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에 그 많던 목장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강화도 진강목장과 벌대총에 담긴 북벌(北伐)의 꿈

등록 2019.05.30 15:12수정 2019.05.3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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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를 앞둔 이 맘 때의 강화도는 또 다른 바다다. 봄물을 실은 들판은 바다인 양 늠실거린다. 왜가리 몇 마리가 고개를 쳐 박고 논바닥을 훑어댄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백 년 전의 강화도는 어땠을까. 그때도 모내기를 앞둔 논에는 물이 가득 했을 것이고 왜가리며 백로들은 논바닥을 훑으며 미꾸라지를 잡았을 것이다. 그때의 풍경을 강화 두두미마을에 살던 한 선비는 이렇게 그렸다.
 
鎭江山色碧如屛     진강산 산색은 푸른 병풍을 친 듯 하고
片片歸雲錦繡形     흐르는 조각구름 비단에 수놓은 듯하다
首智遺墟可處是     수지현 옛 터는 어디쯤에 있을까
造翁筆下影丹靑     조물주의 붓끝 아래 단청이 그려졌네
- 고재형(1846~1916) <심도기행>
 

양도면사무소 뒤로 진강산이 푸른 신빛을 뽐내고 있다. ⓒ 이승숙

   
진강산은 강화도 양도면과 불은면을 아우르고 있는 산으로 강화에서는 마니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이 산의 남쪽에는 조선시대 군마(軍馬)들을 키우는 '진강목장'이 있었다. 그래서 산 아래 마을에는 목장과 연관된 지명들이 지금도 더러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말은 가장 빠른 이동수단일 뿐만 아니라 나라 사이의 교역에서도 이용되었다. 또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했다. 국가를 적으로부터 방어하려면 국방에 충실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의 원활한 공급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마장(馬場)을 특별 관리했다. 말하자면 말 목장은 나라의 기간산업이자 군수산업이었던 것이다.

말 목장은 대부분 섬이나 바닷가의 툭 튀어나온 곶(串)에 위치했다. 섬은 사방이 바다여서 말이 도망치기 힘들고, 외부에서 맹수나 도적의 침입이 어렵다. 또 섬은 육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어 목장에서 키우는 말이 농경지를 침범해 농사를 망치는 피해도 줄일 수 있었다.

군마(軍馬)를 키우던 강화 진강목장 

강화도는 도성인 한양에서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이 하나 더 있었다. 목장에서 키운 말은 육지로 옮겨져 왕실이나 관청에 공급되고 또 중국에 조공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목장이 육지에서 많이 떨어진 섬에 있으면 말을 이동 시키는데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강화의 경우 물길과 육로를 이용해 하루 해 안에 도성에 당도할 수 있었으니 목장지로는 최적지였던 것이다.
  

벌대총의 말발굽 전설이 내려오는 진강산의 너럭바위. ⓒ 이승숙

  
그래서 조정에서는 강화도에 9군데의 목장을 두고 군마를 키웠다. 1820년 무렵에 제작된 '강화부 목장지도'를 보면 당시 강화부 관내에는 진강, 북일, 매음도, 주문도, 장봉도, 신도, 거을도, 볼음도, 미법도 등지에 목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진강목장은 강화군 양도면 일대이고 북일목장은 화도면 내리, 매음도는 지금의 석모도를 말한다. 장봉도, 신도, 거음도 등은 지금은 옹진군에 속해 있지만 당시에는 강화부 소속이었다.

이중 진강목장은 1500여 필의 말을 사육했다. 규모에 있어서는 제주도 다음 가는 목장으로, 우수한 군마(軍馬)를 공급하던 곳이었다. 특히 효종 때 북벌 계획의 일환으로 우량 마종을 방목하고 전마(戰馬) 확보에 힘을 기울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진강목장은 준마가 많다고 일컬으니, 효묘(孝墓)께서 설립하신 뜻이 진실로 우연하지 아니하다"(숙종실록 15권)라고 기록돼 있다.

진강목장에는 이름난 명마가 한 마리 있었다. 효종은 이 말을 특별히 사랑해서 '벌대총(伐大騘)'이란 이름을 지어 주고 관리에 만전을 기하도록 엄명했다. '벌대총'은 '청나라를 칠 말'이란 뜻으로 효종의 북벌 의지를 담은 명마였다.

