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신세경이다" 요즘 뜨는 촬영지라더니

[제대로 보성 둘러보기①] 강골마을부터 초암정원까지 새롭게 알게 된 보성

등록 2019.05.27 21:53수정 2019.05.28 08:03
1
원고료로 응원
5월 중순 이른 아침, 새벽을 깨우는 알람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광주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타고자 부산하게 움직였다. 보성 여행의 첫 시작을 광주 송정역에서 시작한다. 광주 송정역에서 전남 보성군 득량역으로 바로 가는 열차가 하루 3번 있다. 이번 여행은 혼행이 아니라 여러 작가들과 함께 한다.

보성 여행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내가 알고 있던 보성은 빈 강정이었고 내가 본 보성은 극히 일부였다는 사실에 심히 놀랐다.


광주 송정역에서 1시간 반쯤 달려 강골마을에 도착했다. 추억이 있는 복고거리와 근대의 옛집들이 있는 득량역을 갈 요량이었지만 일정 변경으로 득량역은 취소되고 강골마을을 시작으로 보성 여행의 첫발을 디뎠다.
  

강골마을 이용욱 가옥의 장독대 낮달맞이 꽃이 내려앉은 장독대가 화사하다. ⓒ 최정선

  
천하의 주먹, 의병장 안규홍의 정신을 잇는 강골마을

강골마을은 득량만의 온화한 품에 그대로 안겨있는 조선 후기 전통가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득량(得粮)은 임진왜란 당시 쌀을 공급받아 전쟁에서 승리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근대로 넘어 현재에 이른 득량만은 안타깝게도 일제가 쌀 증산계획으로 만든 대규모 간척지의 결과물이다. 1929년부터 1937년까지 보성 득량에서 고흥 대서까지 간척지를 만들었다.

해안을 따라 형성된 이 비옥한 옥토는 여러 섬이 있어 거센 조류를 막아주는 천혜의 항만이다. 그 예를 반증하듯, 1960년대 말 제철공업단지 선정 당시 포항과 함께 복수 후보지였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도 당시 간척 사업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바람에 흔들리는 청보리를 따라 임도로 타박타박 걸어 강골마을로 갔다. 오봉산을 바라보는 조용한 한옥촌이다. 강골을 강동(江洞)으로 부르기도 한다. 강골마을은 일본군을 맨손으로 때려잡은 담산 안규홍(澹山 安圭洪)을 비롯해 많은 의병과 항일투사를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강골마을의 이용욱(李容郁) 가옥 마을 한가운데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연못과 웅장한 솟을대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이용욱 가옥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사랑채의 앞마당이 더없이 넓게 느껴진다. ⓒ 최정선

 
강골마을은 16세기 후반 광주 이씨 일족이 모여 살기 시작한 후,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 30여 채가 뱀이 똬리를 틀 듯 앉아 있는 모습이다. 한옥들은 조선 시대 양식으로,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강골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용욱(李容郁) 가옥을 비롯해 이금재(李錦載), 이식래(李湜來) 가옥 등 3채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마을 한가운데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연못과 웅장한 솟을대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용욱 가옥이다. 1835년에 지어진 200년 된 한옥이다. 방송 촬영 차량이 대문 앞을 점령하고 있다. 처음에는 드라마 촬영으로 취재가 어려울 듯하다는 답변을 들었는데 다행히 둘러 볼 수 있었다. 십리를 넘게 달려왔는데, 헛걸음하지 않아 다행이다.
  

강골마을의 우물터 가옥 밖의 돌담 사이에 있는 우물은 여인네들의 소통구이자. 별별 이야기들이 이곳을 통해 동네로 퍼진다. ⓒ 최정선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돌담이 아름답다. 대문의 문지방을 넘기 전, 가옥 밖의 돌담 사이에 있는 우물로 갔다. 동네 사람들이 사용하던 곳이다. 우물이 그렇듯 여인네들의 소통구다. 별별 이야기들이 이곳을 통해 동네로 퍼진다.

