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귀한 전통 사라질까봐..." 사명감으로 택한 길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 국악인 유창 인터뷰 ①

등록 2019.05.30 14:31수정 2019.06.1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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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600여 년 동안 문화의 역사를 일궈온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는 종로에서 나고 자라며 예술을 펼쳐왔거나, 종로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 시대의 예술인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송서·율창의 명맥을 잇고 있는 국악인 유창 ⓒ 송서율창보존회


옛 선비들이 한자를 공부할 때 글귀에 가락을 붙여 읊조리던 것에서 유래된 송서·율창은 조선시대 선비문화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낭독의 예술'이라 할 만하다. 한자사용 비율 감소 추세와 전수의 어려움 때문에 사장(死藏) 위기에 처한 전통예술을 현대에 되살린 이가 바로 유창 명창이다.

2009년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율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은 이래, 소리의 전수와 대중화에 힘써온 유 명창을 지난 4월 26일 송서율창보존회 전수관에서 만났다.

조선판 낭독의 예술

'송서'(誦書)는 산문으로 된 고전을, '율창'(律唱)은 오언율시나 칠언율시의 한시를 노래조로 읊는 것을 일컫는다. 송서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때 책을 덮거나 등지고 앉은 채로 줄줄 외우는 '배강'(背講)이란 과목으로 채택된 까닭에 성균관과 향교, 서당 등 모든 교육기관에서 중시되었다. 청운의 꿈을 가슴에 품은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 끊이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송서와 율창은 단순 암기식의 낭송이 아니라, 음악성을 가미한 예술로 승화되면서 1940~50년대까지 식자층에게 널리 향유되었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어려운 고전과 시를 모조리 외워야 할 뿐만 아니라, 악기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목소리로만 승부해야 한다는 점에서 배우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중도에 배움을 포기하는 이도 속출했다.

유창 명창도 처음부터 송서·율창을 하리라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초 박태여, 황영주, 이은주 선생으로부터 경기소리를 배웠던 그는 1992년 묵계월 명창을 만나 송서·율창의 세계에 눈뜨게 된다. 묵 명창은 송서의 전성기를 주도했던 이문원 명창에게서 유일하게 '삼설기'를 전수받은 만큼 최고의 스승이라 할 수 있었다.

"묵계월 선생님께서 발표회 때 '삼설기'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제대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께서도 그간 여자 제자는 많이 키우셨지만, 남자 제자가 하나도 없어 고심 중이셨다고 하시더군요. 마침 제가 배우고 싶다고 하니 크게 기뻐하셨어요."

경기민요와 판소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인기종목이었던 송서·율창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 것은 사명감과 책임의식 때문이었다.

"제가 아니더라도 경기 소리를 하는 사람은 많잖아요. 그렇지만 만약에 제가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이 중요한 전통예술의 명맥이 끊겨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컸어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묵 선생은 그의 깊은 뜻을 읽고, 온 정성을 다해 그를 가르쳤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제 간의 두터운 정이 싹텄다.

"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선생님을 찾아가 공부를 했어요.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다해야만 선생님 소리의 정수를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죠. 지도하실 때는 상당히 엄격하신 분이지만, 평상시에는 따뜻한 어머니 같은 분이셨어요. 직접 밥도 해주시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죠. 가족 이상의 관계나 마찬가지였다고 해야겠죠. 늘 선생님의 곁에 가 있다 보니까 어머니께 자주 못 찾아뵙는 게 죄송스럽다고 말씀드렸을 정도였으니까요. 비록 고인이 되셨지만, 제 머릿속에는 항상 선생님이 계세요. 선생님과 같이 갔던 곳에 갈 때면, 선생님 생각이 제일 먼저 납니다."

어렵게 이어왔지만 후학 양성 고민
 

돈화문국악당 개관 전 공연축제 ‘프리&프리’ ⓒ 송서율창보존회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공부에 전념한 덕분에 독보적인 위치에 설 수 있었지만, 시대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까닭에 후학 양성에 대한 고민이 큰 것도 사실이다.

"제가 배울 때만 해도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했는데, 아무래도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그 간절함이 없죠. 그렇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것들 배우고 시도해볼 수 있으니, 너무 한 군데에만 집중하면 또래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아요. 시대가 변하면서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하겠죠. 그래도 꾸준히 후학 양성에 힘쓰다 보면, 제 뒤를 이을 사람이 나타나겠죠."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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