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페미니스트였을까?

[노무현 서거 10주기] 참여정부 국정홍보비서관 노혜경이 지켜본 노 전 대통령

등록 2019.05.21 07:39수정 2019.05.22 14:08
11
원고료주기
      
a

노무현 전 대통령 [자료사진] ⓒ 이종호


며칠 뒤면 노무현 10주기다. 신화화와 영웅화를 향한 가열찬 유혹을 물리쳐가며 회상해보아도 노무현은 우리 정치사의 독특한 경험이었다. 역대 국회의원들까지를 통틀어 나는 노무현처럼 사유하는 사람을 본 일이 없고, 노무현 같이 말하는 사람 또한 본 일이 없다.

흔히 노무현의 약점을 가방끈이 짧다는 데 두는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노무현의 화법은 너무 시정잡배스럽다. 그러나 시정잡배식 언어구사자들이 보기엔 노무현의 화법은 또 지나칠 정도로 섬세하다. 어느 쪽에서 들어도 그의 말은 어렵다. 표현은 쉽지만 거기 담긴 생각은 결코 쉽지 않다. 그의 생각은 기존의 질서나 기존의 이해관계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고 늘 본질적인 해법을 찾는데 골몰했기 때문이다.

그는 문제 앞에서 성찰하고 반성하며 변화하고 발전한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미래', 이런 표현도 사실은 진부하다. 그가 남긴 다양한 언어기록을 읽다가 문득문득 그와 함께 일하면서 나는 그를 제대로 알고 일한 게 맞나 싶은 낯선 느낌이 다가온다. 그를 읽는 다른 관점들이 더 많이 개발되어야 할 이유다. 

그런 뜻에서 이 글을 쓰는 나의 자세를,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노무현 다시 읽기'라고 하고 싶다. 아니 '한 페미니스트의 눈에 비친 노무현'이라고 해야겠다. 

"나는 논리적 페미니스트"

옛날 이야기부터 하자.

흔히 사람들이 말하길, 인간 노무현은 정말 훌륭한데 대통령 노무현은 문제가 많다고 한다. 나는 그런 말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보는 사람이다. 국가의 정책 결정과 추진이 대통령의 인품과 신념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분단국가에서는 한계가 너무 많다. 조직의 수장이, 더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 개인일 때와 대표자일 때가 똑같다면 그것이 바람직하기만 한 일일까? 다만 훌륭한 개인이 좀 덜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는 있어도 망가진 개인이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정책수혜자의 우선순위에서, 재정집행의 우선순위에서 누구를 먼저 고려하는가에 따라 이해관계는 엇갈린다. 국민이라고 불리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대립하는 세력들의 각축 속에서 대통령 개인의 지향과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분단국가이자 미·일·중·러의 세력다툼의 자장 안에 있는 무역의존형 국가에서 선택의 여지는 더 좁다.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그 제약이 어느 정도인지를 몰랐지만, 그래도 <대중경제론>을 슬쩍 읽은 인연으로 김대중의 경제정책에 기대를 걸었으나 정작 어마어마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아연했던 경험이 내게는 약이 되었다. 노무현이 보다 약자 우선, 약자 중심의 정책을 펴기를 바라고 지지하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은 정책들 앞에서 반대하되 여전히 지지한다는 모순적인 선택을 나는 했다. 하마터면 등돌릴 뻔했던 일들을 꼽으라면 대추리 강제 진압? 

나는 그가 민주주의자이자 공화주의자라는 점을 높게 평가했으며, 세부의 부족함은 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여성을 시민으로 인식한다는 점 또한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처음부터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이야기가 그의 첫 번째 저서 <여보, 나좀 도와줘>에 자세히 나온다. 노무현과 여성이라는 관점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나중에 워마드에서 노무현을 '한남충'이라고 욕을 하게 만든 사연도 여기에 있다.

이 책은 1993년 민주당 최연소 최고위원이 된 뒤 1995년 부산시장 출마를 염두에 두고 정치인으로서의 자신의 일생을 회고한 책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목이 <여보, 나좀 도와줘>다. 게다가 갈 데 없는 지질한 가부장제의 말단에 속해 있던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적어놓은 책이다. 아내를 권위적으로 무시하고 심지어 주먹질을 불사하는 등 한심하기 짝이 없던 시절 이야기가 다 나온다.
 
a

2002년 12월 19일 16대 대선 '당선자 확실' 보도 이후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민주당사에 들어서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부인 권양숙 여사. ⓒ 마이너


남들 같으면 결단코 숨겼을 것 같은 "기억하기에도 부끄러운 일"을 그가 털어놓은 것은, 자신이 변화했고 그 변화의 이유가 뭐였는지를 말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런 맥락을 읽지 않고 중간에 등장하는 한 문장을 떼어내 공격을 하는 것은 매우 해롭다. 과거 일이라도 싫은 건 싫지만, 사람이 교육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운동은 가능하지 않다. 