한 발짝 이용욱 가옥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사랑채의 앞마당이 더없이 넓게 느껴졌다. 소담히 걸려있는 사랑채의 편액도 멋스럽다. 어디부터 둘러볼지 일단 스캔부터 했다. 여행은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것 같다. 내 눈에는 낮달맞이꽃이 보였다. 그렇듯 역사적 사실을 미리 탐독하지 않은 탓에 눈은 꽃을 쫓았다. 작약, 낮달맞이꽃, 바늘꽃이 반겼다.

요원한 열화정을 탐하고 싶었다!

강골마을 고택의 뒷길로 접어들었다. 투박하게 쌓은 돌담과 작은 개울을 따라가자 열화정(悅話亭)에 다다른다. 예스러운 열화정은 강골마을의 공동소유다. 좁은 돌계단을 올라 일섭문(日涉門) 앞에 섰다. 한자를 풀이하면 매일 걸어 들어가는 출입구라는 뜻이다. 작은 연못과 숲으로 싸인 요원한 정자가 배꼼 보인다. 열화정이다. 이 날은 드라마 촬영으로 요원함을 잃은 상태다.
  

보성 열화정 작은 연못과 숲으로 싸인 요원한 정자가 열화정이다. ⓒ 최정선

 
열화정은 이재 이진만(李齋 李鎭晩)이 이용욱 가옥을 짓고 10년 뒤인 1845년에 완성한 정자다.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이 마을의 우물은 아낙들의 수다장, 정자는 남정네의 회담장인 것 같다. 열화정은 '보성'의 지식이 꽃핀 장소다. 이곳에서 지역 지식인들의 열꽃 튄 토론이 발전해 이관회(李貫會)를 비롯해 이양래(李陽來), 이웅래(李雄來) 등 의병 열사를 낳았다.

이진만은 1845년 쓴 <열화정기>에 열화정의 유래를 언급했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중 '悅親戚之情話, 園日涉以成趣(친척과 즐거운 담화를 나누고, 매일 정원을 거닐며 그 정취를 음미하다)'에서 따온 것이 열화정과 일섭문이다.
  

열화정의 ㄱ자형 연못 연못은 ‘ㄱ’자형으로 열화정 따라 만들어 졌다. 연못은 열화정을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포근하게 끌어안고 있다. ⓒ 최정선

 
마당의 연못 주변에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 사이 괴이한 돌도 보인다. 수국이 막 피기 시작했다. 정자와 잘 어울리는 배롱나무도 곧 꽃망울을 터트릴 듯 부풀어 올라 있다. 정자 맞은편 마을의 안산이 있고 그 산 너머가 오봉산이다. 과거 안산에 만휴정(晩休亭)이 있었다고는 하나, 지금은 그 자취만 남아 있다.

연못은 'ㄱ'자형으로 열화정 따라 만들어졌다. 연못은 열화정을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포근하게 끌어안고 있다.

조용하던 강골마을과 열화정에 몇 번의 영화 촬영 이후, 종종 연예인들을 볼 수 있는 곳이 됐다. 우리가 갔을 땐 2019년 7월부터 방송 예정인 MBC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 촬영이 한창이었다. 사람들이 '신세경이다' 하고 소리치던데... 못 봤다. 하물며 신스틸러도 못 봤다. 한마디로 아쉽다는 이야기다.

논두렁이 보이는 마을 입구 정자에 앉아 동료들을 기다렸다. 득량만에 불어오는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이 뺨을 가볍게 친다. 환청인지 모르겠지만 파도 소리도 들린다.

민간정원이라 무시하지마라, 초암정원

초암정원으로 가는 길, 만난 비글(Beagle)을 닮은 강아지가 꼬리가 떨어질 듯 흔든다. 머리를 쓱 하고 한번 쓰다듬어 주자 쏜살같이 달려 앞장선다.
  

