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감과 용기있는 소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평전 6회] 그의 남다른 희생정신을 엿볼 수 있는 학창시절 에피소드

등록 2019.05.20 15:01수정 2019.06.28 15:29
0
원고료주기
 
a

"박근혜 하야" 촉구하는 노회찬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27일 오후 종로 보신각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시국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인도에 "북소리만 듣고 춤을 출 것이 아니라 북 치는 사람을 찾아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굿판에서는 북 치는 사람보다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흥겨워한다.

한국 현대사의 진보운동과 진보정치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노회찬은 1956년 8월 31일 부산시 초량에서 아버지 노인모와 어머니 원태순 사이에서 태어났다. 위로 누님 한 분, 남동생 한명이 있었다.

아버지는 6ㆍ25 한국전쟁 때 원산에서 월남했다. 아버지는 충남에 있는 질소비료공장의 노동자로 일하고, 징병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와서는 원산도서관 사서가 된, 대단히 박식하고 문화와 예술 쪽의 교양을 굉장히 중시했다.

이런 영향이었는지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가정형편이 어려운 속에서도 악기 하나씩은 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노회찬이 고난에 찬 삶에서도 첼로 등 악기 연주의 실력을 갖게된 배경이다. 노회찬의 부모는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오페라 공연을 다닐 만큼 정신적인 여유가 있는 분들이었다.
  
a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 남소연

노회찬의 가족은 피난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부산 초량의 산동네 남의 집 셋방에서 힘겹게 살았다. 6ㆍ25 전후의 시기라서 어렵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만, 북한에서 빈손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태어난 1956년은 해방 11년째로 이승만 대통령이 3선을 앞두고 정치곡예를 부리던 시점이다. 장기집권을 위해 3선 개헌까지 감행하고는 불출마를 선언하고, 측근과 자유당이 갖은 공작을 벌였다. 심지어 우의ㆍ마의까지 동원하여 '이승만 각하'의 출마를 요청했다. 결국 유력한 야당의 후보 신익희의 사망으로 손쉽게 이승만은 3선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승만의 총애를 업고 군부는 물론 정치에 개입하여 국정을 농단했던 육군특무대장 김창룡이 허태영 대령 등에게 암살되고, 백주의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장면 부통령이 저격당하는 등 정치테러가 그치지 않았다.

이승만 정부의 무능과 부패는 극에 이르렀다. 미국이 지원한 막대한 잉여농산물은 특권층의 배를 채울 뿐, 절양농가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보릿고개를 넘느라 허기진 국민 중에는 아사자가 속출했다. 집에서 밥을 먹지 못한 결식 아동이 수만 명에 이르렀다.

뒷날 노회찬이 존경하고 그의 진보정책을 높이 평가하면서 수용하고자 했던 죽산 조봉암은 그가 두 살 때인 1958년 1월 이승만 정권이 진보당 간부 7명과 간첩 혐의를 씌워 구속하고, 이듬해 7월 31일 조봉암의 사형을 집행하였다. 검찰과 사법부가 이승만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자행한 사법살인이었다. 정치권력의 사법농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노회찬의 성장기 한국 사회는 전후의 폐허 상태에서 이승만 정권의 패악으로 나라의 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경찰이 폭력배들을 앞세워 치안을 유지하는 야만의 시대, '경찰 파시즘'의 시대였다. 사회정의가 실종되고 권력과 폭력이 난무했다. 어디에서도 희망의 길이 보이지 않았다.

동양에서는 옛적부터 천인상관론(天人相關論)이 제기되었다. 한대의 학자 동중서(董仲舒)에 의해서였다. 나라에 도를 벗어난 실정이 있으면 하늘은 먼저 재해를 내려 견고(譴告)하고, 그래도 반성하지 않으면 다시 괴이(怪異)를 내려 두렵게 한다. 그런데도 개선하지 않으면 마침내 파멸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근거와는 상관없이 동양인들의 심중에는 천인상관론의 사상이 자리잡았다. 이승만 정권은 갖은 패악을 저지르며 1960년 3ㆍ15 부정선거를 감행하다가 1960년 4ㆍ19 민주혁명으로 타도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학생ㆍ시민들이 희생당하였다.

노회찬은 유년 시절에 이같은 정치적 패악과 사회적 질곡을 들으며 겪으며 성장한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조봉암의 사법살인은 진보정책으로, 4월 혁명은 반독재 민주투쟁의 정신적 자양으로 자리잡게 되었을 것이다.
  
a

사진③ 고가의 악기가 다 모였다. '키보드 아코디언'부터 '허리띠 색스폰'과 '빗자루 기타'까지. 노회찬 대표이 진지하게 '솔로 연주'에 나선 모습이 흥미롭다. ⓒ 이상엽

그의 성장기에는 부모의 노력으로 생활 형편이 조금씩 나아졌다.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남의 집 셋방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살던 때와는 약간 달랐다. 1964년 경 아버지가 도쿄 올림픽 경기를 본다면서 당시만 해도 귀했던 전축과 TV를 사왔다. 그래서 방 2칸의 셋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이 무렵 누나는 피아노를 택하고 노회찬은 첼로를 배웠다. 레슨도 받을만큼 집안 형편이 나아졌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첼로 수석 주자인 배종구 동아대학교수에게 3년을 배웠다.