그가 굳이 '아내'를 호명한 이유를 나는 두 가지 정도로 해석한다. 우선 여성문제가 앞으로 정치의 중요한 주제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여성의 시대가 온다고까지 말한 그다. <여보, 나좀 도와줘>에서 그는 "여성 문제는 여성의 권익 신장, 사회 진출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제도 전반에 관련을 갖는 문제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성의 권익이 신장되어 온 역사를 보면 노동운동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결국 여성 문제만 따로 떼어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회 전반의 문제와 함께 해결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여보 나좀 도와줘, 152쪽)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이야기는 거꾸로, 사회 전반의 발전을 이루려면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문제를 동시적으로 인식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되기 거의 십년쯤 전부터 그는 여성인권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그는 여성이라는 표지가 단순히 생물학적 성차를 넘어서는 성별(젠더) 문제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인식했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하는 이유가 사회적 약자들을 돕기 위해서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정치인이지만, 그 약자성과 소수자성이 어떤 표지들을 지니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다. 그 출발점으로 그는 "아내"라는 존재 앞에 섰고, "아내"라는 타자 앞에서 도와달라고 교섭을 시작한다.

이 인식과 이 태도가 그를 성공적인 페미니스트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었는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적대자들의 경계심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요인은 아닐까? 페미니즘은 세상을 자꾸만 새롭게 보게 하며, 전에는 문제로 인지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지금의 눈으로 그의 과거를 바라볼 때 나는 당연히 불평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당대의 맥락 속에서 그는 최선을 다한 통치자다.

하여간 "아내"를 호명하게 된 계기를 그는 운동권 청년들과의 만남과 그들이 권해준 책을 읽은 데서 찾는다. "중국의 혁명과 여성해방"이라는 부제가 붙은 <하늘의 절반>이라는 책이다. 노무현은 이 책을 읽은 뒤 "아내를 존경할 줄 알게" 되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오래도록 지녀온 극도로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여성관이 운동권 청년들에게 거부감을 준다는 것을 느끼고 시대의 변화를 깨달았다.

이 청년들은 노무현에게뿐 아니라 그의 아내에게도 <하늘의 절반>을 권했다. 그는 책에서 받은 감명과 마음의 변화를 이렇게 쓰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나도 그 책을 보게 되었는데, 바로 여성 문제에 대한 책이었다. 일반적인 여성 문제는 물론, 자녀의 양육과 교육, 그리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까지 사회주의 중국에서의 실험적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상세한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여성의 소중함과 권리를 일깨워 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책에서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그 이후 나는 그때까지 나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여성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물론 나와 아내 사이도 달라졌다. 나도 아내를 존경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아직 실천을 제대로 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달라진 것만은 틀림없다. 나는 나를 대하는 아내의 태도가 한결 부드럽게 변하는 것을 보면서 나의 변화를 읽는다. 이젠 싸움을 해본 기억조차 까마득하다." (<여보, 나좀 도와줘>, 150쪽)

<하늘의 절반>은 여성 자신의 변혁의지가 중국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관점에서 쓰인 책이다. 운동권 학생들이 그의 아내에게 책을 권한 이유가 읽힌다. 어찌되었든 노무현도 그 책을 읽고 자신을 성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니, 대선국면에서 자기자신을 가리켜 "논리적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한 것이 그냥 재미있는 말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논리적 페미니스트".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등장한 이 말에는 이런 부연설명이 붙는다.
 
"흔히 여성들의 문제를 차별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까. 전 차별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거든요.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차별에 대해 생태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저하고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제가 기존의 계급적 질서나 위계질서를 너무 거부하기 때문에 오히려 불편해 하기도 합니다." (여성신문 2002/05/12)

성차별이 모든 차별의 바탕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사회의 주류인 남성이 여성을 차별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여성 자신의 자각과 의지를 중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이미 1980년대에 싹텄던 것이다. 그리고 2002년 대선을 복기해보면, 확실히 세상의 지축은 변화하고 있었다. 

