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도 못한 우동 맛집, 자유여행의 묘미

[칠순여행] 교토, 오사카 2일차... 키요미즈데라, 긴카쿠지, 철학의 길

등록 2019.05.27 11:02수정 2019.05.2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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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여행 준비(http://omn.kr/1j07k)
※2편 교토/오사카 3일-1일 차(http://omn.kr/1j50s)

키요미즈데라(淸水寺, 청수사)


교토에서의 첫 번째 아침이 밝았다. 어제저녁에 사 둔 도시락으로 직접 차린 조식 뷔페로 든든하게 식사를 했다. 3일의 일정 중 가운데 날은 순수하게 여행만 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면서 짐도 숙소에 두고 다닐 수 있으니 마음도 몸도 가볍다.

숙소에서 가까운 큰길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첫날에는 기차로만 이동을 했고, 교토 안에서만 이동하는 둘째 날은 노선이 잘 계획되어 있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곧 도착한 버스에 올라 첫 여행지인 오토와산(音羽山) 중턱의 절벽에 위치한 사원, 키요미즈데라로 향했다.

절벽에 걸쳐 놓은 듯한 본당을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 본당의 마당에서 교토 시내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장관이어서 여행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방문지로 꼽히는 곳이다. 
 

키요미즈데라(청수사) 절벽위에 위치한 사원 ⓒ Pixabay

  
날 밝은 교토의 골목, 건물, 나무, 사람들을 구경하며 20분 정도를 달려 키요미즈데라 아래의 키요미즈미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사찰로 향하는 참배길을 오르는 사이에 나란히 늘어선 음식점, 공예품 가게, 기모노 대여점 등을 구경하기 바빴다. 중턱 즈음 올랐을 때 학생들이 모여 있는 가게가 눈에 띄었다.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갈까요?"

여행 중에 먹는 재미가 빠질 수 있을까? 가던 길을 멈추고 말차 아이스크림과 두부 돼지고기 만두를 먹으며 잠시 쉬어 간다. 70대, 60대 어른들도 10대 학생들도 맛있는 것을 먹는 순간의 표정에는 닮은 구석이 있다. 어쩌면, 오랜 시간 동안 자식들에게 양보해 오신 어른들에게 더 특별하고 더 즐거운 순간일지도 모른다. 별 것도 아닌, 아이스크림과 만두를 먹는 순간이라 할지라도.  


입안에 남은 달콤함을 느끼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주황색을 입힌 조형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니오몬(인왕문), 산쥬노토(삼층탑)를 보며 단청으로 장식한 한국 사찰과는 다른 매력을 느껴본다.

아쉽게도 본당은 50년 만의 지붕 교체 공사를 2017년부터 시작해서 현재는 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실 공사 중이라는 것을 알고 갔다. 공사 중이라고 해도 키요미즈데라로 오르는 길, 주변의 풍경, 그리고 지금만 볼 수 있는 공사 중인 모습도 봐 두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았다.
 

키요미즈데라 산쥬노토(삼층탑)이 보인다. ⓒ 김강민

  
멀리 공사 중인 본당이 보인다. 어차피 제대로 된 풍경을 만끽할 수 없으니 본당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비 온 다음 날의 하늘은 그림 같고 벚꽃은 눈길 닿는 곳마다 수놓고 있으니 여기에서 한 장, 저기에서 한 장, 작품이 차곡차곡 쌓였다.

*키요미즈데라 홈페이지 https://www.kiyomizudera.or.jp
 

공사 중인 키요미즈데라 본당 막으로 둘러쌓여 있다. ⓒ 김강민

  
긴카쿠지(銀閣寺, 은각사)

올랐던 길 그대로 내려가 다시 버스를 탔다. 다음 여행지는 개인적으로 교토에서 가장 좋아하는 정원이 있는 곳, 긴카쿠지다. 긴카쿠지마에(앞) 정류장까지는 버스로 15분 정도의 거리다.

그래서 같은 날 돌아보기 좋다. 원래의 이름은 히가시야마지쇼지(東山慈照寺)이며, 사원을 지은이의 외조부가 지은 금각사를 참고해서 은각사를 지었다고 한다. 이름과 달리 은각사는 진짜 은빛을 찾아볼 수는 없고 오히려 수수한 느낌의 사찰이다.
 

긴카쿠지의 정원 왼쪽의 고게쓰다이(향월대)와 오른쪽의 긴샤단(은사탄) ⓒ 김강민

  
입구에 들어서면 모래로 만든 신비로운 형태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후지산 모양의 모래 더미인 고게쓰다이(향월대, 向月台)와 매일 승려가 정성을 쏟아 결을 내고 있을 것 같은 바다 형상의 긴샤단(은사탄, 銀沙灘)이다. 수수한 정원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비해 이 두 조형물의 이미지는 간결하면서도 강렬하다. 연못 주변을 두르는 길은 산 위로 이어져 정원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갈 수 있다. 
 