그는 대단히 음악ㆍ예술적 소양이 있는 소년이었다. 성장기가 평탄한 시대였으면, 음악이나 예술가로 입신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경기고 재학 시절에는 이화여고 축제에 초대받아 공연한 적도 있었다.

노회찬은 혼란한 시기에 태어나 어렵게 살았으나 정신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의 덕을 듬뿍 받으며 성장한다.

살림은 가난했어도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웠어요. 아버지는 저에게 문학과 예술에 눈을 뜨게 해 준 분입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독서하는 것을 보고 배워서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읽을 정도였는데, 중학교 들어가니까 아버지가 전축 앞에 불러 놓고는 이제 중학생이니 이걸 들어야 한다면서 베토벤의 <운명>을 틀어 주세요. 백 번은 더 들었을 거야.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연주였는데, 처음에는 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심취하게 되었죠. (주석 1)

노회찬은 다재다능했다. 학업도 우수하고 예능에도 능력이 있고 운동을 잘하였다.

운동도 좋아해서 중학교 시절부터 펜싱과 육상은 선수급이었다. 덕분에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무술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서 노 씨 성을 따 '노지심'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운동도 잘했지만 아마도 커다란 체구에 그보다 더 큰 머리통, 그리고 두려움을 모르고 옳고 그름을 지적하는 대범한 성격에서 붙여진 별명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오늘의 그가 보수와 진보 양쪽의 공격을 개의치 않고 '민의'라는 상식적인 눈높이에서 나오는 소신 발언을 계속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주석 2)

노회찬은 두뇌가 총명하고 성격도 활달해서 초량초등학교 6년, 부산중학교 3년 동안 줄곧 학급 반장을 지냈다. 정의감이 무척 강한 소년이었다.

"중학교 때는 한창 반항기였을 때인데, 조금이라도 부당한 행위 같은 게 있으면 못 참고 선생님한테 바로 대들어서 엄청 많이 맞았어요. 주먹으로 얼굴 맞기, 꽃병으로 머리 맞기, 빠다, 뭐 이런 걸." (주석 3)

노회찬의 매맞은 일은 교내의 유명사건이 되었다.

일하다 다쳐서 팔에 기부스한 사람을 과제를 안 해왔다고 약속대로 때리겠다는 거야. 엎드려 받혀라는 거야. 엎드리기도 힘든 사람에게. 부당하다 싶어 반항하는 의미에서 "제가 대신 맞겠습니다", 딱 이랬지. 그러면 선생이 "앉아" 이럴 줄 알았는데, "너 나와" 이러는 거야. (주석 4)

고등학교 시절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세계사 시간에, 우리 학교 동기들한텐 유명한 일화인데, 굉장히 권위주의적인 선생이 있었어요. 미국 인디언 얘기를 막 한참 했어요. 너무 과장되게 얘기하니까 애들이 픽픽거리고 하니까 선생이 기분이 안 좋아진 거야.

"너희들 이거 텔레비전에서 못 봤어?" 하니까 애들이 전부다 "못 봤어요" 하니까 선생이 진짜 화가 난 거야. 화낼 일이 아닌데. (주석 5)


선생이 아까 소리친 사람 일어나라니까 학생들이 아무도 안 일어나자 노회찬이 일어났고, 선생은 그에게 화풀이했다. 희생양이 된 노회찬은 교사에게 대든다고 생각해서 이번에도 실컷 두들겨 맞았다. 학창시절의 에피소드이지만, 그의 남다른 정의감과 용기 그리고 희생정신은 이렇게 자라났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주석
1> 안재성, <조봉암을 닮은 사람, 노회찬 약전>, <프레시안>, 2018, 7. 25.
2> 앞과 같음.
3> <진보의 재탄생>, 35쪽.
4> 앞의 책, 36쪽.
5> 앞과 같음.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AD

AD

인기기사

  1. 1 문재인 정부의 역대급 국방비, 한숨이 나온다
  2. 2 "지금 딱 한 사람 설득하라면... 윤석열이다"
  3. 3 여자의 몸은 어디까지 음란한 걸까
  4. 4 윤석열 총장, 정녕 이것보다 조국 먼지떨이가 더 중한가요
  5. 5 검찰이 합심해 똘똘 만 정경심 교수? 나는 '전리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