여성과 가족, 노무현의 한계
 
a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1월 13일 오후 은평구 소재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열린 2005년도 여성계 신년인사회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됨으로써 자신의 말대로 정말 여성의 시대가 왔을까? 정책의 측면에서 볼 때, 여성의 시대라고까지 말할 순 없지만 여성친화적 정부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은 된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첫 내각에 여성장관 4명을 기용했을뿐더러, 특히 법무부 장관 및 법제처장에 여성을 임명하여 성별분업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깼다. 최초의 여성총리가 참여정부 때 등장했고, 불발로 그치긴 했어도 첫 여성헌재소장을 추천했다. 정치에서 말을 변화시킨다는 것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한 노무현답게, 홍보수석실에 수석을 포함하여 여성비서관들을 대거 배치했다. 문재인 정부가 여성각료를 30% 기용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참여정부 시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부서인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개편한 것이 발전이냐 후퇴냐라는 논쟁이 있긴 했지만, 노무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가족부가) 정부부처 가운데 발언권은 최상인 반면, 권한은 높지 않다"면서 교육부의 권한 일부를 여성가족부로 통합하여 '여성가족청소년부'로 개편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는 구체적으로 재정을 사용하여 사업을 할 수 있어야 파워가 생긴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생각 자체를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정부조직에서뿐 아니다. 여성계의 숙원이던 호주제 폐지가 실현된 것이 노무현 참여정부 들어서였고, 이 시기에 비례대표 홀수 순번 배정 공약을 관철해 여성정치인의 수가 획기적으로 늘었다. 가정폭력방지법, 성폭력방지특별법과 더불어 여성3대 인권법으로 불리는 성매매방지특별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하늘의 절반>을 읽고 여성문제에 눈을 떴다고 그는 말하지만, "노동은 여성을, 여성은 노동을 변화시킨다"는 슬로건의 의미를 충분히 받아들이진 못한 것 같다. 노동의 문제에서 노무현의 인식은 비정규직, 저임금, 생계부양자 여성노동자보다는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지원에 치우쳐 있다. 정상가족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여성의 자기성취를 돕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변경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여성문제는 출산 및 육아와 분리되지 않는다. 여성할당제를 추진하지만, 이 역시 가진 여성의 성주류화 정책에 가깝다. 차별받는 소수자라는 개념의 여성이 정책 단계로 가면서 생물학적 여성 그 자체로 변화한 감이 있다. 이렇게 여성이 양성 중 한쪽이라는 개념이 작용할 경우 가부장제가 오히려 강화된다.

물론 노무현의 여성정책은 참여정부 시절 당대에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의 사회 인식 수준이나 여건에 비추어, 상당히 진보적인 정책들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또한 극복해야 할 대목이 분명 있다.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개편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보육을 국가가 담당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저출산 시대에 대비하고 극복하려는 방향. 또 하나는 여성부 자체의 정부부처로서의 역량을 강화해 주려는 것. 정부의 일은 결국 재정 투입인데, 여성부의 특수한 성격 때문에 소위 '돈 안 들고 입만 있는 정책'이 주가 될 수밖에 없어 힘이 약했다.

예산 배정을 받고 구체적인 정책 사업을 벌임으로써 파워를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다. 결국 여성가족청소년부로의 개편은 아직 못한 채 임기를 끝냈지만. 이 방향성은 현재 시점에서 볼 때 문제가 많이 보인다. 

물론 이를 노무현의 인식 한계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시대라는 말을 거꾸로 사용하는 감은 있으나 시대의 한계다. 당시는 정부 내에서는 젠더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때였다. 

성매매 특별법
 
a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2003년 4월 국무회의 [자료사진] ⓒ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서도 내게는 잊지 못할 장면이 하나 있다. 청와대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다. 나는 2004년 여름에 비서관으로 내정되었는데, 그해 3월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어 9월에 발효를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에 대해선 참여정부 여성비서관들이 함께 쓴 <대통령 없이 일하기>에서 한 번 쓴 일이 있으므로 인용하겠다.
 
