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장관의 기억 "노 대통령이 가장 못 참았던 것이..."

[노무현이 만든 미래 ④] 지은희 전 여성부장관 인터뷰 "그가 아니면 호주제 폐지 못했다"

등록 2019.05.23 14:35수정 2019.05.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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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을 내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래에 남긴 시대 정신은 '사람'이었다. 오마이뉴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노무현이 만든 미래', 노무현의 사람들을 만났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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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희 노무현 정부 당시 여성부장관 ⓒ 이희훈

 
"내가 효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니 (인터뷰를) 좀 짧게 합시다."

지난 13일 서울 녹번동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에서 만난 지은희 전 여성부장관은 호탕한 웃음으로 대화의 문을 열었다. '효율'. 장관 재직시 호주제 폐지 추진, 성매매방지법 시행, 성인지 예산 도입 추진, 보육업무 여성부 이관 등 굵직한 정책들을 막힘없이 추진하고 매듭지었던 사람다운 인사였다.

매사 칼 같은 성격으로 '지칼'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던 지 전 장관은 참여정부 당시 23개월을 여성부장관으로 지냈다. 여성주의가 다시 한번 진보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부상한 오늘을, 20년은 먼저 말하고 행동에 옮겨온 여성주의자 지 전 장관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호주제 폐지가 돼야 한다는 강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호주제 폐지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을 거다. 또 한 가지(가능했던 이유)는 네 여성 장관의 역동적인 협력 덕분이었다."

여성부 장관 재임 시절 자신이 남긴 성과들을 노무현 대통령과 내각 내 여성 장관들 덕분으로 돌린 지 전 장관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인터뷰했다.

1947년생인 지 전 장관은 여전히 정의기억연대 이사, 시민평화포럼 고문 등으로 활발하게 뛰고 있다. 실천해야 할 고민이 아직 많이 남은 까닭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10주기를 맞으니, 그분이 지금 계셨어야 하는 건데 싶어 안타까움이 크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희망이라고 하셨는데 이 시점에서 그걸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가 가장 고민이다."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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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희 노무현 정부 당시 여성부장관 ⓒ 이희훈

   
지은희 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을 장관 취임 때 처음 만났다. 그전까지 이렇다 할 인연은 없었다. 다만 지은희 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을 '운동권'으로 기억한다.

"서로 운동권이었다. (웃음) 나는 (활동 범위가) 서울이었고 노 대통령은 부산 지역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만나서 일을 한 적은 없다. 내가 NGO(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를 하다가 아무 데도 안 통하고(거치고) 장관이 됐지 않나. 운동권에서 장관으로 간 이런 케이스가 드물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내부에서 논란이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이 강성 주장을 했던 터이니 말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1999)를 지냈던 운동권인 그가 장관으로 추천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 공약에 여연이 주장했던 바가 다 들어가 있다. NGO를 거친 사람으로서 대통령 공약에 포함된 여성 관련 정책이 여연에서 주장했던 바와 많이 달랐다면 (장관으로) 가기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다. 여성 운동계가 주장해왔던 과제들을 노무현 정부가 받았기 때문에 과제들을 실행하는 일이 곧 내 일이라고 생각해서 기꺼이 장관을 할 수 있었다."

지은희 장관은 시대적 과제들을 안고 행정부에 입성했다. 그는 당시 장관들이 모인 국무회의 분위기를 언급하면서 "상당히 민주적"이었다고 기억했다.

"대통령이랑 맞담배도 피우고 의견을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반대도 하고 이의제기도 했다. 참 비권위적인 분이셨다."

"좋은 거네요, 그렇게 합시다"

특히 지은희 전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성인지 예산(국가에서 예산을 잡을 때 기획 및 평가 단계에서 성평등 관점을 넣는 것)을 도입하자고 주장했을 때의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렸다.

"성인지 예산이라는 게 외국에서 들어온 개념인데 좀 어렵다. 내가 국무회의에서 '내년에 예산 잡을 때는 성인지적 관점으로 잡아야 한다, 이것이 여성계의 요구사항'이라고 말하니 다들 '저게 뭔 뜬금없는 소리야'라면서 (웃음) 고개를 숙이고 있더라. 그러니 대통령이 '저기요, 이 분위기 보면 아시겠지요? 성인지 예산이라는 게 대체 뭡니까?'라고 물어보시더라.