북벌을 꿈 꿨던 효종 임금

조선의 17대 왕인 효종은 인조 임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왕자 시절 '봉림대군'이라 불린 효종은 왕비의 몸에서 태어난 적실 왕자였지만 위로 형님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 왕위에 오를 가능성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형님인 '소현세자'가 병사한 후에 둘째 왕자였던 '봉림대군', 즉 효종이 왕이 됐다.
 

벌대총의 발굽 자국이란 전설이 내려오는 진강산 너럭바위의 홈. ⓒ 이승숙

  
병자호란 때 조선을 침략한 청군은 봉림대군을 비롯해서 많은 수의 양민들을 볼모로 잡아갔다. 왕자 시절에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서 8년 동안이나 고초를 겪었던 효종은 그 치욕을 잊지 않았다. 왕이 된 그는 조심스레 북벌의 꿈을 키웠다. 진강목장에서 군마들을 키웠던 데는 이런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진강산을 오르노라면 꼭대기 근처에 커다란 너럭바위가 하나 있다. 그 바위 가운데에 어른 주먹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정도 크기의 홈이 하나 파여 있는데 옛 사람들은 이 홈을 효종 임금이 아꼈던 벌대총의 말발굽 흔적이라고 봤다. 벌대총을 하늘이 내린 말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북벌의 계획을 세웠던 효종의 비원(悲願)은 조선 백성들의 염원이기도 했으리라. 청나라에 복수를 하고 싶었던 옛 사람들의 비원이 진강산 너럭바위에도 서려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진강산 너럭바위에 있는 홈을 벌대총의 발굽 흔적이라 여겼다. 벌대총을 하늘이 내린 천마라고 생각하며 북벌을 꿈꿨던 효종과 그가 아꼈던 벌대총을 기렸던 것이다.

벌대총의 전설

벌대총은 바람처럼 빨리 달렸다. 온 몸의 털색이 하얀 백마였지만 갈기와 꼬리는 푸르스름한 색을 띠고 있었다. 벌대총은 왕의 행차를 돕고 강화로 돌아오다가 양천(현 서울 양천구) 범머리에서 그만 죽고 말았다. 왕이 워낙 아끼던 말이 죽었으니 관원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효종이 아꼈던 말인 벌대총을 그린 벽화. ⓒ 이승숙

   
난감해진 양천 원님은 이 사실을 어떻게 효종에게 알려야 할지 고심하면서 며칠을 보냈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대궐로 들어가 임금을 알현하고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벌대총이 누운 지 사흘, 눈을 감은 지도 사흘이며, 먹지 않은지가 사흘입니다" 하고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효종이 놀라 묻기를 "벌대총이 죽었다는 말이냐? 아, 벌대총을 타고 청나라를 치려는 나의 뜻을 하늘이 버리시는구나"라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후로 '양천 원님 죽은 말 지키듯 한다'는 말이 생겼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고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 형편일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민생을 위해 말 목장들은 차차 줄어들고 폐지됐다. 농지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더 우세해졌기 때문이다. 강화도의 목장들도 축소하고 혁파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졌다. 숙종 34년(1708) 강화유수 박권은 숙종에게 진강목장의 폐지를 요청하며 다음과 같이 이유를 설명한다.

호국(護國)의 뜻은 여전하다
 

강화군 양도면의 상징인 '벌대총'. ⓒ 이승숙

  
'진강의 목장이 섬사람들의 해가 되고 있습니다. 곡식이 여물 때는 마을 사람들이 말을 몰아내기 위해 밤마다 떠들고... (중략) 수확 후 저장하지 못한 곡식은 말 떼가 지나면 죄다 없어지고 남은 것이 없어 백성이 원망하고 있습니다.' (숙종실록 34년 12월 3일)
 
진강목장은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졌다. 하지만 부국강병의 기상은 지금도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 군마들을 조련하고 키웠던 진강목장은 지금 또 다른 호국의 간성(干城)들을 키우고 조련하는 터가 됐다.

진강산의 남쪽 골짜기에 포병부대가 있다. 과거의 군마가 현재의 포병으로 치환돼 양성되고 있다. 그 옛날 벌대총이 흰 갈기를 휘날리며 달렸던 진강목장에서 지금 푸른 옷의 군인들이 강병으로 훈련받고 있다. 북벌의 꿈을 담은 진강목장은 평화와 통일을 꿈꾸며 그 기상을 이어가고 있다.   
#강화도 #강화나들길 #진강산 #진강목장 #벌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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