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은 출항의 힘을 닦는 법

[디카시로 여는 세상 시즌3 - 고향에 사는 즐거움 27] 정한용 디카시 '정박'

등록 2019.05.27 10:08수정 2019.05.2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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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 이상옥

              바람 차고 길 끊겼다
              올 수도 갈 수도 없는 절정에 서 있어도
              멈춤은 출항의 힘을 닦는 법
              내일 그대에게 직방으로
              닿겠다
                     -정한용의 디카시 <정박>
 

포토 포엠은 시가 잘 읽혀지지 않는 우리 시대에 시에 어울리는 사진을 붙여 시 감상의 효과를 꾀하기 위한 목적으로 독립적인 장르로 보기는 힘들다. 포토포엠은 사진과 시가가 각각 독립성을 지니고 있어 사진 없이도 시로서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최근 사진을 소재로 시를 쓰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  포토포엠을 번역하여 포토시라는 용어를 붙이기도 한다.


디카시는 포토포엠(포토시)과는 달리, 영상과 문자의 멀티 언어가 SNS 시대 일상어로 쓰이는 기반 위에서 영상과 문자의 멀티 언어로 표현하는 극순간의 멀티 언어 예술이다.

디카시는 실시간 SNS를 활용, 멀티 언어로 소통하는 새로운 글쓰기 환경에서 최적화된 새로운 시의 양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디카시가 순간 포착, 순간 언술, 순간 소통의 극순간 멀티 언어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디카시의 이상이고 비전이다. 

디카시에 문자 부분을 5행 이내로 제한하는 것은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했을 때 그걸 스마트폰 디카로 찍고 그 느낌이 날아가기 전에 문자로 언술하는 데 있어서 5행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5행이라는 제한은 디카시의 언술 또한 '순간성'을 강조하는 의미이다. 여러 차례 거론한 바이지만, 디카시는 시인의 상상력으로 쓰는 것이기보다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유발된 순간의 영감으로 쓰는 것이다. 디카시에서는 시인의 상상력보다는 영감을 더 중시하는 것이다.

정한용의 디카시 <정박>도 이런 디카시의 속성을 잘 드러낸다. 화자는 정박하고 있는 배의 상황을 제시하고, 그 상황을 분석하고는 내일 그대에게 직방으로 닿겠다고 말한다. "닿겠다"하는 언술로 봐서 이 디카시의 화자는 '배'로 봐도 좋겠다. 물론 시인인 화자가 자신의 처지와 같이 놓인 배를 바라보며 진술하는 것으로 봐도 좋다. 그만큼 배와 시인은 동일성을 획득하고 있다 하겠다.


절망의 절정에서, 순간 보는 희망의 길

화자는 그대에게 가야 하는데 바람이 차고 길이 끊긴 상황에서 같은 처지에 놓은 배를 바라본다. 순간 조수 현상을 떠올리며, 썰물로 인해 바닥에 놓인 배는 올 수도 갈 수도 없는 절정에 서 있지만 밀물이 몰려오면 금방이라도 출항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순간 곧바로 "올 수도 갈 수도 없는 절정에 서 있어도/ 멈춤은 출항의 힘을 닦는 법/ 내일 그대에게 직방으로/닿겠다"라고 힘차게 언술하는 것이다. 절망적 상황의 절정에서 순간 희망의 길을 보았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를 한 덩어리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디카시 #정한용 #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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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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