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는 가짜 독립운동가" 비석 뽑은 후손의 양심

2015년 양심 고백한 김종갑씨... "가짜 명예는 명예가 아니다"

등록 2019.05.18 11:50수정 2019.05.1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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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증조부가 '가짜 독립운동가'라고 양심 고백한 김종갑(77)씨가 지난 달 증조부의 묘소 앞 독립운동 행적이 적힌 비문을 철거하고 있다. ⓒ EBS다큐 시선 화면 갈무리

 
 

자신의 조상을 '가짜 독립운동가'라고 양심 고백한 김종갑(77)씨가 묘소 앞 독립운동 행적이 적힌 비문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 EBS다큐 시선 화면 갈무리

 
"제 증조부는 '가짜 독립운동가'입니다"

김종갑씨(77). 그는 지난 2015년 <오마이뉴스>와 첫 인터뷰에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자신의 증조부가 '가짜 독립운동가'라고 양심 고백했다. 자신의 조상이 '가짜 독립운동가'라며 서훈 취소를 요청한 사상 첫 사례였다. (관련 기사: "제 증조부 김정필은 독립유공자가 아닙니다")

정부는 그의 증조부인 김정필(1846-1920, 충남 대덕 출신)에게 1968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한 데 이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가 밝힌 당시 김정필의 공훈록에는 '1907년 한봉수 의병진에 입진해 괴산, 용인, 여주 등에서 격전을 치렀으며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무장 항일투쟁을 벌였다'고 돼 있다.

김종갑씨는 김정필의 증손자이자 집안의 장손이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당숙(아버지의 사촌 형제)이 이름이 같은 다른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가로채는 방법으로 증조부를 독립운동가로 둔갑시켰다"고 밝혔다. 친척의 허물까지 들춰낸 용기 있는 고백이었다. 그는 인터뷰 직후 "사실대로 말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양심 고백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해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가 양심 고백의 가치를 인정해 김씨에게 '흥사단 투명상'을 수여했을 뿐이다. (관련 기사: '가짜 독립유공자' 양심 고백, 흥사단 투명상)

서훈을 준 국가보훈처는 "후손이 공식으로 서훈 취소를 요청해 오면 그때 관련 자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국가보훈처는 김씨가 서훈 취소를 요청하는 서류를 제출할 때까지 김씨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았다.

김씨는 달랐다. 그는 직접 국가보훈처에 증조부의 서훈 취소를 요청했다. 2년 뒤인 지난 2017년 8월, 보훈처로부터 증조부의 서훈 취소 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지날 달에는 당숙이 증조부의 묘소에 독립운동 공적을 새겨 세운 비석을 뽑아냈다. 당시 모습은 지난 16일 밤 이비에스(EBS1) '다큐 시선'(가짜 독립운동가를 찾아서)를 통해 생생히 전해졌다. 

"부정 서훈으로 증조부님께 누를 끼쳐... 편히 쉬십시오"
 

자신의 증조부가 '가짜 독립운동가'라고 양심 고백한 김종갑(77)씨가 지난 달 증조부의 묘소 앞 독립운동 행적이 적힌 비문을 철거하기전 제를 지내고 있다. ⓒ EBS다큐 시선 화면 갈무리

 

자신의 증조부가 '가짜 독립운동가'라고 양심 고백한 김종갑(77)씨가 지난 달 증조부의 묘소 앞 독립운동 행적이 적힌 비문을 철거한 후 "속이 후련하다"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 EBS다큐 시선 화면 갈무리

 
그는 묘소 앞에서 예를 갖춘 후 비석을 뽑게 된 사연을 증조부에게 고했다.

"유세차 기해 삼월 임신삭 초삼일 증손 종갑 증조부님께 삼가고합니다. 증조부께서 독립운동을 하신 일이 없다는 걸 알게 돼 송구한 마음으로 서훈취소 신청을 했습니다. 2017년 8월 3일, 정부에서 증조부님께 수여한 서훈이 취소됐음을 삼가고합니다"

그는 후손들이 거짓 서훈을 받은 데 대해서도 용서를 구했다.

"자손들이 저지른 부정 서훈으로 증조부님께 누를 끼친 점 다시 한 번 사죄하오니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주과를 올리오니 흠향하십시오."

이후 중장비를 이용해 상석 옆에 있는 비석을 뽑았다.

김씨는 "비석조차 부끄러웠다"며 거듭 "시원하다, 속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한다.

"후회하지 않는다. 가짜 명예는 명예가 아니다"

그는 또 말한다.

"가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있다면 하루빨리 서훈을 자진 반납하고 역사를 바로잡는데 동참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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