긴카쿠지의 정원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다. ⓒ 김강민

  
긴카쿠지에는 어른들을 무척 감탄하게 만들었던 것이 있는데, 바로 이끼였다. 정원에 빈틈이 없어 보일 정도로 서식하고 있는 이끼는 아무 곳에서나 쉽게 자라는 것이 아닌 만큼,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이 풍경에 어른들은 수시로 눈길을 빼앗겼다.

긴카쿠지 정원이라는 작은 세계는 많은 것들을 품고 있다. 오래된 건물, 나무, 꽃, 이끼, 연못, 물고기, 모래, 길, 햇빛... 그리고 그것들은 어느 하나 거슬림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좋다. 오고 또 와도 한결같이 좋다.

점심, 오멘(おめん) 긴카쿠지 본점의 우동

사실 긴카쿠지를 둘러보기 전에 점심을 먹었다. 때가 되기도 했지만 긴카쿠지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다. 3일이라는 짧은 일정. 그 두 번째 날은 괜히 마음이 바쁘다. 한창 여행 중이니 점심은 간단히 먹기로 하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우동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우리는, 예상치도 못한 우동 맛집 오멘 긴카쿠지 본점의 문을 열었다.
 

오멘 긴카쿠지 본점의 우동 재료는 먹는 사람 기호에 맞게 섞어 먹는다. ⓒ 김강민

  
오멘의 우동은 특별했다. 따뜻한 물에 우동을 담고, 쯔유(물과 간장을 섞은 맑은 소스)는 다른 그릇에 담아 나왔다. 갖가지 야채 절임을 잘게 썰어 접시에 소복이 쌓아 나왔다. 조린 우엉은 따로 담겨 있었다. 덴푸라(튀김)도 우동 위에 얹지 않고 별도의 접시에 담아 준다. 재료를 조합하는 것은 먹는 사람에게 맡긴다.

간단히 우동 한 그릇 먹으러 들어왔다가 낯설면서도 먹기 전부터 시각적이고 심리적인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상차림에 또 한 번 먹는 즐거움은 시작되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만족도는 측정할 수 없을 더해졌다.

우연히 찾게 되는 맛집. 자유 여행으로 느낄 수 있는 맛이다. 정오를 30분쯤 넘겨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대기 중인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런 집을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자리를 잡았었다. 욕심부리지 않아 받은 상일까?(오멘 홈페이지 http://www.omen.co.jp/menu.html)
 

오멘 긴카쿠지 본점 대기 중인 사람들 ⓒ 김강민

 
테츠가쿠노 미치(哲学の道, 철학의 길)

긴카쿠지의 참배길 아래에는 교토의 산책 명소인 철학의 길이 있다. 예전에 유명한 철학가가 산책을 즐겼다고 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일본 벚꽃을 즐길 수 있었다. 실개천을 따라 양쪽에 산책로가 있고, 이 길의 위에는 파라솔을 받쳐 들고 있는 것처럼 벚꽃이 드리워져 있다.
 

철학의 길 교토의 산책 명소 ⓒ 김강민

  
4월 중순. 슬슬 벚꽃이 지고 있는 이곳에 바람이 분다. 바람을 맞은 벚꽃이 날린다. 눈처럼 벚꽃이 내려 쌓인다. 그 길을 걸었다. 참 좋다. 참 좋아.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는 건 한참을 걷다 알게 되었다. 그만큼 좋고 참 좋았다. 태어나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꽃이, 냇물이, 잉어가 참 반갑다. 장소가 선사하는 특별함이라는 것일까. 이런 길을 매일 아침 걷는다면 누구든 철학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철학의 길의 벚꽃 교토의 산책 명소 ⓒ 김강민

  
가족들이 생각보다 잘 따라와 준 덕분에 생각보다 일정에 여유가 생겼다. 무리하게 서둘러 다니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남았으니 한 군데 더 구경하기로 했다. 교토의 또 다른 산책 명소인 아라시야마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다음 이야기 : 여행 2일 차의 아라시야마, 야키토리 전문점 카미나리
#교토 #키요미즈데라 #긴카쿠지 #아라시야마 #철학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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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업을 개발하는 직장인 ●작가, 시민 기자, 기업 웹진 필진 ●음악 프로듀서 ●국비 유학으로 동경대학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공학박사 ●동경대학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쿄대 스토리"의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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