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이 소란스러워 마음이 흔들릴 때, 여기에 가보시라

[대전 그곳을 알고 싶다] 신채호 생가와 망이 망소이 민중봉기 기념탑

등록 2019.05.17 11:36수정 2019.05.1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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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작가회의에서는 '2019 대전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연속기고를 시작합니다. 대전의 볼거리와 즐길거리, 추억담을 독자들과 나누고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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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에 위치한 신채호 선생 생가 터. ⓒ 한국관광공사


일을 시작하여 시간이 지나 뜻과 의지가 희미하고 주변이 소란스러워 작정했던 마음이 흔들린다면 대전 중구 어남동에 자리한 단재 신채호 생가를 찾아보시라. 신발 끈 조이고 발 굴러보는 첫걸음부터 꺼져가는 '촛불' 심지를 돋우듯 다시 환하게 밝아오는 기분이 들 것이다. 분명 뜻은 선명해지고 마음은 곧아지리라.

단재 신채호 선생이 태어난 곳은 우리고장 대전 중구 어남동 도리미 마을이다. 오-월드를 지나 차량으로 20분 정도 가는 한적한 시골길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생가가 있다. 산이 높지 않고 둥근 마루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마치 붕새가 둥지 틀기에 적당한 곳으로 느껴진다.

도리미 마을에서 뜬 붕새

선생은 할아버지가 벼슬살이에서 물러나 식솔과 함께 처가인 도리미 마을에 내려와 훈장 일을 하게 된 연유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할아버지를 따라가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하였다. 선비 집안이긴 하나 궁핍한 생활로 어려운 성장기를 보낸다. 어린나이에 중국 사람이 쓴 시를 보고 이치에 맞지 않은 내용을 지적하여 고쳐 쓸 정도로 머리가 명석했고 젊은 나이에 성균관 유생을 거쳐 박사에 임명되었다.

선생은 성균관 시절 수많은 서적을 탐독하고 해박한 지식을 쌓는다. 이때 읽은 책들 중 역사서 대부분이 중국 중심이거나 주인 된 의식 없이 중국만 바라보며 수백  년이나 써내려 왔음을 알게 되었다. 중국 역사와 영웅에 대하여는 세세하게 칭송하고, 우리나라 역사와 영웅은 빼버리거나 폄하해 몇 줄 밖에 없는 역사책에 대하여 '얼빠진 역사'라 말했다.

삼국사기조차 그러하여 새로이 우리의 생각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본 <조선상고사>를 비롯한 많은 역사서와 글을 썼다. <을지문덕전>과 <이순신전> 등 소설로도 우리의 영웅을 기록하였으며,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새로운 영웅을 불러내고자 하였다. 글로써만 아니라 우리 강토를 온 몸으로 느끼고자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옛 땅인 만주 일대의 역사현장과 민족 영산인 백두산 답사로 웅위했던 우리의 역사를 발견한다.

광개토대왕의 비문을 직접 만지면서 "내가 할 일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써서 후손들에게 민족의 정기를 찾아 주는 일이다"라며 결의를 다졌다 한다. 평소 생활에서도 선생은 어느 누구보다도 굳고 곧은 의지를 가지고 실천 하였다. 얼마나 강하고 곧은지 세수 할 때도 몸 꼿꼿이 세워 세수하고 그러다보니 저고리와 바지가 다 젖었다 한다. 우리가 일제 지배를 받는 한 어느 누구에게라도 고개 숙이지 않고 무릎 꿇지 않겠다는 자존과 절개가 표현된 행동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 대전 도리미 마을에서 뜬 붕새였다. 한학 공부한 대부분 선비들은 사상이 주자학 머물렀거나 어떤 이들은 시류에 결탁하며 살았다. 선생은 이를 뛰어넘어 민중과 진보의 사상으로 뜻과 의지를 실천하며 시대를 앞서 나간 분이다.

단재 생가는 대전광역시에서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주민들 고증을 토대로 발굴 복원하고 기념물로 지정하였다. 짚으로 지붕 올린 'ㄱ자' 형의 살림집과 헛간이 단아하다. 대전광역시에서는 지금의 좁고 부족한 홍보관을 2020년부터 단재 기념교육관으로 확장 건축 할 것이라 한다.

