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사장시킨 노래, 그걸 지켜 낸 남한 사람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 한명순 명창 인터뷰 ②

등록 2019.05.26 15:50수정 2019.05.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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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600여 년 동안 문화의 역사를 일궈온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는 종로에서 나고 자라며 예술을 펼쳐왔거나, 종로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 시대의 예술인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한명순의 서도소리 소리의 길 공연 때 피아노와 함께 한오백년 부르는 사진 ⓒ 한명순 소리예술원

 
(1편에서 이어집니다)

서도소리의 명맥을 잇기 위해 후학을 양성하고, 고음반을 구해 들으며 복원에 힘써온 한명순 명창은 북한에서 태어난 소리가 제대로 자라나지도 못하고, 사장되어버린 상황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남과 북이 분단되고 나서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잖아요. 그곳 출신 분들이 내려와서 하시고, 저희가 2세대인 셈인데, 북한에서는 아예 명맥이 끊겼다고 하더라고요. 소리가 늘어져서 혁명정신이랑은 맞지 않는다고 없애버렸다고 들었어요. 한국에는 그래도 서도소리가 많이 발굴된 편이지만, 북한은 발굴은커녕 유지도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죠. 음원조차 없는 것도 많다보니 이러다 좋은 전통예술이 사라지게 될까봐 마음이 조급해져요.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할 텐데요."

고향을 잃어버린 소리, 그 뿌리를 지키다

2002년에 공연차 북한을 찾았던 그녀는 그토록 그리던 고향 땅을 못 밟고 세상을 등진 스승을 떠올리며 안타까움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러나 안타까움도 잠시, 북한의 처참한 실정을 접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저희는 선발대로 다른 공연단보다 5일 정도 먼저 북한 땅을 밟았는데 마치 흑백세계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보는 사람들마다 하나같이 퀭하게 마르고, 행색이 말이 아니었거든요. 남측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려온다니까 급하게 대동강에 배도 띄우고, 보여주기 식으로 책 읽는 사람들도 동원하고 했지만, 저는 일찍 와서 이미 그 실상을 다 봤으니까요. 돌아오기 전에 호텔 아래층 서점에서 가사책을 몇 개 사왔는데 인쇄 상태가 얼마나 조악했는지 몰라요. 북에 머무르는 보름 동안 마음도 괴롭고, 몸도 많이 아팠어요."

북한에서는 이미 고향을 잃어버린 소리요, 국내에서도 점차 잊혀져가고 있는 소리의 뿌리를 찾고, 보존하기 위해 그녀는 2013년에 자신의 소리를 음반에 담기로 결심한다. 장장 다섯 장에 달하는 한명순의 <서도소리-소리의 길> 음반은 2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완성될 수 있었다.


서도입창인 <놀량사거리>, 서도좌창, 서도시창, 서도민요 등을 녹음했으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녹음에 돌입했다. 또한 죽사 김수영 선생에게 배우다 중도에 그만둔 서도 송서 <적벽부>와 <추풍감별곡>도 재현에 성공했다. 원래 6절까지인 <추풍감별곡>은 음반 자료에 4절까지만 남아 있어, 5절과 6절은 새로 작창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서도송서는 창자의 기량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기에 복원이 가능했다.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니 몇 달간에 걸친 연습을 통해 비로소 <추풍감별국>의 전곡을 녹음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 음반은 자신의 음악인생을 돌아보면서 새롭게 여는 과정이자, 스승에게 바치는 헌사(獻辭)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국악은 컴퓨터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악사와 합이 잘 맞을 때, 좋은 소리가 나오거든요. 그만큼 하루 종일 녹음해도 완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제대로 녹음실이 갖춰지지 않은 집에서 녹음을 하다 보니 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현시점에서 기록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했기 때문에 훗날 서도소리를 파악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 좋은 자료로 남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뒤를 잇고 있는 딸 박은혜 양과 함께한 한명순 명창 ⓒ 한명순 소리예술원

 
누구보다 서도소리를 아끼는 한 사람으로써, 그녀는 딸 박은혜양이 스스로의 뒤를 잇고 있기에 든든하다 말했다.

"딸이 백일 때부터 소리 교육학원을 운영했는데,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장구도 배우고 그랬어요.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는 춤에 소질을 보였는데, 기왕이면 소리도 해보라고 조언했죠. 그랬더니 선뜻 하겠다고 해서, 또래 애들 3명과 같이 배우기 시작한 거예요. 지금까지 21년째 하고 있으니 대견하죠."

지난해 회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이북5도 무형문화재연합회' 신임회장으로 당선되면서 더욱 바빠진 그녀지만, 딸의 도움 덕분에 큰 행사도 무리 없이 마칠 수 있었다. 박은혜양이 소리로서 대를 이을 뿐만 아니라, 전수조교로서 일하며 각종 행정적인 업무 처리를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다른 외부의 요인에 흔들림 없이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는 것도 딸에게 자랑스러운 어머니로서 당당히 서기 위함이다.

"국악계에 좋지 않은 관행도 많지만, 저는 그것들을 절대 답습하고 싶지 않아요. 자식이 제 뒤를 잇고 있는데 잘못된 것을 가르칠 수는 없잖아요? 우유 먹이다가 이유식 먹일 때 되면, 이유식을 먹이고, 밥 먹일 때가 되면 밥을 먹여주는 것이 선생 역할이라고 봐요. 제자들이 배워가는 과정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하잖아요. 물론 소리꾼 양성도 중요하지만, 후배들이 설 자리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하기에 그 부분에도 힘을 쏟고 싶습니다."

"죽을 때까지 해도 부족한 것, 소리"
 

한명순의 서도소리 소리의 길 공연 때 제자들과 난봉가를 부르는 사진 ⓒ 한명순 소리예술원

 
공연과 교육, 심사로 일주일 중에 쉬는 날이 없다는 그녀는 소리와 함께 매순간을 걸어왔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그녀가 지향하는 '소리의 길'이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해도 부족할 것 같아요. 지금도 소리를 배우고 있으니까요. 고음반을 찾아서 들어보면서 '우리 스승은 전혀 이런 소리를 안 하셨는데,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났을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궁리하고 연구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제가 아는 서도소리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좋은 소리를 할 수 있다면 해야죠. 이런 다양한 소리가 있다는 걸 세상에 알려야 하잖아요. 그러니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제 힘이 닿는 한까지 열심히 소리할 겁니다. 제대로 된 소리꾼을 배출하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우리동네예술가 #종로예술가 #한명순명창 #서도소리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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