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양파는 생명 아니야?" 막말에 대처하는 법

[고기 없이 살고 있습니다] 채식을 망설이는 당신을 위한 조언 넷

등록 2019.06.05 09:47수정 2019.06.0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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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은 단지 동물이 불쌍해서 고기를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공장식 축산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해악에 맞서기 위한 운동이기도 합니다. 6월 5일 환경의 날, 하루 세 번 음식 앞에 설 때마다 이 땅의 무언가들을 헤아리는 채식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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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던 삼겹살, 양꼬치, 탕수육 등을 먹지 않은 지 무려 일 년이 넘었다. ⓒ pixabay


일 년이 넘었다. 채식을 결심하고, 좋아하던 삼겹살, 양꼬치, 탕수육 등을 먹지 않은 지 무려 일 년이 넘었다!!! (기사에 쓰이기에 바람직하지 않지만 느낌표를 적어도 세 개는 동원하고 싶다.) 나의 채식은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목표는 흔들리지 않았고 점점 더 강해지고 있으니 스스로가 기특할 따름이다.

행여 오해 없길 바란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는 뿌듯함일 뿐 밉살스러운 우월감은 아니다. 여기서 채식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질 생각 또한 추호도 없다.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럴 자격도 없다. 다만 채식을 생각하고 있는데 혹시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먼저 시작한 자로서 조심스럽게 조언을 건네볼까 한다. 

조언이라니, 자격 없는 나는 이미 부끄럽다. 나의 채식은 완벽하지 않았고 장기간 지속한 분들보다 아는 것이 턱없이 부족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속설에 의하면, 과외도 평생 엘리트였던 사람보다 한때 열등생이었던 사람이 더 잘 가르친다고 하지 않던가. 그 말에 살포시 기대어 본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것에 대해 선배(?) 채식인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모든 것은 순전히 나의 경험에 비추어 말하는 것뿐, 채식인 대다수의 의견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하나. 나를 과소평가하라

당신이 채식을 고민한다면, 우선 페스코(우유, 달걀, 어류 허용) 수준의 채식부터 시작하길 권하고 싶다. 처음부터 고기는 물론 해산물, 유제품, 계란 등 모든 종류의 동물성 식품을 배제하는 비건부터 시작했다가는 며칠 안 가 실패하기 십상이다. 웬만한 국물 요리에는 고기나 멸치 육수가 들어가고 계란이나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빵도 찾기 힘들다. 심지어 과일맛 젤리에도 돼지고기 성분(젤라틴)이 들어간다.

어디 그뿐이랴. 맨밥에 만만한 게 김치라고 열심히 집어먹다 보면 그 안에 들어간 젓갈이 생각날 것이다. 어쩔 수 없으니 젓갈까지만 허용하자고 생각하면 곧 다짐의 근간이 흔들릴지도 모른다. 젓갈을 허용했으니 떡볶이 속 어묵까지는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 나면, 그 옆 오징어 튀김에 손을 뻗는 것은 시간문제다(네, 제가 그랬어요).

그러니 우선은 육류만 배제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을 권한다. 물론 이제까지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어온 분들에게 하는 말이고, 평소 어지간해서는 고기를 잘 먹지 않던 분이라면 당연히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 분들은 락토 오보 베지테리안(달걀, 우유, 유제품까지 허용하는 채식)이나 바로 비건으로 직행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반대로 고기를 너무 사랑한다면, 고기 없는 삶은 상상하기만 해도 온몸에 기운이 다 빠지는 분이 있다면, 딱 한 종류의 고기를 식단에서 배제하는 방식을 추천하고 싶다. 가령, 돼지고기만은 절대로 먹지 않는 것으로 시작해 소, 닭 등으로 넓혀 가는 것이다. 

만만해 보일진 몰라도 의외로 어려울 수 있다. 삼겹살은 피하겠는데 햄 샌드위치나 짜장면을 먹으려다가 화들짝 놀랄 수도 있다. 모르긴 몰라도, 가까운 지인들 역시 전부 고기 애호가일 가망성 또한 높다. 그러니 먹지 않겠다는 결심을 이행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시기를 바란다.

단, 고기를 너무도 좋아하는 자신을, 때로 식욕이 모든 것을 압도해버리는 자신을 비관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다짐과 노력을 한 당신. 이미 근사하지 않은가.

