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PD가 통편집한 진짜 절약하는 비법

[최소한의 소비 19] 절약하는 법, 책에서 배웁니다

등록 2019.06.01 11:34수정 2019.06.0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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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딸이 꼬마버스 타요 보려고 유튜브를 틀었다. 영상 아래 길쭉하게 보이는 카드사 배너 광고에서 6~7분에 한 번 씩 은행, 장난감 등 온갖 광고가 뜬다. 광고 뿐이랴. 신용카드 정도야 쉽게 발급 받을 수 있다. '지름신'은 고어가 되고 이젠 '탕진잼'이 트렌드다.


소비는 쾌락이다. 이 재미는 '오늘 쓸 돈 내일로 미루라'라는 탈무드의 격언도 잊게 만든다. 그렇지만 마구잡이로 쓸 순 없다. 100세 인생에서 넋놓고 소비만 하다가는 정작 돈이 필요할 때 빚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식 유혹을 뿌리치고 내일을 위해 밥솥에 쌀을 안치는 독종으로 살아야 한다.

나는 '이 시대의 독종'이다. 건조기는커녕 다리 부러진 빨래 건조대에 투명 테이프를 감아 창문에 기대어 쓴다. 5살 난 딸아이 친구들이 하나, 둘 한글을 떼려 학습지 입문 할 때, 사교육비가 아까워 직접 한글을 가르친다. 누가 옷을 물려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넙쭉 받는 건 기본, 구멍이 나면 서툰 바느질 솜씨로 기워도 본다.

에어 프라이기는 고사하고 흔한 튀김팬도 없이 얇은 프라이팬 한 장으로 모든 요리를 한다. 하루 식비 1만5000원. 김치만 먹냐는 비아냥 속에서도 요즘은 1만 원으로도 살아보는 중이다. 돈이든 물건이든 서비스든 없으면 없는 대로 있어도 없는 대로 산다.
 

주말 가족 나들이, 외식비를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싼다. 외식 한 끼 흔한 세상에 억척스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무척 행복해한다. 독하다고 여기는건 어쩌면 나의 자의식 과잉인지도 모른다. ⓒ 최다혜

 
어린시절부터 경제 교육을 잘 받았던 건 아니다. 취직 후 월급 받으면 80만 원 저축 후, 남은 계좌 잔액을 털어 기어이 잔고 0원으로 만들었다. 필요하지 않아도 돈 있으니 쓰니 계좌 탈탈, 월급 탕진의 여왕이었다. 그나마 선저축 하던 80만원은, 나를 속속들이 아는 친동생이 "누나는 저축 없인 답이 없다"며 강권해준 덕분이다.

결혼하고 아이 낳아도 마찬가지였다. 육아는 '아이템전'이라 외치며, 모유 수유 중에도 한 손에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온갖 육아용품 쇼핑을 했다. 돈 주고 산 물건인만큼 고단한 육아의 늪에서 구원해주리라 순진하게 믿었다. 육아 노동을 줄여주는 물건도 있지만 그렇지 못 한 물건이 대다수였다. 지금은 아기 세탁기에 어른 양말을 빨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절약 비법으로 식비 가계부에 쉽게 수긍하지만, 독서의 힘을 믿지 않는다. ⓒ 최다혜

  
절약은 독서와 함께 찾아왔다. 사람들은 '식비 가계부', '냉장고 파먹기', '미니멀라이프', '신용 카드 자르기'를 들으면 절약 습관이라 수긍하면서도, 독서가 절약의 핵심이라 하면 고개를 갸웃했다. 심지어 절약 비법을 알려달라던 방송사 PD님들 마저도 '독서와 절약' 부분은 통편집 했다. 절약 비법이라 해놓고 재테크 책을 소개한 게 아니라 인문 고전과 사회과학책을 소개했기 때문인 걸까. 각기 다른 방송 촬영에서, 두 번 모두 잘렸다.

하지만 절약과 독서는 궁합이 맞다. 이게 진짜 절약하는 독종이 되는 비법이다. 책을 읽다보면 불쑥 절약을 자극하는 말들이 튀어나오는데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많다. 그래서 은유 작가가 글쓰기를 촉진하는 '쓰기의 말들'을 수집했다면, 나는 돈 덜 쓰는 삶을 응원하는 '절약의 말들'을 수집해왔다.


종아리 부분이 터진 바지를 기우면서, 이것은 절약인가 궁상인가 한참 헷갈릴 때, 끝까지 바느질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것도 '절약의 말들'이었다. 만 원 한 장 들고 마트에 들어가 잔돈까지 남겨 나오는 기적도 모두 책 속 문장들 덕분이었다. 궁상도 궁색도 아닌, '최소한의 소비'가 맞다며 절약 노력가로 살게 해 준, 절약 촉진제들을 소개할까 한다.
   
