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처벌' 똑똑히 지켜본 숙명여고 출신 대학생들

'징역 3년 6개월' 선고된 전 교무부장... 졸업한 대학생들 재판 참관

등록 2019.05.23 13:27수정 2019.05.2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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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딸에게 시험문제와 정답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이 2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소중한

 
"화를 참을 수 없어 왔습니다."

2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514호 법정에 앳된 학생 6명이 앉아 있었다. 쌍둥이 딸에게 시험문제와 정답을 유출한 혐의(업무방해)로 구속기소 된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의 1심 재판이 열리는 곳이었다. 이들은 숙명여고에 다니던, 지금은 대학교 1학년인 학생들로 자신들이 쌍둥이 딸보다 1년 선배라고 밝혔다. 

이날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이기홍 판사)는 전 교무부장 현모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현씨는 2017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지난해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교내 정기고사 답안을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던 쌍둥이 딸에게 알려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수의를 입고 법정에 출석한 현씨는 재판부의 실형 선고에 다소 상기된 듯한 모습을 보였다. 큰 표정 변화는 없었으나 피고인석에 손을 짚은 채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변호인은 현씨의 등을 두드리며 다독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현씨는 수갑을 차기 위해 함께 왔던 교정 직원들에게 양손을 내밀었다.

방청석에 있던 학생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재판이 끝나자 짐을 챙겨 법정을 나온 이들은 "나 오늘 발표야, 오후에 수업 들어가야 돼" 등의 대화를 나누며 엘리베이터를 빠져 나왔다. 법원 건물 밖에서 이들에게 "어떤 이유로 오늘 재판을 참관했나"라고 묻자, "(현씨에게) 수업을 들었었다"라고 짧게 답했다.

기자를 상대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쭈뼛거리던 이들은 이내 "(현씨의 행위를 접하고) 참을 수가 없어 재판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가 "오늘 그래도 실형이 선고됐는데 마음이 좀 어떤가"라고 묻자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마음의 상처가 다 풀리겠나"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교육 신뢰 저하, 교사 사기도 떨어져"


이날 재판부는 현씨의 행위가 숙명여고를 넘어 전체 고등학교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이 판사는 "두 학기 이상 은밀히 이뤄진 범행으로 숙명여고 업무의 방해 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며 "대학 입시의 중요한 절차로 투명성·공정성이 요구되는 고등학교 성적 처리에 대해 다른 학교들도 의심을 받게 됐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 교육 신뢰가 저하됐고 교육 현장의 교사들의 사기도 떨어졌다"며 "그럼에도 (현씨는) 범행을 부인하며 경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증거를 인멸하려는 모습도 보여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또 이 판사는 "쌍둥이 딸이 정답을 미리 알고 이에 의존해 답안을 썼거나 최소 참고한 사정이 인정된다, 이는 피고인을 통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라며 "증거를 보면 딸들이 매번 정기고사 전에 모종의 경로로 답안을 입수했고 그것을 암기해 정기고사에 활용했으며 그 결과 성적이 향상됐다는 사실이 넉넉히 입증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고인(현씨)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출제서류를 보고 답안을 유출한 뒤 딸들에 전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며 "딸들과 공모해 범행을 했다는 사정도 추인된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 정기고사 성적의 대학 입시 비중이 커졌지만 이를 공정히 관리할 시스템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점 ▲ 쌍둥이 딸이 이 사건으로 학생으로서의 일상을 살 수 없게 돼 피고인이 가장 원치 않은 결과가 발생한 점 등을 이유로 검찰 구형(7년)보다 낮은 형을 선고했다.
#숙명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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