정치적 해결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윤 전 장관 등을 만나는 자리를 요청, 1월 28일 식사 자리가 만들어진다.

윤 전 장관은 그해 6월 5일,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과 현홍주 전 주미대사도 만났다. 유 전 장관은 2011년부터 김앤장 고문이었고, 검사출신 현 전 대사는 1993년부터 김앤장에서 일했다. 두 사람은 2014년 11월 김앤장 내에서 강제징용사건 대응팀이 꾸려지기 전부터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정부 관계자 등을 접촉했다.

한 달 뒤인 7월 8일, 윤 전 장관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강제징용 파기환송심 선고 관련 국제법률부 회의를 주재한다. 이어 9월 초에는 청와대에 <강제 동원 피해자 관련 대응방안>을 보고했다. 이 문건에는 ▲ 대법원 판결 시 예상되는 외교적 문제점 등을 적절한 채널을 통해 알리고 최대한 (대법원이) 신중한 판결을 내리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 판결이 조기에 선고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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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일제 강제징용 승소 판결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 유성호

 
2014년 11월 22일, 윤병세 전 장관은 또 다시 유명환 전 장관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그해 12월 8일 김앤장 한상호 변호사는 '유 전 장관이 윤병세 장관에게 강제징용 재판 관련 민원을 전달했다'는 취지의 메모를 남긴다. 그는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 양승태 대법원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한 변호사는 또 신일철주금 관계자와 만나기 위해 작성한 2015년 1월 26일 메모에서 '외교부 장관을 여러 번 접촉했고, 대상기관 최고책임자(윤병세 전 장관)는 실무담당국장에게 특명을 내려서 김앤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도록 지시했음'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 내용이 유명환 전 장관이나 현홍주 전 대사가 윤 전 장관과 면담한 결과를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윤 전 장관과 김앤장 관계자들은 이후에도 꾸준히 만남을 이어갔다. 김앤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접촉했고, 임 전 차장 등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은 외교부와 여러 차례 만나 외교부가 강제징용 재판에 의견서를 낼 방법과 내용 등을 두고 논의했다. 그 결과 대법원은 2015년 1월 민사소송규칙을 바꿔 '국가기관 등 참고인 의견서 제출 제도'를 도입했고, 외교부는 2016년 11월말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한다.

하지만 14일 윤 전 장관은 외교계 원로들과 사적으로 또는 조언을 구하는 자리를 가졌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강제징용 재판 얘기를 하면 완곡하게 거부하거나 회피했을 것"이라며 '특명' 등은 김앤장이 과장해서 쓴 표현이라고 했다. 또 "(외교부) 간부들한테 피고를 대리하는 김앤장과 접촉을 상당히 자제하라는 얘기를 한 적 있다"며 "이런 문제의 정보를 공유하는 건 (안 된다고) 제가 분명한 철학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 거래는 없었다'는 진술에도 변함없었다. 윤 전 장관은 '거래 대가'로 꼽히는 법관 재외공관 파견은 실무자들이 보고하면 결재하는 정도라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외교부의 분명한 입장은 대법원 판결을 번복하겠다가 아니라 어떤 판결이 나와도 좋은데 다만 한일관계 등을 충분히 고려해주면 외교부가 대응하는 데에 도움 되고, 그게 국익에 유리하다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국익과 외교... 그리고 일제 강점기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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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소 판결에 눈물 흘리는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 생존자 이춘식 씨와 고 김규수 씨 부인이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이날 윤 전 장관은 국익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썼다. 국가 안보와 외교 문제 등을 이유로 비공개 심리를 요청했으나 재판부에 거부당하자 그는 증인 신문 끝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제가 비공개했으면 좋겠다고 당부드렸던 이유는, 현재 한일 간에 외교적으로 전례 없이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특히 일본 정부가 (이 사안을) 면밀히 모니터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국익 관련 측면에서도 굉장히 관심들이 많다. 그래서 저는 역사 앞에 증언한다는 심정으로 이렇게 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8년 10월 30일에서야 강제징용 재판의 최종 결론을 냈다. 2005년 처음 소송을 제기한 원고 9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춘식씨 뿐이었다. 윤 전 장관은 이 '역사' 앞에서도 증언한 것일까(관련 기사 : '13년 소송' 이겼지만... '슬픔의 눈물'이 흘렀다). 그는 피해자들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채 법정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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