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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5.22 09:41수정 2019.05.22 10:47
지난해 6월 말 충청북도 옥천에 있는 유기농 복숭아 농원에 간 적이 있다. 불과 열흘 전에 실하게 달려 있던 복숭아나무가 횅했다. 군데군데 복숭아가 달려 있지만, 작거나 덜 익은 복숭아였다. 사라진 복숭아는 이제 익기 시작한 단맛이 도는 복숭아였다. 

익은 복숭아만 골라 따 먹은 범인은 멧돼지였다. 가을에 배 농원은 후식으로 까치가 배를 쪼아 먹은 것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잘 익은 것만 골라 먹었다. "농장 주위에서 벌레 잡아먹고 나서 후식으로 먹는갑다" 하는 농을 주인과 주고받기도 했었다.

과일은 익은 것이 맛있다. 매실은 과일이니, 매실 역시 익은 것이 맛있다. 매실 익은 것은 찾아 먹기 힘들다. 덜 익었을 때 따기 때문이다. 덜 익은 것을 못 먹는 것은 아니다. 덜 익은 것 자체로도 충분히 맛이 있지만 익었을 때 비하면 향이나 단맛이 덜하다.

매실은 익기 시작하면 살짝 부는 바람에도 쉽게 떨어진다. 매실나무의 잎이 커지면서 부실한 매실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른 태풍이 닥치면 한 해 농사가 바람에 날아간다. 매실은 동그랗다. 매실 꽃이 떨어지고 길게 자라다가 익기 시작하면서 옆으로 자라 마침내 동그랗게 된다. 

청매실 중에서 이른 시기에 수확한 것은 타원형이 대부분이다. 유통업체에서 누가 먼저 판매하느냐를 두고 시합하듯 할 때 타원형의 매실을 파는 경우가 있다. 타원형의 매실은 가격만 비싸고, SNS에 먼저 샀다고 자랑하기에 좋을 뿐이다.

청매실과 황매실은 익은 정도에 따른 구분
 
잘 익은 매실은 노란색에 빨간색이 물들어있다. 노란색만 있는 매실은 나무에서 익은 게 아니다. 푸른 매실을 수확한 다음 고온에서 보관해 익힌 거다. 물론 청매실보다는 향기가 낫지만 빨간색이 물든 매실과는 다르다.

잘 익은 매실은 노란색에 빨간색이 물들어있다. 노란색만 있는 매실은 나무에서 익은 게 아니다. 푸른 매실을 수확한 다음 고온에서 보관해 익힌 거다. 물론 청매실보다는 향기가 낫지만 빨간색이 물든 매실과는 다르다. ⓒ 수향매실농원


청매실, 황매실? 매실 종류가 다른 것이 아니다. 매실의 익은 정도에 따른 구분이다. 청매실은 막 익기 시작한 매실이고, 황매실은 다 익은 매실이다. 매실 종류는 900종 정도로 상당히 많다. 크게는 꽃을 보는 매실이 있고, 과실을 얻는 매실이 있다. 꽃을 위한 매실나무도 열매를 맺지만, 과실이 앵두만 해서 상품 가치는 없다.

매실은 익으면 노랗게 색이 든다. 더 익은 부분은 빨갛게 변한다. 색이 진해질수록 향이 깊어진다. 푸른 매실에서 맡을 수 없는 향이다. 익은 매실의 상자를 열면 진한 향기가 난다. 매실을 씻고 베어 물면 사각사각하게 씹힌다. 

새콤달콤한 과즙이 터져 나오고, 한동안 진한 매실 향에 기분좋게 취한다. 매실청을 만들어 마시는 내내 향기와 함께 할 정도로 좋다. 푸른 매실은 씹으면 서걱서걱한 식감과 신맛밖에 없다. 설탕에 버무려 3개월 뒤에 청이 돼도 향이 익은 매실과 비교해 약하다. 대신 생선 요리할 때 비린내 제거 용도로는 좋다. 

잘 익은 매실은 노란색에 빨간색이 물들어있다. 노란색만 있는 매실은 나무에서 익은 게 아니다. 푸른 매실을 수확한 다음 고온에서 보관해 익힌 거다. 물론 청매실보다는 향기가 낫지만 빨간색이 물든 매실과는 다르다. 익은 매실과 익힌 매실, 즉 자연스레 시간에 따라 익은 것과 사람이 조건을 만든 차이다. 향기나 식감이 매우 다르다. 

매실의 수확은 꽃이 피고 90일 정도 지난 5월 말부터 시작한다. 매실 나오는 시기는 생산지마다 달라 광양을 시작으로 순천, 하동 순으로 나온다. 매실이 먼저 나오는 광양에서도 매실의 수확을 꽃이 핀 날로부터 100일, 110일, 120일 순으로 구분지어 수확하는 곳이 있다.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에 있는 수향매실농원이 그렇다. 