내가 근무하는 동안 국무회의에서 논의된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성매매방지특별법에 대한 격론이 있던 날이다. 그 이전까지 성매매와 관련된 법의 이름은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었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성매매여성은 타락한 여성으로 치부되곤 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후보시절부터 성매매여성의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그들을 피해자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대통령의 인식이 성매매방지특별법을 제정하고 알선자와 매수자에 대한 처벌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성매매된 여성들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청와대로 들어갔을 무렵은, 이미 제정된 이 법에 대한 저항과 개정요구가 상당하던 무렵이었다. 성매매여성들 자신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시위를 하기까지 했다. 집창촌에 대한 단속을 3년간 유예해달라는 청원이 줄을 이었다. 심지어 어떤 비서관은 골목경제가 타격을 입는다는 둥 하며 반대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의 어떤 점심 시간에, 여러 보좌관들과 대통령이 식사하는 자리에 불려갔던 나에게 대통령이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성매매를 완전 자유화하고 사업자등록증을 주고, 세금만 제대로 내게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오?"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가장 강력한 고민거리는 서민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경제부처의 주장도 아니고, 성매매여성들 자신에게서 나온, "성매매도 노동이다"라는 주장이었다. 이 때문에 몹시 힘들어하던 끝에 나온 반어적 질문이었다. 나 역시 그러한 주장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갈피가 안잡히던 중이었다.

당황한 나는, "어, 그것은 저, 그렇게 하는 나라도 있고 하니 이론상으론 절대 안되는 건 아닐 듯합니다. 제가 당사자라면 그런 방식을 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적 현실에서 그런 리버럴한 주장이 먹힐 수 있을까요?"라고, 빵점짜리 대답을 해버렸다. 몇 안 되는 여성비서관이 제대로 된 논리 제공을 못한 것이다.

홍보비서관은 진행형인 모든 현안을 꿰고 있어야 하고 대안과 의견도 나름으로는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몹시 무안한 마음으로 그 얼마 뒤 국무회의에 들어갔을 때 이 문제로 여성부장관과 경제부처의 장관들이 격론을 벌이는 것을 보게됐다.

한참을 듣던 대통령은 결론을 내렸다. 

"이제 우리도 사람의 몸을 사고 파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을 보편화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무리가 좀 따르더라도 인권을 증진하는 쪽으로 국가시책을 펼쳐나갑시다."

감동했다. 경제가 어렵다라는 말은 대통령에겐 정말 극복하기 어려운 위협이 된다. 그럼에도,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사람사는 세상을 향한 한 걸음을 내딛자는 대통령의 호소에 국무위원들은 더 이상 반대를 하지 못했다. (<대통령없이 일하기>, 89쪽)

이 글에 덧붙여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노무현은, 성매매에 대한 기존의 그 어떤 통념이나 편견보다도 당사자 여성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 때문에 고민했다. 어떤 방식의 성매매방지법이 우리 현실에 더 잘 맞을까. 독일식의 합법화? 북유럽식의 비범죄화? 자유주의 사회라고 해서 '성매매를 할 자유'도 인정을 해야 하는 걸까? 그에 따른 부작용과 인권침해는 어떻게 할 건가? 성매매 여성들의 반대 시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모든 논점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현재진행형 논쟁이다. 

그가 내게 해올 질문들
 
a

노혜경 전 청와대 홍보수석실 국정홍보비서관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 ⓒ 노혜경

 
나는 대통령 노무현이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할 때, 그 정책의 수혜자와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피해를 입을 사람들을 상상하며 효과와 부작용을 따져보느라 밤잠을 설치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우르르'하고 아팠다. 노무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자세야말로 내가 노무현을 지지하고, 대선 국면에서 "노무현은 여성이다"라고 말하게 한 이유이기 때문이었다. 

노무현의 페미니스트적 탁월함은 몇 가지 정책을 실천한 것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제시한 철학 그 자체가 페미니스트적이다.

아쉽게도 그는 페미니즘이 백가쟁명의 꽃을 피우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인식의 결을 깊게 다듬는 오늘까지 살아 있지 못했다. 만일 그가 생존해 있었다면, 어쩌면 나에게 또 물을지도 모른다.

"남녀동수제가 진짜 효과 있겠소?" "성주류화 정책의 문제는 뭐라 생각해요?" "헌재에서 성매매특별법을 합헌이라 할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생활동반자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합시다. 같이 할 거지요?"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stargazer@ohmynews.com

AD

AD

인기기사

  1. 1 황교안, 단식 전날 영양제 주사 논란... 해당 병원에 확인해보니
  2. 2 "검찰개혁 누가 못하게 했나" 송곳질문... 문 대통령의 답변은
  3. 3 황교안 앞에서 뼈 때린 김종훈 "이런 단식 본 적 없다"
  4. 4 불출마 이용득 "문 대통령 시정연설 듣는데 부글부글 끓었다"
  5. 5 불리한 시국, 생방 나간 문 대통령... 그가 보여준 세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