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두 늙은 여자, 그들이 살기위해 한 일

알래스카 인디언들이 들려주는 생존 이야기 '두 늙은 여자'

등록 2019.05.28 11:59수정 2019.05.2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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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해째 책모임을 하고 있다. 5월에 읽은 두 번째 책은 <두 늙은 여자>이다. 알래스카 인디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추위와 식량난 때문에 같은 부족으로부터 버려진 두 늙은 여인의 생존기이다. 젊은 사람들의 도움 없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기보다는 '뭔가 해보고 죽자'를 택한 늙은 여인들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이 두 늙은 여자에게는 당시 사람들과는 좀 다른 특이하게 여겨지는 성격적 결함이 이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쑤신다고 불평을 해댔고, 자신들이 늙고 약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언제나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과시용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두 여인, 칙디야크와 사는 결국 다음 야영지로 출발하지 못하고 남겨진다.
 
'전날 밤 야영지에 지팡이를 두고 오기 전까지 얼마나 지팡이에 의존했는지를 생각하자 그녀의 입가엔 슬며시 웃음이 떠올랐다. ...중략... 그들은 자신들이 여러 해 동안 보행에 도움을 받기 위해 그 지팡이들을 줄곧 갖고 다녔다는 것, 그리고 무슨 일인지 이제는 지팡이 없이도 여러 마일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두고 웃음을 터뜨릴 수 있을 터였다.'
 
두 늙은 여자들은 지팡이를 버렸다. 그녀들은 지팡이를 버리는 순간 깨달았다. 지팡이가 없어도 걸을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여전히 여러 가지 일들을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인디언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 이봄

 
책을 읽고 난 뒤 책모임에서 각자의 '버려야 할 지팡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무엇을 시도하든 항상 발목을 잡는 건 돈이었어요."
"제 지팡이는 시간이었어요."
"버려야 할 지팡이는 돈과 시간으로 포장한 소심함, 자신감의 부재였어요."


우리가 버려야 할 지팡이는 여러 가지였다. 돈, 시간, 의지, 소심함 등등. 모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책모임이 끝난 후에도 하루 종일, 잠자리에 들어서도 '지팡이'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과거의 지팡이, 현재의 지팡이, 미래의 지팡이는 무엇인지.

지팡이의 사전적 의미는 '걸을 때나 서 있을 때 몸을 의지하기 위하여 짚는 막대기'이다. 지팡이를 사용함으로써 혼자서 걷거나 서 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의지'라는 단어에 자꾸 눈길이 간다. 다시 '의지'를 검색해 본다. '어떤 일을 이루려는 적극적인 마음'이란 의미와 '어떤 대상에 마음을 붙여 도움을 받음, 어떤 물건에 몸을 기대어 지탱함'이란 의미가 있다.

도움을 받음과 기대어 지탱함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내 적극적인 마음은 이것들을 누르고 있는지 아니면 눌리고 있는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5학년 아들에게 물어 보았다.

"너의 의지를 꺾는 지팡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해?"


아이는 3초쯤 생각하더니 아래와 같은 답을 주었다.

"값비싼 미술 도구인 거 같아. 4학년 때는 도구가 없어서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5학년 때 의진이와 연습을 많이 해서 지금은 잘 그릴 수 있어. 전문가용 도구는 없어도 돼."

이 대답을 듣는 순간 셀 수 없이 많은 내 지팡이들이 한꺼번에 내 머리를 때리는 것 같았다. 어디에서든 무엇을 하든 항상 내가 지니고 있던 지팡이는 핑계였다.

음식을 할 때마다 필요한 주방 가전, 조리도구.
글을 쓸 때 필요한 태블릿 PC.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필요한 옷, 가방, 신발.
이런 것들을 구입할 돈.
어떤 일을 하던지 매 순간 부족한 시간.

내 과거의 지팡이들을 버렸다. 내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칙디야크와 사처럼 지팡이를 버려도 아무렇지도 않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발목을 잡는 나이. 현재 나에게 남아 있는 지팡이이다. 버리지 않는다면 미래의 지팡이도 될 수 있다.
 
'삶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 할 바를 성취하는 데에는 사회에서 평가하는 능력이나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중략... 마흔 개의 여름이 어떻게 여든 개의 여름을 이기겠는가. 마흔 살에게 마흔 한 번째 봄은 미지의 시간이지만 여든 살에게는 무엇으로도 쓸 수 있는 단단한 기억인 것을.'
 
생각을 바꿔 보면 나이는 이렇게 멋진 것이다. 한 살 한 살 늘어갈수록 나는 늙고 있는 게 아니라 단단해져 가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나의 삶의 절정을 위해 마흔 세 번째 봄이 지나가고 있다.
#두 늙은 여자 #나이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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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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