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노무현과 작별할 시간... 잘 가요, 아름다운 사람"

노무현 대통령이 떠난 10년,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등록 2019.05.23 09:07수정 2019.05.2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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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어느새 10년, 오늘 고인의 추도식이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다. ⓒ 오마이뉴스



 10년 전 그날 현장에서 사무실로 돌아온 나에게 당시 회사의 이사가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죽었단다.' 

정치적 이견으로 논쟁이 많았던 상사인지라 좀 심한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농담이라지만 심한 거 아니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 이사는 '노랑 물든 너에게 그런 농담을 하겠느냐'며 정색을 한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인터넷을 열어 보았다. 이미 주요 포털 메인에 넘쳐나는 속보와 기사들. 다리에 힘이 빠지고 그날 온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며칠 동안 낮에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지냈다. 밤에는 술을 마시고 취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달포가 지나 금요일 오후 동생에게 모처럼 전화를 했다. 대통령의 서거 이후 친인척은 물론 지인들과의 전화도 피했다. 피했다기보다는 만사가 불편하고 귀찮았다. 동생 또한 누구 못지않은 대통령을 지지했다. 동생에게 일말의 위안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으로 전화를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생의 첫인사로 시작된 간단한 통화.  "봉하마을에 다녀왔어?" 
"아니, 시간 나면 한번 같이 가자." 
"주말인데 내일 저녁 술 한잔하고 모레 아침 같이 갑시다."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서로에게 위로의 말은 무의미했으며, 동생과 난 무미건조한 통화 몇 마디로 봉하행을 결정했다. 토요일 일과를 서둘러 정리하고 동생이 사는 대전으로 향했다. 
우리는 자정 넘어 까지 소주병을 비워가며, 그날을 이야기했다. 동생은 대통령 서거 소식 문자를 받고도 믿지 않았다고 했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보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로 인식되기 시작했을 때 통곡했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숙취로 인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봉하로 향했다. 예보된 비는 쏟아지지 않았지만 하늘은 언제든 먹구름 속에 비를 퍼부을 준비가 된 듯 후덥지근하고 침침하기만 했다. 흐린 날씨만큼 봉하로 향하는 우리는 말이 없었다. 

서거하신 지 달포가 되었고 한산하리라 생각했는데 봉하는 초입부터 조문 차량과 조문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이질적인 안도감이 들었다. 차를 끌고 사저 앞 주차장까지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마을 어귀 초입에 주차하고 3km 정도를 걸어 들어갔다. 추모객들이 자필로 쓴 애절한 사연들로 넘쳐나는 노란색 리본, 절절한 애도의 현수막들. 봉하의 통곡은 계속되고 있었다. 사저 앞에 도착해 임시로 마련된 노란색 가건물 대통령 기록관에서 빼곡히 벽면을 도배한 사연들을 훑어보고 대통령 명예 회복 천만인 서명에 한 줄 보태고 난 후 혼백이 모셔진 정토원으로 향했다. 

봉화산 초입에 버티고 선 부엉이바위. 동생과 난 누가 먼저랄 것도 말할 것도 없이 부엉이바위 아래로 걸어갔다.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간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바위 아래 서서 고개를 들어 바위 위를 쳐다보았다. 난 대통령께서 바위 위에 서서 하늘을 올려보며 담배 연기 깊게 내뿜으시는 듯한 스스로의 환상에 사로잡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대통령의 눈가에 맑은 눈물이 고여 흐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에서 가장 정제된 소금기 없는 이슬 같은 슬픔이 담배 연기처럼 번지고 있었다. 

그 새벽 대통령의 눈에 들어온 하늘도 지금처럼 흐렸을까? 동생의 두 눈도 흐린 하늘처럼 뿌연 이슬을 머금고 있는 듯했다. 깊은 회한과 상념을 끌며 정토원에 올랐다. 수많은 참배객이 각자의 인사를 가슴에 품고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그 긴 행렬의 엄숙함. 부산에서, 대구에서, 광주에서, 혹은 강원도에서 수 시간을 달려와 그들이 하려고 했던 대통령과의 마지막 인사는 무엇이었을까.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당신의 국민이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마지막 인사들. 머리 깊게 숙여 절하고 있는 동생은 대통령께 어떤 인사를 올리고 있었을까? 그리고 내가 하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를 정리해야 할 긴 시간이 흘러왔다. 

벌써 10년이라는 세월, 강산도 한 번쯤은 바뀌는 시간이다. 5월 초부터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모문화제가 '새로운 노무현'이라는 주제로 전국 주요 대도시에서 거행되었고 대통령 서거일인 5월 23일 대단위의 추도식이 예정되어 있다. 

추모문화제 동안 수많은 시민의 뜨거운 추모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지역주의에 부딪히며 수 없이 좌절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강자와 기득권에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던 용기. 최고 권력의 정점에서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사람. 노무현을 수사하는 수많은 표현이 넘쳐나는 계절이다. 

그가 떠난 10년,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촛불 시민혁명으로 정권을 교체하였고 뿌리 깊은 지역주의 골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완화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시대의 변화와 흐름이 비단 노무현 한 사람으로 인해 비롯된 결과라고 말한다면 좀 과한 억측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변화의 중심엔 그가 있었고,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시민이 변화의 중심부에서 파동을 일으키면 저변으로 확장되어 온 측면도 있을 것이다. 지난 10년 그의 궤적을 꾸준히 엿볼 수 있었던 건, 그가 탐독하였던 책과 그의 사유의 단편들이었다. 내가 직감하는 노 전 대통령 사유의 종착점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10년 세월 슬픔의 노무현과 작별할 시간이다. 가장 인간적이었으며, 사람에게로 향하였던 존엄한 가치가 비참하게 훼손될 때 자신마저 내 던져 그 가치를 지켜낸 사람. 남아있는 슬픔의 당신께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잘 가요. 아름다운 사람."
#노무현 #서거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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