설명을 하니 대통령께서 '그거 좋은 거네요, 그러면 그렇게 하십시다' 해서 예산처에서 놀랐다. '아니, 좋은 거긴 한데 갑자기 그렇게 할 수는 없다'면서. 대통령 앞이라고 이야기를 못 할 상황은 아니었다. 예산에도 성평등 관점이 반영돼야 한다는 걸 국무위원들도 이날 이해했고 법제화까지 이르게 됐다. 물론 그 다음 날 어떤 신문에 '예산에도 성(姓)이 있나'고 기사가 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지은희 전 장관은 당시 여성 정책을 추진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여성 관련 안건들은 큰 도움을 받았다. 호주제 폐지도 수십 년의 여성운동을 통해서 폐지돼야 한다는 여론이 70% 가까이 왔는데 반대(유림)쪽 여론도 강한 상태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호주제 폐지가 돼야 한다고 생각을 갖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남성 국무위원 중에서도 썩 내켜 하지 않는 분들이 계셨다. 말은 안 하지만 분위기가 영 그랬는데, 대통령이 민주사회의 진전을 위해서 (폐지) 하는 쪽으로 공약했으니 가능했다고 본다."

지 전 장관은 또 수적으로 여성 장관이 많아져야 여성 관련 안건들이 더 활발하게 논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육업무를 여성부로 이관한 것에 대해서는 당시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의 역할을, 성매매 방지법 시행에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역할을 손꼽아 평가했다.

"여성 장관 넷이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하나가 말하면 하나가 동의하고 하나가 제청한다. 1년 11개월을 일했지만 취임하는 날 하겠다고 말한 건 다 하고 나왔다. 목표했던 걸 할 수 있었던 건 대통령의 의지, 네 장관의 역동적 협력으로 인해서였다고 본다. 여성 전체를 위해서도 좋은 기회였다."

"노 대통령의 철학 재평가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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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희 노무현 정부 당시 여성부장관 ⓒ 이희훈

   
"개인이나 집단이 잘못 가진 특권을 남용하는 것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반대가 굉장히 강하셨던 분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가장 못 참으셨던 게 '특권'이다. 또 본인도 사회적 약자에 속하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는 일단 동감을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마음속 깊이 하셨던 분이다."

그 일례로 지은희 전 장관은 '검찰 개혁 추진'을 들었다. 물론 고 노무현 대통령의 뜻대로 개혁이 잘 되진 않았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지만, 지 전 장관에게는 그 시도 자체가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 시도가 문재인 정부로 이어져 검찰 개혁의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의 기본적인 품격에 대해 상당히 신뢰가 있었다. 본인도 그렇게 살아오셨고 다른 사람들도 일정한 품격을 가졌을 거라 믿었다. 선거법을 개정하면 합리적인 국회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시기도 했다.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졌을 때는 '너무 걱정하지 마라, 민주주의 사회의 정권 지지도라는 건 왔다 갔다 하는 것이고 그게 정상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올바른 정책이 180도로 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지 않으셨던 게 아닐까. 본인은 자신을 굉장히 현실적이라 생각하셨겠지만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에도 두 사람의 만남은 이어졌다. 지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 2.0'(2008년 노무현 대통령이 개설한 토론 웹사이트)을 열었을 때 정부 부처 관계자들과 같이 찾아갔다고 한다. 당시 지 전 장관은 퇴임한 노무현 대통령을 성숙한 민주주의로의 진전을 꿈꿨던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봤다.

"(재임 시절) 연설문을 안 보고도 말씀하시는데 그 내용이 기가 막힌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반적으로 탁월한 분석가시다. 내가 잘 감탄을 안 하는데 어떤 문제가 있는지 딱딱 짚어내고 대안을 찾아내시는 데 정말 탁월하셨다. '민주주의 2.0'을 하시면서 사회에 기여하려고 하셨고 그때 한국 사회 발전의 기본 동력이 어디 있는지 고민하셨던 것 같다. 그러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신 게 아닐까."

