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꼭지는 죄가 없다, 젖꼭지를 위한 항변

[주장] 브래지어를 안 하면 예의가 없는 것일까

등록 2019.05.23 19:48수정 2019.05.2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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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 사무실에 갈 때도, 친구를 만날 때도, 행사에 가거나 사회를 볼 때도 대부분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 여성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젖꼭지를 부끄러워하고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언젠가부터 젖꼭지가 손가락처럼 별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게 느껴졌다. 

가족들과 몇몇 지인들이 조심스럽게 "왜 브래지어를 하지 않느냐"라고 내게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왜 브래지어를 해야 하는지 되묻는다. 처음 브래지어를 하지 않을 때는 사실 별 이유가 없었는데 많은 사람은 나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마치 내가 대단한 결정을 한 것처럼 말이다.
 

광주 역사기행을 떠났을 때도 나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 ⓒ 신민주


우리는 모두 젖꼭지가 있다

가슴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젖꼭지를 가지고 있다. 저마다 크기도 모양도 다르지만 우리는 대부분 옷 속에 젖꼭지를 숨기고 살아간다. 그러나 가슴과 젖꼭지는 때로 원치 않은 고난을 겪기도 한다. 

원치 않은 고난은 가슴과 젖꼭지를 가진 사람이 여성일 때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 남성의 가슴과 젖꼭지는 공공장소에서 드러내고 보여줄 수 있지만, 여성의 경우 가슴과 젖꼭지를 공공장소에서 꺼내 보여주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다.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상의를 찢어 남들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자주 했던 남성 가수는 그 자체가 멋지고 섹시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같은 행위를 하는 여성 가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예외적인 상황에는 여성이 남들 앞에서 가슴을 보이는 것이 허용되기도 했다. 아이를 기르는 여성이 젖을 먹이기 위해 가슴을 남들 앞에서 꺼낸다면 이는 숭고한 모성애로 여겨졌다. 이때의 여성의 가슴은 다를 때의 여성의 가슴과 다르게 성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저 아이를 먹이는 아름다운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사고 될 뿐이다. 아이를 기르는 여성 당사자가 남들 앞에서 가슴을 꺼내 젖을 먹이는 것을 다소 부끄러워할 때도 오히려 그 부끄러운 감정들이 이상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나와있는 아름다운 가슴의 기준 ⓒ 국가건강정보포털

 
보건복지부가 선정한 여성의 이상적인 가슴 조건?

여성의 가슴에 대한 이런 모순적인 인식 잣대가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브래지어 착용을 권유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가슴'과 '아름다운 젖꼭지'에 대한 사회적인 잣대도 존재한다. 보건복지부가 총괄하고 있는 '국가건강정보포털'에는 구체적인 cm 와 크기까지 규정된 여성의 아름다운 가슴의 조건을 나열하고 있어 2016년에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가슴이 처지고 가슴이 처진다면 가슴은 아름다운 가슴의 범주에 멀어질 것이며,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옷을 입으면 젖꼭지가 드러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가슴이 아니라고 많은 이들이 주장한다. 수유에 도움이 되거나 운동을 할 때의 편의 등을 위해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마치 브래지어를 예쁜 가슴을 위한 도구로써 사유한다.


브래지어를 안 하면 예의가 없는 것일까

2019년 5월 22일 한 연예인이 자신의 SNS상에 브래지어를 안 한 사진을 올려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이전에도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사진을 올렸던 적이 있었던 연예인이었다. 과거 그 연예인은 "시선 강간이 싫다"라는 발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네티즌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즐거운 일상 사진을 올리는 것 자체를 '예의 없는' 일로 치부하는 댓글들도 존재했다.

그런데도 한 사람이 타인에 대해 브래지어를 했는지 안 했는지 판별하기 위해 타인의 가슴을 유심히 살펴보는 행위가 '사회적 예의'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았다. 여성의 젖꼭지는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에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사람을 비난해도 된다는 믿음, 여성의 가슴과 젖꼭지는 그 자체로 숨겨야 한다는 믿음이 사회에 팽배하다.
 

2019년 5월 22일 기준 급상승 검색어 순위. ⓒ 네이버 화면 캡처

 
여성의 몸이 끊임없이 성적 대상화되는 이 사회 속에서 우리들의 젖꼭지는 갈 곳을 잃었다. 그런데도 여성인 주제에 젖꼭지를 사회에 내놓은 예의 없는 이들의 존재 덕분에 더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게 되었다.

예의 없는 여성들의 행보를 응원하며, 젖꼭지가 해방된 사회를 바란다. 브래지어를 하는 것이 기능에 대한 선택으로 여겨지기를 바란다. 너의 젖꼭지도, 나의 젖꼭지도 애초에 죄가 없었다.
#브래지어 #탈브라 #젖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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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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