100일 된 것은 장아찌나 피클로, 110일 된 것부터 청이나 우메보시 용으로 쓴다. 매실은 핵과(과실의 씨앗이 단단한 종으로 복숭아, 살구 등이 대표적이다)의 과일로 100일 정도 돼야 씨앗이 단단해지고, 과육은 서걱서걱한 식감이 사각사각한 식감으로 바뀐다. 씨앗이 단단해지면 매실에 있는 청산 배당체인 아미그달린(amygdalin)이 감소하거니와 단단해진 씨앗에 갇힌다. 씨앗이 여물기 전에 과육을 먹지 말라는 안전장치가 아닌가 싶다. 

매실에 있는 청산배당체는 생 매실을 배불리 먹어야 겨우 독성이 생길 정도의 양이다. 익은 매실이라도 두어 개 먹으면 더는 먹을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새콤달콤하다. 시기만 한 청매실이라면 한 개도 힘들다. 청산배당체는 청이나 술로 담그는 과정에서 사라진다. 익은 매실로 담그면 그럴 걱정조차 없다.

1996년 백화점에 근무할 때 처음 매실을 잼으로, 청으로 먹는 지 알았다. 2000년에 들어서니 어느 순간 매실이 '핵인싸'가 되었다. 2010년을 넘어서는 어느 종편 방송으로 인해 매실이 설탕물밖에 없다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매실을 먹는 방법은 장아찌, 술, 그리고 청이다. 

매실청은 설탕에 재서 만든다. 매실에 있는 수분이 설탕을 녹이면 설탕물이 된다. 설탕물은 삼투압 현상으로 매실 과육의 세포를 파괴한다. 녹이고, 파괴하는 3개월의 시간이 지나면 매실청이 된다. 세포 안에 있던 구연산 등을 비롯한 유기산 영양분이 청에 녹아든다. 

매실은 설탕과 5:5 비율로 청을 담근다. 설탕물이라고도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효소라고 받드는 사람도 있다. 매실을 설탕에 넣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오래 저장할 수 없는 매실을 두고두고 먹기 위해서다.

익은 매실이 맛있는 까닭
 
청매실, 황매실? 매실 종류가 다른 것이 아니다. 매실의 익은 정도에 따른 구분이다. 청매실은 막 익기 시작한 매실이고, 황매실은 다 익은 매실이다. 매실 종류는 900종 정도로 상당히 많다.

청매실, 황매실? 매실 종류가 다른 것이 아니다. 매실의 익은 정도에 따른 구분이다. 청매실은 막 익기 시작한 매실이고, 황매실은 다 익은 매실이다. 매실 종류는 900종 정도로 상당히 많다. ⓒ 김진영


냉장고가 없던 시절, 고기 보관을 위해 소금을 발라 처마에 매달아 햄을 만들었듯이, 저장을 길게 하거나 맛있게 먹기 위해 사람들은 수많은 가공법을 개발했다. 매실로 청을 담그는 것은 그런 가공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식품 가공에서 간혹 생기는 특수함이 주인공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내용은 잘 몰라도 <동의보감>이나 <향약구급방> 정도는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다. 지역의 특산품을 소개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는 책들이다. <조선왕조실록>도 빠지면 섭섭한 책이다. 

이것을 먹으면 뭐에 좋더라 식의 이야기에 현혹되기도 한다. 식품을 가공하는 이유는 맛있게 혹은 길게 먹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특별함이 생길 수는 있어도 가공 목적은 변하지 않는다.

비가 내리면 여름 과일은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아이가 크듯 무럭무럭 자란다. 매실은 익기 시작하면 동그랗게 변한다. 파랗고 동그란 매실을 며칠 두면 노랗게, 그리고 빨갛게 물든다. 빨갛게 물든 매실의 향은 깊고, 진하다. 

6월 중순부터 익은 매실이 나온다. 매실은 익기 시작하면 잘 떨어지기에 생산하는 곳이 적고 가격이 제법 나간다. 매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올 여름 익은 매실로 청을 담가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전과 다른 향을 경험할 수 있다. 청 담그는 것이 귀찮은 이를 위해 음료로 만든 것도 있다. 

매실은 과일이고, 과일은 익어야 맛있고, 그래서 익은 매실이 맛있다.
 
매실은 익기 시작하면 살짝 부는 바람에도 쉽게 떨어진다. 매실나무의 잎이 커지면서 부실한 매실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른 태풍이 닥치면 한 해 농사가 바람에 날아간다.

매실은 익기 시작하면 살짝 부는 바람에도 쉽게 떨어진다. 매실나무의 잎이 커지면서 부실한 매실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른 태풍이 닥치면 한 해 농사가 바람에 날아간다. ⓒ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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