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시작'을 함께했다

온전히 보관된 취임식 초청 자료를 보며 복기하는 ‘작은 인연’

등록 2019.05.21 09:45수정 2019.05.21 09:45
0
원고료로 응원

16년 만에 발견한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자료. 서류봉투 안에는 초청장과 배치도, 취임사가 담긴 팸플릿, 당시 현장을 담은 사진 등이 그대로 있었다. ⓒ 이성훈

오는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다. 요즘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을 비롯해 각 방송사와 언론에서 서거 10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재조명하는 것을 자주 접하게 된다.

노 전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한 추억이 나에게도 하나 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 16대 대통령 취임식 참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평범한 시민에서 바라본 16년 전의 추억을 소개해본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당시 현장에서 나눠준 배지 ⓒ 이성훈

2003년 2월 25일은 노무현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날이다. 당시 경남 산청에 살았던 나는 대통령 취임식에 일반 국민들을 초청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 신청을 넣었다. 운 좋게 선정돼, 취임식이 열린 국회의사당 앞마당에 갈수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고 기록도 생생히 남아있다.

당시 대통령 취임식에 다녀온 여정을 그 다음날 <오마이뉴스>에 실었는데 그 기사는 내가 오마이뉴스에 쓴 첫 기사였다. 공교롭게도 그 기사는 메인 탑을 장식했으며 이를 계기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열심히 활동하게 됐다(관련 기사 : '대통령 취임식'에 다녀와서).

지금 그 기사를 보면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허접하게 여정을 나열한 수준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경험하기 힘든 '대통령 취임식' 참석이라는 추억이 담겨있어서 감회가 새롭다. 

이후 취임식은 까맣게 잊고 지냈다. 다만 당시 취임식 참석자들에게 하나씩 나눠준 배지가 있었는데, 그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했다. 그 배지마저 사물함 깊숙이 넣어둔 탓에 수년에 한 번씩 물건을 정리하면서 어쩌다 가끔 만져볼 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초정장과 배치도 ⓒ 이성훈

그런데 서너 달 전쯤이다. 책장 물품을 정리하면서 놀라운 자료를 발견했다. 16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을 당시 관련 자료를 모두 발견한 것이다. 자료를 보니 서류 봉투부터 취임식 초정장, 대통령 취임사가 담긴 팸플릿, 좌석 위치도, 당시 현장을 필름 카메라로 찍었던 사진 등 온전히 보관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나둘씩 살펴보니 지금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던 장면들이 하나둘씩 조금씩 되살아났다.

온전히 보관된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자료

초청장은 '제16대 대통령취임행사위원회' 이름으로 2003년 2월 17일에 보낸 것으로 나와 있다. 당시 온 국민에게 너무나 충격을 줬던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하기 바로 전날이다. 이 참사로 대통령 취임식은 행사를 상당히 축소한 것으로 기억한다. 초청장 안에는 행사장 구역 위치도와 좌석 위치, 준비물 등을 적어놓은 안내장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선서 ⓒ 이성훈

이번에는 팸플릿을 한 장 두 장 넘겨본다. '새로운 대한민국-하나된 국민이 만듭니다'라는 대통령 취임식 팸플릿에는 식전 행사와 본 행사, 대통령 취임사, 축가 등 식순이 나열되어 있다. 안숙선, 김덕수 사물놀이패, 신형원, 남궁옥분, 양희은 등 국악인과 가수들의 식전 공연에 이어 본 행사는 취임선서, 축가, 대통령 취임사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취임사에 담긴 노무현의 철학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를 찬찬히 읽어봤다. 취임사 제목은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시대로'다. 취임사에는 우선 취임식 일주일 전에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한 대통령의 애도가 담겨있다. 본문에 들어가면 ▲남북관계 ▲한미동맹 ▲정치개혁 ▲경제성장 ▲지방분권 등 다양한 소주제로 나눠져 있다. 참여정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국정 철학을 담고 있다.
 

노무현 16대 대통령 취임사 맨 앞부분 ⓒ 이성훈

노 대통령은 특히 한반도 평화와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중심적 역할에 대한 강조를 상당 부문 할애했다. 취임사에는 한반도 평화증진과 공동번영을 목표로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모든 현안은 대화를 통해 풀어갈 것 ▲상호신뢰 우선, 호예주의 실천 ▲남북 당사자 원칙에 기초한 원활한 국제협력 추구 ▲대내외적 투명성 높이고 국민참여 확대, 초당적 협력 강화 등을 담고 있다. 

취임사에는 또 다른 약속도 있는데 바로 '지방분권'이다. 중앙과 지방 균형을 위해 적극 추진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 취임사 마지막에는 '정의'를 강조했다. 반칙과 특권을 용납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취임사 일부 ⓒ 이성훈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밝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평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10페이지에 달하는 취임사는 "항상 국민 여러분과 함께 있겠다"는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미안하고 고마운 '추억'

당시 현장에서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 6장도 세세히 살펴본다. 먼발치에서 공연하는 모습과 대형 모니터를 통해 노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는 모습, 박나림 당시 MBC 아나운서가 시민들과 인터뷰 하고 있는 장면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16년 동안 묻혀 있던 기억들이 우연찮게 발견한 서류봉투를 통해 한 번에 되살아 난 것이다.  
 

취임식 당시 필름 카메라로 찍었던 현장. 대형 모니터를 통해 노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는 모습, 박나림 당시 MBC 아나운서가 시민들과 인터뷰 하고 있는 장면, 아래는 취임식 현장 ⓒ 이성훈

운 좋게 참석했던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은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못 올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됐고, 지금도 인연을 맺고 있는 오마이뉴스를 알게 됐으며, 오마이뉴스 활동을 바탕으로 십여 년 이상 지역신문에서 기자로 살아갈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가 되도록 여태껏 봉하마을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차로 두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그리고 가끔 지나치는 봉하마을이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을까.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미안함 때문은 아니었는지... 노 대통령 서거 10주기가 지나고 조금 차분해질 때쯤이면 조용히 봉하마을을 다녀오려고 한다. 그리고 비석 앞에서 조용히 인사드리고 싶다. "참 고맙습니다!" 라고.  
#노무현 서거 10주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4. 4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5. 5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