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도 무서워 돌아가는 '노빠들의 성지', 관악바보주막

[노무현이 만든 미래 ③] 봉하막걸리 놓고 노무현 정신 실천하는 시민들

등록 2019.05.22 08:23수정 2019.05.2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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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을 내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래에 남긴 시대 정신은 '사람'이었다. 오마이뉴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노무현이 만든 미래', 노무현의 사람들을 만났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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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바보주막에 걸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 ⓒ 김종훈

 
"일베도 와서 인증을 하고 가더라고요. '노빠들의 성지, 그래도 막걸리는 맛있네' 이렇게 말하면서요."

2015년부터 서울 관악구 신림동 '관악바보주막'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는 최우선 좋은바람협동조합 이사가 지난 20일 오후 건넨 말이다. 최 이사는 "가끔씩 극우사이트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를 하는 친구들이 찾아와 봉하막걸리를 마시고 인증하고 간다"면서 "와서 해코지를 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몰래 낙서를 하거나 일베에 이상한 글을 올리곤 한다"라고 덧붙였다.

<오마이뉴스>가 일베 사이트에 확인해 보니, 일베 이용자들은 관악바보주막을 비롯해 부산과 김해, 대구, 고양 등에 위치한 '바보주막'을 찾아 일베 손가락 등을 표시한 사진을 찍는 등 인증 게시물을 수차례 남겼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일베 이용자들은 온라인에서 모욕적인 행동을 이어왔지만 오프라인까지 발전시키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최 이사는 "바보주막을 온 일베가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한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적인 힘'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베 유저들이 쓴 게시물에는 "마지막은 손 인증을 남긴다, 노사모들한테 맞을까봐 허겁지겁 찍었다"라는 것도 있었다.  

2014년 3월, 130명의 조합원이 모여 관악바보주막을 창립한 이래 지난 5년 2개월 동안 667명의 조합원이 모였다. 이들은 유례없는 '주막'이란 이름을 건 시민들의 모임을 만들었고, 여타의 시민단체처럼 활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노무현 대통령 10주기를 앞둔 지난 2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관악바보주막을 찾아 주막에 얽힌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주막, 민주주의 학습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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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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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바보주막’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는 최우선 <좋은바람협동조합> 이사, 그는 웃을 때 부끄러워했다. ⓒ 김종훈

 
최우선 이사는 관악바보주막에서 손님들에게 보통은 '사장님'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사장이 아니다. 스스로도 "자원봉사하는 관악바보주막 조합원"이라고 강조했다. 최 이사는 "제가 급여를 받으면 주막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면서 "노 대통령에 대한 부채 의식과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화를 위해선 공간이 필요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기간이 벌써 4년째다. 그에게 "후회되거나 아쉽지는 않냐"라고 물었다.


"저도 처음에는 제가 이렇게 오랜 시간 바보주막을 관리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좀 더 책임감 있게 맡아서 운영을 해야 조직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바보주막에 모여 시민들을 만나고 저를 포함해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진짜 노 대통령이 강조한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구나라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충분히 보상받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최 이사는 "관악바보주막 자체가 민주주의 학습터로 자리잡고 있다"면서 "주막 운영에 있어서도 제가 시간이 안 되면 다른 이사나 조합원들이 와서 적극적으로 손을 보태고 있다, 조합이 잘되면 언젠가 배당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좋은바람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관악바보주막은 이사장을 포함해 9명의 이사들이 중심이 돼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크게 실행위원회와 운영위원회로 역할을 나눠 바보주막뿐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문화 공연 및 강연도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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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바보주막 입구에 설치된 노란색 바람개비. ⓒ 김종훈

 
관악바보주막은 2014년 7월 윤태영 전 비서관의 강연을 시작으로 심상정 정의당 의원,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강원국 작가, 최근에는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 등의 강연을 이어오고 있다. 주막이라는 이름을 건 공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인물들이다. 

최 이사는 "다들 노 대통령이 강조한 '사람사는 세상'의 뜻과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라면서 "우리들을 각성시키고 이끌 수 있는 여러 명망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강연을 주관하게 됐고, 모든 분들이 기꺼이 강연에 응했다"라고 덧붙였다.

최 이사는 "그 시작이 대통령의 입이자 복심이었던 윤태영 전 비서관이었다"라면서 "윤 전 비서관은 2014년 당시 몸이 안 좋아 칩거생활을 했는데 거의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나온 것이 우리 강연이었다, 그만큼 바보주막은 노무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또 최 이사는 "바보주막에서 하는 강연은 주막 운영만큼 중요한 행사"라면서 "수년째 이어온 것이 자랑스럽고 좋다"고 전했다. 이제는 명망가들이 먼저 강연을 제안하기도 한다고. 

바보주막 한쪽 벽에는 지금까지 바보주막을 거쳐간 무수한 명사들의 사진이 친필 사인과 함께 전시돼 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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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바보주막 메뉴판. 막걸리를 마시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표지다. ⓒ 김종훈

 
관악바보주막은 서울에서 맛보기 힘든 봉하막걸리를 쉽게 마실 수 있는 장소다. 봉하막걸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 김해에서 생산한 햅쌀로 만든다. 그만큼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는데, 이 때문에 순수하게 봉하막걸리를 맛보기 위해 주막을 찾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관악바보주막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모임은 목적성을 띤다. 20일에 진행된 독서모임도 그중 하나다. 퇴근 후 주막에 모인 시민들은 자연스레 책을 꺼내들었다.

이날 모임에 참가한 이종희씨는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깊은 좌절을 느꼈다"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패를 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을 봤다, 결국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부족해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이를 위해선 나뿐 아니라 여러 시민들의 깨어있음이 중요해 바보주막에 함께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씨는 "바보주막에서는 부담 없이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꿈꿨던 플랜을, 이제는 남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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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바보주막에서 독서모임 하는 시민들 ⓒ 관악바보주막 제공

 
독서모임에 참여한 민서씨도 "사람들이 편하고 좋아서 계속 바보주막을 찾는다"라면서 "자유한국당이 극우집단인 태극기부대의 눈치를 보는 건 조직돼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조직된 힘을 갖추어 노 대통령이 강조한 뜻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우선 이사 역시 이날 독서모임에 참석했다. 그는 다른 손님이 자신을 찾으면 독서모임 와중에도 자연스레 일어나 업무를 봤는데 "이 점이 바보주막의 매력"이라면서 "바보주막에서 만난 형과 동생, 누나들과 함께 세상을 조금씩 바꾼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특히 세월호 참사와 촛불혁명 등을 거치며 우리만의 역할을 찾고 만들어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관악바보주막 조합원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서울 곳곳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자발적으로 서명대를 만들어 국민 서명을 받았다. 촛불혁명 기간에는 매주 광화문에 모여 민주주의를 외치며 그해 겨울을 보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관악바보주막은 연중무휴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영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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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바보주막 조합원들이 2018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을 찾았을 당시 모습. ⓒ 관악바보주막 제공


[기획 / 노무현이 만든 미래]
"노무현이 내 정치의 기준... 그가 부산 디비진 걸 봤어야" (http://omn.kr/1jbk6)
노무현 욕하던 동네서 한 시민이 건넨 금일봉 "후회되더라" (http://omn.kr/1jc24)
 
#노무현 #바보주막 #일베 #관악 #관악바보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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