선생에 관하여 많은 지식이 없어도 좋다. 줏대 있게 스스로 살고자하는 정신을 본받고 흐트러진 마음 가다듬어 뜻을 다지려 한다면 선생의 생가를 찾아봄으로 "내가 있어야 상대가 있는", '나'를 찾고 결심은 끝까지 지키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함께' 밝히는 촛불의 고향

대전에는 아주 특별하게도 백성이 스스로 세상의 주인이고 주체가 되고자 힘 쓴 역사가 있다. 충청도하면 예로부터 사람들의 성정도 점잖고 온화한 점을 들어 이야기의 첫 말로 꺼내기 보통이다. 대전도 '점잖게' 교통의 중심지, 과학 기술연구 도시로 이름 한다. 대전은 다른 도시보다 먼저 가슴 뜨겁고 정신이 빛나는 사람들이 살았고 격동의 역사가 꿈틀댄 곳이다.

탄방동은 행정과 상업, 거주지가 혼합되어 인구 2만6천여 명의 대전 핵심 도시다. 빌딩 백화점이 들어서고 지하철이 다니는 등 도시 기능이 잘 구비되어 있고 옛 지리를 살피자면 낮은 언덕에 참나무가 숲을 이루었으며, 대전의 3대 하천인 대전천과 유등천의 합수머리를 곁에 두고 있다. 과거부터 사람이 살만 한 곳이었다. 이곳에는 도시의 허파와 같은 숲, 남선공원과 대전 시민정신의 핵이라 할 수 있는 '명학소(망이 망소이) 민중봉기 기념탑'이 공원 안에 있다.

우리는 역사책에서 '공주 명학소 망이 망소이의 난'을 배웠다. 고려 1174년(명종 4년) 명학소 거주 향소 농민들이 신분제 철폐를 주장하며 일으킨 사건으로 바로 옛 탄방동 거주민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고려시대 행정구역상 탄방동은 공주현에 속하여 '공주 명학소'라 하였던 것인데 옛 관아명으로 지어진 사건 이름이라서 관심 있게 살피지 않으면 '대전 명학소'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백성이 난을 일으킨다함은 지방 관리의 수탈이나 국가의 과도한 부역으로 인하여 삶이 팍팍함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과도한 공납을 짐 지기 어려워 부역 면제를 요구하는 농민의 난과 달리 '대전 명학소' 주민들의 난은 국가에 직접 신분차별 철폐 요구를 했다는 점에 다른 난과 구분 한다.

당시 난을 일으킨 혁명 세력은 북으로는 충주, 서로는 예산 아산까지 힘이 미쳤다한다. 소(所)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금·은·동·철이나 종이·자기·묵 등 특정 공산품을 생산하였다. 동네 이름이 '숯뱅이'라 불렸다하니 이들은 참나무 숯을 구워 국가에 공납하는 일을 하였을 것 같다. 소에 거주하는 이들로서 양민과는 달리 국가에서는 공납 관리와 집행에 더욱 가혹하여 주민들은 억울하고 부당한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명학소(鳴鶴所)는 사람들이 하도 어렵게 사니 학이 대신 울어 줬다하여 붙여지는 이름이라니 거주민들의 생활이 어떠하였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이 된다.

난은 비록 자주민으로 거듭나기에 실패 했으나 역사가들은 고려사회 신분질서를 타파하려는 신분해방운동이라는 점에서 그 선구적이라고 의미 부여했고, 이후에는 향·소·부곡 등 특수행정구역의 소멸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평가한다. 이점을 현재까지 당겨보니 시민 정신으로 표현되는 '촛불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들은 혼자서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여럿이 함께 힘 합쳐 가슴 벅차게 이루어 낸 경험과 기억이 생생하다.

남선공원은 대전 롯데 백화점 탄방 사거리 건너편에 도산서원과 함께 낮은 산에 조성되었다. '명학소(망이, 망소이) 민중봉기 기념탑'은 2006년도 대전광역시가 공원 정상부에 세웠으며 우뚝 솟은 높이가 20미터나 된다. 탑은 장쾌하게 과거 현재 미래 3개 기둥이 솟아 북을 형상화한 원형 고리를 떠받치고 있다. 숯뱅이 사람들은 결의 가득하게 서 있어서 사방을 아우르며 여러 갈래로 능력껏 뻗어가는 대전 사람들이 '혼자가 아닌 여럿이'라는 힘으로, 하늘로 치솟고 땅 적시며 흐르는 생명 기운을 느끼게 한다.

백성이 스스로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역사는 흔치 않다. 멀고 오래된 역사로만 여기던 고려의 역사가 우리 가까이에 있었고 '망이 망소이 난'은 '함께'라는 말뜻을 생각하게 하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파트 단지와 다닥다닥 붙은 주택, 빌딩이 숲 사이로 보인다. 몇 걸음만 내려서면 사람들로 붐빈다. 이들은 과거 거듭나고자 했던 '명학소 망이 망소이'의 후손인 우리들이다. 이곳이 촛불의 고향, 대전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시집 <날짜인을 갈면서> <막춤>을 썼으며 대전작가회의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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