1. 사치품일까, 필수품일까...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 김영사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중략)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이야말로 희대의 사기극이라 말한다. 사람들은 정착과 농경을 통해 덜 춥고, 덜 배 곯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늘어난 밀만큼 인구가 늘어날 줄은 몰랐다. 단일 식량원에 의존하면서 가뭄에 취약해졌고, 정착 생활으로 전염병이 더 빠르게 퍼졌다. 분명 수렵채집인 시절보다 사냥과 채집의 수고를 줄였다. 그럼에도 더 쉽게 살려는 계획은 실패했다.

1만년 후, 우리도 수렵채집 생활을 청산하고 유토피아를 꿈꿨던 농경인들과 마찬가지다. 더 좋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치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세탁기, 자동차 없이는 불행하다 믿는다. 해외 여행 한 번 못 가면 혹은 원할 때 외식을 할 수 없다면, 열등한 삶이라 단정한다. 이제 신혼부부의 아파트, 아이 있는 집의 중형차, 건조기와 식기 세척기, 청소기는 새로운 의무가 되었다. 훌륭한 가전제품과 서비스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 퇴근하며, 아이들은 부모와 이른 아침 등원해서 저녁 늦게 하원한다. 아파트, 두 대의 자동차, 각종 가전기구와 사교육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돈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남들만큼' 살기 위해 필요한 금전이다. 평범하게 살면 행복하고 즐거워야 하는데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자꾸만 떨어진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채야 한다. 우리는 주어진 힘을 행복으로 전환할 줄 몰랐던 거다.

<사피엔스>를 읽은 후, '반드시 갖춰야 할' 물건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 대신 이건 사치품일까 필수품일까 먼저 가늠했다. 방법은 '일단 없이 살아보기' 였다. 불편을 감수해보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면 사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 집 상황에 맞게 편리한 사치품을 걸러낼 수 있게 되었다.
 

청소기 대신 빗자루를 쓴다. 빗자루는 청소기가 사치품임을 기억하기 위한 상징이다. ⓒ 최다혜

 
천기저귀도 써보고, 이유식을 물에 중탕해봤으며, 손빨래와 선풍기로 버텨도 봤다. 중노동이었고, 아이는 여름 밤 잠을 못 잤다. 종이 기저귀나 전기압력밥솥, 전자레인지, 세탁기, 에어컨은 우리집에 필수품이었다. 없으면 불편했다.

청소기와 물걸레 청소기 대신 빗자루로 쓸고 손걸레질 한다. 물티슈 대신 손수건을 들고 다니며 필요하면 물에 적셔 쓴다. 이유식 마스터기나 배달 이유식, 혹은 죽집을 이용하기보다 냄비에 찹쌀을 불려 죽을 끓였다. 사교육 대신 직접 아이 앉혀놓고 한글과 숫자를 가르칠만 했다. 아이는 생각보다 쏙쏙 알아들었고, 나는 부모로서 뿌듯함도 느꼈다.

의류 건조기가 나를 노동에서 해방시켜줄지 모른다. 하지만 건조기가 필수품이 되어, 이 가전제품 없이 도저히 행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이게 건조가 하나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건조기, 무선 청소기, 중대형 SUV 자동차, 30평대 아파트, 비데, 정수기, 연수기에 브랜드 의류까지.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사치품을 얻기 위해 노동하느라 불행하다면, 이건 필수품의 가면을 쓴 사치품임을 깨닫자는 것이다. 사치품에 길들여지기 전에, 없이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삶을 안정감있게 살아내는 요령이다.

청소기로 바닥을 청소하면 훨씬 빠르고 편하다. 하지만 굳이 빗자루질을 하는 이유는 '사치품과 필수품'을 늘 구별하며 살자는 나만의 의식이다. 빗자루야말로 내게 <사피엔스>의 교훈을 기억하기 위한 상징이다.

2. 냉장고에 계란 있으면 마트 가지 말라... <간디의 편지>, 모한다스.K. 간디, 원더박스
 

<간디의 편지>, 모한다스 K. 간디 지음 ⓒ 원더박스

 
"어떻게 살면 신의 법대로 사는 것인가?"
"모자 쓰고 모자 사러 가지 않는 것이다."

모한다스. K. 간디. 그는 우리가 마하트마 간디로 더 잘 알고 있는 인도의 비폭력 운동가다. <간디의 편지>는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써내려간 15편의 에세이들과 정치적 이유로 감옥에서 쓰지 못 했던 스와데시(국산품 장려 운동)에 대한 1편의 에세이로 이뤄져있다.

