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간택받으려고' 이렇게까지... 고등학교서 벌어진 일들

[아이들은 나의 스승 162] 학벌주의 조장하는 대학 탐방 프로그램 폐지해야

등록 2019.05.28 20:37수정 2019.05.2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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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휴게소에서 서울 소재 '명문대' 탐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고등학생들을 만났다. 지방의 한 인문계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아이들이 1박 2일 일정으로 진로탐색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지인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라 반가운 마음에 부러 몇몇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 보았다. 

"몇 학년이니?" 
"1, 2학년 전체에서 성적에 따라 선발된 학생들이에요." 


그저 몇 학년이냐고 물었을 뿐인데 한 아이가 '성적에 따라 선발됐다'는 걸 으스대며 대답했다. 낯선 이의 느닷없는 질문에 쭈뼛거릴 만도 한데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한껏 들뜬 목소리였다. 공부를 못하면 애초 참가할 수 없다는 걸 나름대로 자랑하고 싶었던 듯하다

"서울과 수도권에 위치한 학교가 진짜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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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정문대학 탐방은 언제부턴가 대부분 지방 소재 인문계고등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진로탐색활동이다. 지방의 고등학생들이 서울의 내로라는 명문대 캠퍼스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학습 동기가 부여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 연합뉴스

 
이름하여 대학 탐방. 언제부턴가 대부분 지방 소재 인문계고등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진로탐색활동이다. 지방의 고등학생들이 서울의 내로라하는 '명문대' 캠퍼스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학습 동기가 부여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더러 해당 대학 홍보처에서 직원이 나와 안내하기도 하지만, 대개 동문 선배가 후배들을 챙기는 것이 보통이다. 또 가까운 수도권이 아닌 다음에야 당일치기인 경우가 거의 없어 게스트하우스나 대학 기숙사 등을 빌려 숙박을 하게 된다. 어떻든 소수만 참여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상경하고 귀성하는 시간을 빼면 서울에서 둘러볼 수 있는 대학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사실상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비롯한 대학 두세 곳이 전부다. 교통 체증이 일상인 서울에서 한 대학에서 머무는 시간은 기껏해야 한두 시간에 불과하다. 그저 '관광지 투어'하듯 둘러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들 대학이 지방의 아이들을 배려해 초청한 건 아니다. 안내 등 대학 측의 도움을 받으려면 최소한 몇 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하고, 그나마 그들이 가능한 시간에 맞춰 고등학교가 학사일정을 조정해야 한다. 철저히 대학이 '갑'이고 지방의 고등학교가 '을'이다. 

참고로 지방 소재 대학의 경우엔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뀐다. 알다시피 거점 국립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 소재 대학들의 경우 모집 정원조차 채우지 못한 학과가 부지기수다. 지방대 교수들은 입시철이면 '모객'을 위해 고등학교 3학년 교무실을 전전하는 '영업사원'이 된다. 

얼마 못 가 지방대의 상당수가 문을 닫게 되리라는 걸 아이들이 모를 리 없다. 지금의 아이들은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학교가 '진짜 대학'이라 여긴다. 명문대는 'SKY'를 말하고, '과 잠바(대학 로고가 적힌 점퍼)를 입고 다닐 수 있는' 대학은 서울 소재 상위 10개 대학 정도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진로탐색활동의 일환이라지만, 단언하건대 대학 탐방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대놓고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반교육적인 활동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골라 무작정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가라며 등 떠미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나고 자란 고향에 머물며 헌신하도록 이끌기는커녕 어떻게든 고향을 등지라고 가르치는 게 과연 온당한가.
 

2014년 12월 전남 목포의 한 고등학교에 걸린 '특정학교 합격 현수막'이다. 현수막에는 "서울대 5명!! 일반고 전남최다 합격!"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소중한

 
그렇게 서울로 떠난 지방의 인재들은 선거에 출마하거나 은퇴 후가 아니면 결코 고향을 향해 눈길을 주지 않는다. 명문대에 합격이라도 하면 교문과 마을 어귀에는 학교와 고향을 빛낸 얼굴이라며 경축 현수막을 내걸린다. 그러나 그들은 현수막이 걸리는 순간부터 이미 고향을 떠난 '서울 사람'이다. '과잠을 입어보는 게 소원'이라는 수많은 지방의 인문계고등학교 아이들은 '잠재적 서울시민'이다. 

