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은 여자들의 파격 화보, 이 재미를 왜 몰랐을까

[30대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나는 좀 더 불량해지기로 했다

등록 2019.05.26 15:52수정 2019.05.2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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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에 접어드니 지나온 시간이 이제야 제대로 보입니다. 서른과 마흔 사이에서 방황하던 삼십 대의 나에게 들려주고픈, 지나갔지만 늦진 않은 후회입니다.[편집자말]
"지금까지 살면서 당신이 저지른 가장 큰 일탈은 무엇인가요?"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머리가 뒤엉켰다. 일탈이라고 하면 자우림의 <일탈> 속 가사처럼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같은 게 떠올라서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 가는 대로 열 맞춰서 조심하며 살았던 삶이라 딱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랬던 내가 '일탈'이라 말할 수 있을 만한 일을 드디어 경험했다.

마흔 넘은 그녀들의 화보 촬영
 

그동안 제주도 여행이란, 슬슬 돌아다니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올레길을 걷는 게 전부였는데, 이번에는 어딜 가나 사진을 찍는 것이 메인 이벤트였다. ⓒ 신소영

 
2주 전, 마흔 중반 넘어서 만난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밤늦게 올라오는 꽉 찬 2박 3일 일정이었다. 그런데 공항에서 만난 친구의 여행용 캐리어 크기가 심상치 않았다. 고박 사흘 국내 여행인데 캐리어는 8박 10일 유럽 여행 수준이었다. 평소 멋쟁이였기 때문에 옷을 많이 갖고 왔다 쳐도 크기가 과하다 싶었다. 궁금증은 호텔에 도착해 짐을 정리하며 풀렸다.

"소영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내가 코디해 왔어요. 한번 입어 봐요."

친구는 나를 위해 여러 벌의 옷을 준비해왔던 것이다. 거기서 첫 번째로 놀랐고, 그녀가 준비해왔다는 옷을 보는 순간 두 번째로 놀랐다. 세상에. 그녀가 나를 위해 가져온 옷 중에는 주황색 블라우스와 샛노란 롱스커트, 함께 곁들일 벨트가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로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원초적 원색 배합이었다. 게다가 허리 벨트라니. 굵은 허릿살은 감추기 바쁜 '적폐'였거늘 그걸 벨트를 매서 드러내란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안 해본 짓을 하고 싶어졌다. 여긴 여행지 아닌가. 못 이기는 척 순순히 말을 들었다. 어머나, 생각했던 것보다 잘 맞았다. 굵은 허리 라인도 겁 먹었던 것에 비하면 꼴사납지 않았다. 옷을 그렇게 입으니 어쩐지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본격적 일탈은 그다음부터 시작됐다. 옷을 갈아입고 여행을 시작하면서 내가 그렸던 제주도 여행의 모든 밑그림이 깨졌다. 그동안 제주도 여행이란, 슬슬 돌아다니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올레길을 걷는 게 전부였는데, 이번에는 어딜 가나 사진을 찍는 것이 메인 이벤트였다.

사실 난 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을 보면 멀뚱히 서 있는 게 포즈의 전부다. 아주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하면 손으로 브이나 하트를 그리는 정도. 사진기 앞에 서면 늘 어색했고, 나이 든 모습이 보기 싫어서 풍경만 찍은 지 오래된 터였다.

친구는 달랐다. 모델 저리 가라 하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뿐더러 나에게도 어찌나 많은 포즈를 가르치며 요구하는지, 그 열정에 따르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처음에는 얼굴에 경련이 일고, 눈동자는 갈 곳을 잃고, 팔다리는 고장 난 로봇처럼 허우적거렸다. 순전히 친구의 취향과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시작한 촬영인데, 하다 보니 재밌었다.

숙소에 들어와 그날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대개는 나의 바보스러운 포즈 때문이었다. 마치 말똥만 굴러가도 웃던 소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각도의 예술 덕에 실물보다 예쁘게 나와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진 속 나를 보고 놀랐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내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편안하면서도 천진한 얼굴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저런 얼굴을 꽁꽁 숨기고 살아왔다는 게 어쩐지 미안해질 정도로.

악행이라도 저질러라
 

무언가를 잃기보다 안전의 지루함을 택하고 사십 대에 이른 지금, 조금 더 일찍 괜한 짓도 해보고, 망가져도 보고, 나쁜 짓도 해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 문하연

 
솔직히 고백하건대, 평소의 나였다면 그런 행동을 두고 '주책맞은 아줌마들이 나이값도 못한다'며 혀를 찼을 것이다. 그런 편견의 틀을 깨는 것을 넘어 직접 경험했다는 데서 내겐 일종의 일탈이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내가 해보니 짜릿한 로맨스였다.

돌이켜보면 왜 이렇게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안 하는 게 많았나 싶다. 먹고 사느라 바빴다는 이유도 있지만,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너무 용을 쓰며 살았다. 상처 입고 손가락질받고 욕먹는 게 싫었다. 괜한 짓을 하는 것도 아까웠다.

그런 상황에 나를 던지는 게 두려워서 '적당함'에 안주하며 피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도 있는 건데, 잃는 것이 싫어서 그냥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니 협소해지고 지루해지고 굳어질 수밖에. 튀지 않고 조심조심 몸을 사리며 살아온 덕을 본 것도 있겠지만, 그동안 살아온 삶이 얼굴로 드러나는 나이에 얻은 내 표정은 무채색 그 자체였다.

"악행이라도 저질러라."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라는 책을 보다가 니체가 했다는 이 말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쁜 짓이라도 해야 그 속에서 하나라도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경험'은 여러모로 유익하기도 하거니와 결과적으로 넉넉함과 느긋함을 준다. 경험한다는 것은 불확실함 속에 나를 던지는 것이다. 경험의 위험을 택해서 무언가를 잃기보다 안전의 지루함을 택하고 사십 대에 이른 지금, 조금 더 일찍 괜한 짓도 해보고, 망가져도 보고, 나쁜 짓도 해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제대로 실패할 모험을 자발적으로 감행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실존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 <철학하는 여자가 강하다> 중에서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상처받고 욕 먹는 일도 경험하며 배웠더라면 지금보다는 즐겁고 풍요로운 중년이 됐을 텐데. 무언가를 잃더라도 30대 때 경험하며 잃어 보는 게, 40대에 겪는 것보다 리스크가 적다는 걸, 그땐 몰랐다.
     
소설가 김영하는 "나에게 여행이란 내가 없어지는 경험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 말대로라면 난 이번에 제대로 여행했다. 뒤늦은 일탈, 고작 옷 하나 바꿔 입고 장난스러운 사진을 찍은 소소한 일탈이라 해도 그것이 가져온 파장은 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다짐한 게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나는 좀 더 불량해지려 한다. 그동안 나는 너무 진지하기만 했다. 나 자신이 먼저 자유로워져야 나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의 새로운 시간이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제는 그동안 안 해 본 것들을 해보면서 지금보다 더 다채로운 삶을 발견하고 싶다.

파격적인 스타일과 포즈의 제주도 사진을 고교 동창인 친구에게 보냈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친구는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답장을 보내왔다.

"평소에도 그렇게 좀 입고 다녀. 사람이 환해 보이고 좋잖아. 그런데 그 쨍한 노란 롱스커트, 어디서 산 거래? 나도 그런 거 하나 살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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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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