2006년부터 2013년까지 덕성여자대학교 총장을 지냈던 지은희 전 장관은 시민평화포럼 고문직을 맡아 지난 2월 북한을 방문했다. 그가 직접 바라본 북한은 여전히 상호 존중이 가능하고 평화롭게 협력할 수 있는 대상이다.

"노 대통령 또한 남북 관계를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면서 진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끝까지 견지하셨다. 현 정부의 합의서가 더 진전된 것도 있지만 상당 부분이 이미 노 대통령 때 합의한 내용이다. 임기 말이었고 지지도도 다 떨어졌을 때라 지금에 와서야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언론이 말한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기에 경제와 정치, 남북 관계가 모두 실패했는가? 남북 관계의 영역에서도 대통령이 갖고 있었던 생각들이나 기본 철학들이 재평가돼야 한다고 본다."

"여성운동이라는 게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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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희 노무현 정부 당시 여성부장관 ⓒ 이희훈

 
지 전 장관은 한국 여성운동의 대모라 불리는 이효재(경신사회복지연구소장) 선생의 제자다. '몇 세대 페미니스트로 정의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자신을 이효재 선생 등 1세대 페미니스트에 이어 2세대 페미니스트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최근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를 거치고 있는 영 페미니스트들의 외침을 두고 "노무현 대통령은 워낙 '민주주의의 다양한 목소리'를 당연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에 이런 흐름 역시 의미가 있다고 받아들이셨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여성 인권의 향상이라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흐름이 있었는데, 헌재가 군가산점제를 폐지하면서부터 (반여성주의적 흐름이) 조직화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군이라는 게 젊은 청년이라면 누구나 다 가야하고 그만큼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긴 시간 동안 누렸던 남성들의 특권이 있는데 일정 기한을 잘라놓고 보면 기존에 누렸던 권한이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취업이라도 잘 되면 좋은데 구조상 일자리도 줄면서 어떤 흐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실업이 늘면서 화를 낼 대상을 잡아야 하는데 그 대상이 양극화된 노동시장의 구조로 가기보다 당장 자기보다 유리하게 보이는 여성들, 그리고 그걸 지원하는 여성부로 옮겨간 것이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 안목이 제한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청년들이 정말 힘들고 어렵다는 거다. 이를 제대로 풀어주는 구조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더 어려워질 것이다. 사실 여성이 더 취업이 잘 되는 것도 아니다. 남녀 성별 임금 격차를 보면 아직도 여성들이 더하다. 객관적으로 보면 여성이 조건이 좋은 게 별로 없다."


그러면서 지 전 장관은 "남자인 친구들이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군대도 가야지, 갔다 오니 취업은 안 되지, 결혼은 할지 말지 잘 모르겠지, 그러니 절박한 상황에 처한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남성의 가부장적인 의식 때문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20대 남성들이 안티 페미니스트로 간다고? 현상적으로 그렇게 나타나는 측면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본인들이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이다. 그렇지 않나?"

한편, 그는 여성운동을 주도하는 젊은 여성들에게도 당부의 목소리를 전했다.

"여성운동이라는 게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그걸 서로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나도 이제는 나이든 쪽에 속하는데 미투 운동이 일어났을 때 함께 했다. 우리(나이든 여성들)가 그토록 원하던 여성운동의 대중화라는 것이 일어났기에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다만 비조직된 여성 운동의 흐름이 나름 의미가 있지만, 조직을 가진 여성운동 단체들이 이들의 요구를 수렴해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 또한 서로 상호보완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닥친 문제를 내 방식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오시는 분들의 요구가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지만, 이를 결과를 수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흩어질 수도 있다. 서로 역할이 다른 것이다."


[기획 / 노무현이 만든 미래]
"노무현이 내 정치의 기준... 그가 부산 디비진 걸 봤어야" (http://omn.kr/1jbk6)
노무현 욕하던 동네서 한 시민이 건넨 금일봉 "후회되더라" (http://omn.kr/1jc24)
일베도 무서워 돌아가는 '노빠들의 성지', 관악바보주막 (http://omn.kr/1je6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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