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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정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노무현, 그를 기억하며

[TV 리뷰] < SBS스페셜 > '노무현, 왜 나는 싸우는가?'편

19.05.22 11:39최종업데이트19.05.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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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스페셜 > '노무현, 왜 나는 싸우는가?'편 중 한 장면 ⓒ SBS

 
오는 23일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기가 된다. 2009년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는데, 나에게는 '유명한 정치인'일 뿐이었던 그가 많은 사람들 기억 속에 남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험은 참 신기했던 것 같다. 그가 걸어온 길, 그의 말과 글, 그리고 그가 하고 싶었던 정치에 대해 점차 알게 되면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뒤이어 흔적을 쫓아가본 사람의 입장에서, 조금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를 이야기하는 글과 영상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2017년 5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나름 그런 역할을 다하지 않았나 싶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정치인 노무현'의 7전 8기를 담백하게 쫓아갔다. 별다른 대답을 얻지 못해도 보는 사람마다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라고 인사하던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불의한 정치판을 깨고 싶었던 계란 
 

< SBS스페셜 > '노무현, 왜 나는 싸우는가?'편 중 한 장면 ⓒ SBS

 
19일 방영된 < SBS스페셜 > '노무현, 나는 왜 싸우는가?'편은 노무현이 싸워서 얻어내고 싶었던 것들, 그가 바라던 한국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데 집중했다. 방송 처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운명이다>의 한 구절을 낭독한다.

"그는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가. 그는 왜 그렇게 떠난 것일까. 나는 무엇 때문에 이리도 아픈 것일까.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거치며 모두가 중년으로, 노년으로 늙어가는 동안, 그는 홀로 그 뜨거웠던 6월의 기억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가슴에 품고 씩씩하게 살았다." 

정치인의 기회주의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 정치인 노무현이 극복해야 할 장벽이었다. 2000년 제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한 그의 모습을 비춘다. 선거 벽보에는 이후에 박근혜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맡게 되는 허태열 당시 한나라당 후보도 나오는데, '김대중 독재정권 심판'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 SBS스페셜 > '노무현, 왜 나는 싸우는가?'편 중 한 장면 ⓒ SBS

  

< SBS스페셜 > '노무현, 왜 나는 싸우는가?'편 중 한 장면 ⓒ SBS

 
지금은 그나마 조금 나아진 듯하지만, 그때는 노골적인 지역주의가 판을 쳤다. 허태열 당시 후보가 선거 유세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지목하며 "축하합니다. 혹시 전라도에서 오신 거 아닙니까?"라는 발언을 한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허 후보는 당시에 "전라도 사람이 주축인 새천년민주당에서 영남 사람이 대권주자 되겠다면 그것부터 웃기는 일이 아니겠습니까"라며 노무현 후보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도 되는 시절이었던 것이다. 선거 유세를 다니는 노무현에게 시끄럽다며 타박하고, "부산은 한나라당이 해야 한다"며 '노무현이'를 당선시킬 순 없다며 역정을 내는 사람들. 정치인들은 이런 지역 감정을 더욱 조장하기에 바빴던 셈이다. 노무현의 고등학교 동창인 원창희씨는 이를 두고 '호남당이냐 영남당이냐'를 두고 싸우는 것에 다름없었다고 말한다. 

질 것이 뻔한 데도 도전했던 그의 모습은 그가 정치에 입문한 초창기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그를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계기는 1988년 5공 청문회로, 5.18 민주화운동과 일해재단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한 자리였다. 날카롭고 허를 찌르는 질의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그는 2001년 대권 도전 선언을 하며 말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같은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600년의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고. 
 