둘. 시작한 이유를 잘 지켜라

몇 개월째 채식을 잘 해왔는데 어느 날 미친 듯이 고기가 먹고 싶어질 수도 있다. 일단은 참아보자. 어쩌면 스트레스로 인한 순간적 감정일지도 모르니까. 내일이면 생각조차 나지 않을 수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도를 닦아보는 거다.  

그러나 정 먹고 싶다면,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는 자격 미달의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 먹어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익어가는 삼겹살에서 이제까지 잘 느끼지 못했던 역겨운 냄새를 맡을지도 모른다. 끓고 있는 닭백숙을 보며 식욕보다 불쾌감이 앞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욕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히려 채식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억지로 인내하는 것보다는 더 건강하고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거듭 말하지만 나의 경험에 비춰 하는 말일 뿐, 다른 채식인의 생각은 알지 못한다.

반면, 오랜만에 먹은 고기가 너무 맛있었다면, 오직 행복하기만 했다면, 부디 처음의 결심과 이유를 다시 떠올려보시기를 바란다. 진정한 채식인이 될 때까지 다시 시작하는 거다.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셋. 즉각 대답하려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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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면 불편할수록, 채식하는 동안 섭식 이외의 것들을 느끼게 될 것이다. ⓒ unsplash


이 모든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복병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과 의도를 담은 질문들이다. 운이 나쁘다면, 은근한 조롱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의 욕구와 싸우는 것도 힘든데 이건 또 무슨 에너지 낭비란 말인가. 가령 이런 말들이다.  

"채식을 한다는 사람이 구스다운 점퍼를 입어? 웃긴다고 생각하지 않니?" 
"죄의식을 느끼면 식물은 어떻게 먹어? 양파는, 양배추는 생명 아니야?" 


슬프지만, 다 내가 들은 말들이다.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적도 있고, 너나 정의롭게 잘 살라며 되받아친 적도 있지만 어떤 것도 바람직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이제 그 자리에서는 즉답을 피하기로 했다. 그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단번에 뒤집어 엎을 촌철살인의 정답 같은 것은 내게 없기 때문이다.

대신, 천천히 말하기로 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하나씩. 내가 왜 채식을 결심했는지, 오랫동안 외면해왔지만 어떤 부분들이 견디기 힘들었는지. 분위기가 괜찮다면, 당신의 격려가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 방법 덕분에 최근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을 얻어내기도 했다. 나는 단지 나의 채식을 설명하고 싶었을 뿐 어떤 강요나 설득도 하지 않았는데, 한 친구가 문득 '고기 섭취량을 확 줄이겠다'는 다짐을 전해온 것이다. 완전히 끊는 것은 아닐지라도 반가운 일이다. 얼떨결에 동지가 생긴 나는 쾌재를 불렀다. 

이 방법도 영 먹히지 않을 때가 있다. 나의 채식에 무관심이면 그나마 고마운 일. 끝까지 부정적인 심사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곰곰이 생각해보자. 그가 나의 채식에만 딴지를 걸었는지. 우리가 관계 맺은 시간 내내, 나의 새로운 시작과 계획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깎아내리지는 않았는지. 나는 한 명의 벗을 다시 보게 됐다. 더 이상 그의 말에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넷. 시작이 반이다  

채식에 관심이 생긴다면, 그런데 선뜻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것보다 일단 한번 시작해 보시길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분명 어려울 거라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거라고 주저하지 말고, 우선은 시작해보는 거다.  

분식집에서 당당하게 햄, 계란, 어묵, 맛살을 넣지 않은 김밥을 주문해도 좋고(그럼 대체 뭘 먹을 거냐는 소리를 듣겠지만 의외로 맛있다), 도시락통을 싸서 다녀도 좋다.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채식하는 동안 섭식 이외의 것들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언제나 나를 응원할 진짜 벗을 찾을 수도 있고, 공감의 영역을 확장할 수도 있다.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육류에 거부감이 들면서도 조개는 아무렇지 않은 나를 돌아보며 공감 능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나와 관계 맺은 많은 것들을 의식하게 됐고, 나와는 다른 사람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고민한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동물권 옹호,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려는 목적인 경우도 있다. 또한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또는 건강상의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가 다르기 때문에 행동 양상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고 느낀다.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하길 거부하거나,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결코 채식만이 옳거나 절대선이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다만, 생각한 대로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지지할 뿐이다. 

채식을 고민하지만 주저하는 당신, 당신의 시작을 힘차게 응원하고 싶다. 그런데 글을 쓰며 내가 응원받는 기분이 드는 걸 보니, 채식을 고민하는 동지들의 존재가 퍽 반가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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