학벌주의의 폐해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교사가 진로탐색활동이라는 사탕발림으로 미래세대 아이들을 학벌구조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모습 같아 참담하다. 학생 수가 크게 줄었어도 대학입시 경쟁이 여전히 치열한 데에는 교사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 대학 탐방은 지방의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자신의 자존감에 생채기를 내는 자해 행위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등학교 교사가 중학교 교사나 초등학교 교사를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따라 지도하는 동등한 교육자로 대하듯 대학교수 역시 다를 바 없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더 큰 배움을 위해 진학한 학생들을 지도하는 소임일 뿐이다. 그런데 학벌주의에 경도된 고등학교 교사들은 명문대를 마치 신전인 양 떠받들며 교수들에게 아이들을 받아달라고 읍소하는 꼴이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의 모든 교육과정이 대학의 입맛에 맞게 짜이게 된다. 거칠게 말해 서울대에서 필요하다면 없던 과목도 개설되고, 수능과목이 아니면 교육과정에 엄연히 등재된 과목도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다. 창의적 인재를 육성한다며 문·이과를 통합하면 뭐하나. 대부분 학교가 수능 응시 과목별로 학급을 편성하여 버젓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갑'인 대학의 간택을 받기 위해 교육과정과 지침조차 무시하고 온갖 편법과 불법이 판치는 곳이라면 더는 학교라 부를 수 없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아이를 명문대에 보낸다고 한들 그들이 온전한 시민으로 성장할 리 만무하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걸 몸으로 터득한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이 멀쩡할 리 없지 않은가. 

대학 탐방 프로그램이 지닌 더욱 큰 문제는 명백한 특혜라는 점이다. '될성부른 나무'만 골라 가는 것도 그렇지만, 상당수의 학교가 탐방 비용을 학교발전기금 등에서 지원하고 있다. 학교 측에선 연간 학사일정에 포함되어 있는 데다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와 자문을 거쳐서 규정상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적을 기준으로 소수만 뽑아 혜택을 몰아주는 행태를 두고 규정을 운운하는 건 뻔뻔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과거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을 따로 뽑아 '특별반'을 별도로 운영하던 시절이 있었다. 냉난방 시설부터 최신 책걸상까지 납부금은 같아도 성적에 따라 처우가 달랐다. 

당시 학생회에서 이를 문제 삼자 '특별반' 운영을 찬성하던 한 교사는 "민주주의는 합리적 차별"이라고 말했다. 물론 성적을 기준 삼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냐는 한 아이의 질문에 그는 대충 얼버무린 채 서둘러 자리를 떴지만. 그 어떤 것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학생과 학습 동기 부여를 위해 차별이 불가피하다는 교사와의 언쟁이었지만, 당시 아이들의 주장은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특권과 반칙이 횡행하는 학교, 지금부터라도 변해야 

오랫동안 특혜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자기가 받은 대우를 특혜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특혜를 당연한 권리처럼 여기고, 외려 특혜가 주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발끈하기 일쑤다. 다양한 교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공부를 잘해서 특혜를 누리는 게 잘못된 건가요? 아니꼬우면 공부 잘하면 될 것 아니겠어요.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전해주세요." 

얼마 전 한 아이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수업시간 성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장학금을 독식하는 건 옳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대뜸 이렇게 반문했다. 어차피 성적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상금을 준 것이 대체 뭐가 문제냐는 투였다. 

특권과 반칙이 횡행하는 현실은 일찌감치 학교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고등학교 땐 산출 등급으로 구분 짓고,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명문대와 지잡대로 나누고, 졸업 후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아이들 스스로 갈라치는 현실 앞에 교사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누구 말마따나 생각하는 대로 사는 교사는 보이지 않고 사는 대로 생각하는 교사들만 넘쳐난다. 

인문계고등학교의 대학 탐방 프로그램은 '남들 다 하니 따라 하는' 관행이 되어 소수 아이의 특권 의식을 부추기고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 소수의 특권 의식과 다수의 무력감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 시대의 화두인 '적폐 청산' 움직임에 학교라고 예외일 순 없다.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이라면 당장 폐지되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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