초암정원의 청람 김재기 어르신 할아버지 때부터 3대에 걸쳐 가꿔온 정원이란 점을 강조하셨다. 정원을 이룬 200여 종의 나무를 손수 심어 가꾼 무용담을 거침없이 말씀해 주셨다. ⓒ 최정선

 
초암정원 안내판에 이르자, 이곳 주인장께서 직접 나와 설명을 해주신다. 바로 청람 김재기 어르신이다. 어르신은 200여 종의 나무를 손수 심어 가꾼 무용담을 거침없이 말씀해 주셨다.

할아버지 때부터 3대에 걸쳐 가꿔온 정원이란 점을 강조하셨다. 더불어 낳은 정이 고마운 어머니와의 석별의 정, 키워주신 정이 고마운 새어머니에 대한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원을 가꿨다고 한다. 효가 만든 정원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예당평야와 득량만이 펼쳐진 곳에 앉은 소담한 정원이다. 정원이 위치한 초암마을은 늘 푸르른 산세에 쌓여 있어 풀음(草岩) 마을로 불렸다. 마을의 유래가 초암정원 기초가 된 듯하다.
  

초암정원의 고택 정원을 가꾸면서 보성의 명필가 송설주 선생을 비롯해 문인과 화가 등 시인 묵객들이 사랑채를 찾았다. 이렇듯 대를 이어 60년 동안 정원을 가꾸는 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 최정선

 
정원의 시작은 김재기 어르신의 조부가 선조 때부터 살아왔던 고택 주위에 나무를 심으면서 부터다.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했다. 정원을 가꾸면서 보성의 명필가 송설주 선생을 비롯해 문인과 화가 등 시인 묵객들이 사랑채를 찾았다. 이렇듯 대를 이어 60년 동안 정원을 가꾸는 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00년 된 고택을 중심으로 보성 초암산 자락에 조성된 난대정원인 초암정원. 이곳 시작은 고택의 왼쪽으로 난 야자수 길에서 시작한다. 야자수를 따라 난대수종을 만날 수 있는 '난대 전시원 1'이 펼쳐졌다. 400m 거리에 잔디가 깔려 걷는 걸음마다 편안함이 느껴졌다. 
  

인사하는 소나무 가위손이 다녀갔을 법한 소나무가 나타났다. 인사하듯 가지런한 모양의 소나무 길을 만날 수 있는 ‘난대전시관 2’다. ⓒ 최정선

 
가위손이 다녀갔을 법한 소나무가 나타났다. 인사하듯 가지런한 모양의 소나무 길을 만날 수 있는 '난대전시관 2'다. 이곳에 5대가 잠들어 있는 묘원이 있다. 주인장의 장묘문화를 바꿔 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오롯이 주인 어르신을 위한 공간이 '난대전시관 3'이다. 정성껏 가꾼 무화과와 감나무가 즐비한 곳이다. 감나무 길을 조금만 벗어나자 편백숲과 대나무숲이 펼쳐졌다. 이 숲은 강골마을까지 이어진다.
  

초암정원의 편백숲 1만 5천여㎡에 이르는 편백숲과 대나무숲이 펼쳐졌다. 이 숲은 강골마을까지 이어진다. ⓒ 최정선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편백 숲길 바로 옆은 대나무 숲. 이들이 만든 산책로는 산정까지 이른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 드넓게 펼쳐진 예당평야와 은빛의 득량만을 볼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거인의 정원>처럼 자신만의 즐기는 정원이 아니라 가족을 비롯해 보성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참된 사랑을 보여주는 정원으로 거듭난 듯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생각없이 경주> 저자입니다. 블로그 '3초일상의 나찾기'( https://blog.naver.com/bangel94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보성 #강골마을 #초암정원 #비봉공룡알화석지 #율포해수녹차센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3. 3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