< SBS스페셜 > '노무현, 왜 나는 싸우는가?'편 중 한 장면 ⓒ SBS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정치

이날 방송에 소개된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신현묵씨와 노무현의 인연은 남다르다. 그가 원하던 시스템을 신씨가 만들고 있었는데, 내용인 즉슨, 본인을 지지하는 사람들만이 아닌 모든 사람의 생각을 연결하고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였다. 신씨의 말을 빌리면 "그때는 없던 시스템"이었는데도. 디지털을 통한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는 것에 대해 대통령 노무현은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신씨는 말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강금실씨도 카메라 앞에 섰다. 당시 검찰 경험도 없는 사람이 법무부 장관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고 말한다. '검사와의 대화'에서는 "검사를 만나서 대통령이 토론도 하고 대화도 할 수 있는 문화"를 노 전 대통령이 보여주고 싶어했다고. 
 

< SBS스페셜 > '노무현, 왜 나는 싸우는가?'편 중 한 장면 ⓒ SBS

 
당시에 강 전 장관이 현장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는데, 다리를 꼬지 말라는 말이 들어왔다고 한다. 여성이 공개석상에서 다리 꼬고 앉는 것이 건방지다고 여겨지던 시절이었고, 그것이 '문화'였다고 강 전 장관은 이야기한다. 어쩌면 노무현 정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이런 관성들을 바꿀 수 있다는 의지 아니었을까. 검사와 대통령이 서로 만나기 힘든 문화, 여성이 공개석상에서 조신하게 앉아야 한다는 문화를 바꾸고 싶었던 것일 테다. 

당연히 저항이 있었다. 학벌도 보잘 것 없고 정치 경력도 많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는 문화를 바꾼다고 하고 있으니 아니꼬웠던 것일까. 당시 야당은 '다음 대통령은 대졸자를 뽑아야 한다', '일본 방문은 등신 외교다' 따위의 문제적인 발언을 하는가 하면 언론들은 노무현의 말 하나하나에 시비를 걸었다. 다들 잡아먹자고 달려드니 말실수나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나오고 악순환의 반복이 일어날 수밖에 없던 것. 

대통령의 말 때문에 더 시끄러워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연설비서관을 맡았던 강원국 작가는 "투명하게 다 말로 보여주면 권위가 없어 보이게 된다"고 말하는 한편, 유 이사장은 행동 하나하나에 '내가 왜 이렇게 하냐면'이라고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논란이 생겼다고 그때를 회상한다. 노무현에게 중요한 건 권위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정치를 내 앞의 사람들과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감이 아니었을까.
 

< SBS스페셜 > '노무현, 왜 나는 싸우는가?'편 중 한 장면 ⓒ SBS

  

< SBS스페셜 > '노무현, 왜 나는 싸우는가?'편 중 한 장면 ⓒ SBS

 
그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어도 통합의 정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권력 구조를 개편하고 싶어했던 노 전 대통령은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해 대연정을 할 수 있다면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2005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 당시 박근혜 의원이 대표로 있었던 한나라당 간의 연합정부 구성을 제안했다.  

당시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부속실장과 비서실 대변인을 맡았던 윤태영씨의 말을 빌리면 이 시도는 여야를 막론하고 의심받았다고 한다. 야권에서는 무슨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고, 여당은 어떻게 독재의 후예들과 손을 잡을 수 있느냐며 대연정에 부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통합과 상생을 말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때만 해도 통합과 상생은 머나먼 이야기였던 것. 

유시민 이사장의 말을 빌리면 이런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는 '화해를 위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걸 원하는 세력들이 없었기 때문에 거절당했다. 아직 화해, 상생, 공존을 쉽게 말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공-과와는 별개로, '그때의 노무현'의 생각에서 지금 우리 정치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정치인을 기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올해 서거 10주기를 맞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많이 개봉했고 할 예정인데, 그건 그것 나름대로의 기억이고 추모의 방식일 것이다.

< SBS 스페셜 > '노무현, 왜 나는 싸우는가?'편은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공고했던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낡은 정치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이로 기억하고 그리고 있다. 그 방식과 결과에 대해서는 각자 달리 평가할 순 있겠지만, 확실한 건 필요한 일이었고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의식을 준다는 점 아닐까. 
 

< SBS스페셜 > '노무현, 왜 나는 싸우는가?'편 중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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