간디는 불필요한 물건을 갖지 않았다. 생존을 위한 음식 외에는 입맛을 통제하며, 이 길이 힘들지라도 실천하겠노라 서약한다. 이게 풍요의 시대에 가난한 이들이 배 곯지 않을 가장 정직한 길이라 여겼다.

검소한 삶은 부의 편중을 줄일 수 있는 미약한 실천방법이다. 물건 만드는 부유한 사업가들의 물건을 사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간디는 절약이 느리지만 자본 소득보다 노동 소득으로 부가 분배될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겼다. 비폭력 운동의 일환으로 물레를 돌렸던 깡마른 간디다운 실천이었다.

모자 쓰고 모자 사러 가지 않는 건, 더 욕심내지 말라는 거다. 갖고 있는 물건을 구태여 또 사지 말라는 경고다. 수 십 벌의 옷을 두고도 옷을 사거나, 멀쩡한 핸드폰을 최신형으로 바꾸는 일, 이미 아이 장난감은 발에 채이는데 어린이날이라고, 크리스마스라고, 생일이라고 몇 개 씩 더 얹어주는 이벤트까지 모두 모자 쓰고 모자 사러 가는 일이다.

주부인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도 다가왔다. 바로 '식재료'의 문제였다. 그동안 나는 하루 식비를 1만5000원으로 잡아두고, 이 안에서 장을 봤다. 집에 계란이 있어도, 고기를 샀다. 파가 있어도 부추와 쪽파를 들였다. 몇 끼 식재료가 냉장고에 떡하니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식비 예산이 있으니 돈을 썼다.
 

냉장고에 계란 한 알 없고 나야, 장을 보는 습관을 들였다. ⓒ 최다혜

  
<간디의 편지>를 읽고 나서는 조금씩 실천해봤다. 한 번 각인된 '모자 쓰고 모자 사러 가는 일'은 좀처럼 잊을 수 없었다. 비록 식비 예산이 남았더라도, 냉장고에 먹거리가 있으면 불필요하게 더 사지 않았다. 냉장고에 김치와 장, 자투리 채소 몇 개 남아야 그제서야 장을 봤다. 냉장실이 널찍해지니, 청소도 쉽고, 남은 식재료 파악하기도 편했다. 무엇보다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냉장고가 비어야 식재료를 새로 사는 습관을 들이니 하루 1만5000원도 식비로 많았다. 그래서 이제 하루 식비 예산을 1만 원으로 줄이는 연습 중이다. 물론 친정 부모님께서 가끔 쌀을 주시고, 텃밭에서 푸성귀를 주신 덕이다. 나의 상황, 나의 살림에서는 1만5000원이 남는다. 누구나 신고 있는 신발이 다른데 모두 같은 식비 예산을 잡을 수는 없다.

그러면 돈을 어디에 쓸까? 다 갖고 있는데. 그렇게 치면 살 거 없는 거 아닌가? 맞다. 그래서 안 사고, 그래서 돈을 많이 안 쓴다. 경제적으로 해방감 느낀다. 월급은 그대로고 아이는 한 명 늘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더 자립했다. 모자가 많은데 모자 살 필요 없으니까. 이 단순한 한 문장 덕분에 먹고 사는 일에 자신감이 생겼다. 돈 문제에서만큼은 행복해지기까지 했다. 즐겁게 잘 사는데 큰 돈 안 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짓수가 많지는 않지만, 건강한 재료들로 넉넉한 집밥 한 상 차려 먹는다. ⓒ 최다혜

 
애서가와 절약가는 꽤 어울린다. 궁합이 맞다. 절약하려면 책을 읽어야하고, 책을 읽다보면 다시 절약하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아직 소개해드리고 싶은 책이 한 두 권이 아니다. '최소한의 소비' 연재 중, 몇 번 더 소개해드릴 예정이다. 말씀드렸듯, 온갖 책에서 절약의 말들은 여전히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읽은 육아서에서도, 아이는 돈으로 키우는게 아니라 사랑으로 키운다는 문장을 만났다. 밑줄 쫙 긋고, 필사 했다. 덕분에 사고 싶던 유아 전집 대신 도서관에서 신간 동화 다섯 권을 빌려왔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께서도 관심있는 책 한 권 정도 읽으신다면, 이 기사를 쓴 보람이 있을 것 같다. 꼭 재테크 서적이나 절약을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어도 좋다. 언제, 어디서나 절약 촉진제들은 곳곳에 있기 마련이니.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dahyun0421)에도 실립니다.

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김영사, 2015


간디의 편지 - 삶의 태도에 관한 열여섯 편의 에세이

모한다스 K. 간디 지음, 이현주 옮김,
원더박스, 2018


#최소한의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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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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