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촛불 승리' '자유한국당 패배'가 교차한 5월 25일

실패한 적폐의 촛불광장 ‘점령 시도’

검토 완료

박명훈(haemil808)등록 2019.05.28 18:31
5월 25일 오후 5시 즈음, 광화문광장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두르는 이른바 '태극기부대'가 계단 위에 나란히 둘러앉아 지나가는 시민들을 감시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한애국당이 지난 5월 10일부터 광화문 세월호광장 근처에 불법 천막 농성장을 세우면서 이곳의 풍경은 크게 바뀌었다.
 
대규모 촛불집회가 세월호광장, 중앙광장, 북광장 등 광화문광장 모든 구역에서 열렸던 이전과는 풍경이 사뭇 달랐다. 대한애국당의 천막이 시민들의 자유로운 통행을 직접 방해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차양막을 친 것도 모자라 아예 온수기까지 들여 취사를 하며 '뻗대기'에 돌입했다. 광화문광장의 허리를 뚝 끊어놓은 것이다. 세월호 기억공간을 지키는 청년들과 4.16연대 회원들을 겁박하는 적폐무리의 준동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지 오래다.
 
"어떻게 감히 이럴 수가..."
 
게다가 이날 하필이면 자유한국당은 근처에서 6번째 장외집회를 열었다. 집회의 시작은 6시 30분으로 잡혀 있었지만 그 이전부터 자한당의 무대에서 뿜어 나오는 무지막지한 음악소리가 촛불광장을 휘몰아쳤다. 자유한국당의 맞불집회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자유한국당 해산" 촛불을 겨눈 맞불집회였다. 지하 깊숙한 광화문 역사 내부에서도 쩌렁쩌렁 들릴 만큼 고막을 내리꽂는 엄청난 소음이었다. 명백히 의도적이었다.
 
더욱이 경찰이 '보호 명목'으로 중앙광장을 철제 울타리로 빙 둘러싸면서 시민들의 접근이 어려웠다. 촛불혁명을 부정하는 불법 천막은 "어쩔 수 없다"며 본 체 만 체한 경찰은 촛불 시민들을 가둬 '관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상황 속, 촛불집회의 주 무대인 광화문 중앙광장은 하루 종일 촛불집회를 대놓고 방해하는 자유한국당과 대한애국당의 도발위협에 둘러싸여 있었다. '두 공당'의 국민을 적으로 삼는 심각한 적대행위는 듣도 보도 못했다. 가히 자유한국당과 대한애국당이 합작해 만들어낸 "최악의 조건"이라 할만 했다.
 
"어수선하지만 집중해서 잘 해봅시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밝힌 촛불광장은 활기찼다. 이날 4.16연대,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는 광화문 중앙광장에서 적폐청산 시민참여무대를 열었다. 곁들어진 다채로운 행사와 결의들은 적폐세력의 망동을 걷어내기에 충분했다.
 
"가장 열 받는 망언에 쓰레기를 버려주세요."
 
현장에는 황교안 자한당 대표의 얼굴사진을 붙인 '망언판'이 설치됐다. 망언판 아래로 쓰레기봉투가 놓여 쓰레기를 버릴 수 있도록 했다. "독재 세력들이 든 독재 촛불에 맞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횃불을 높이 들자" 황교안은 실제로 위와 같이 말했다. 촛불을 든 국민을 싸잡아서 적으로 규정한 자한당의 대국민선전포고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발걸음을 우뚝 멈췄고 쓰레기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특히 대학생들의 무대장악력은 대단했다. 적폐청산 의지를 듬뿍 담은 재기발랄한 노랫말은 끊임없는 소음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단숨에 확 뒤집었다.
 
"만백성에게 고하노니 적폐청산 할지어다. 쉬었다 가면 적폐들은 더 난리치며 살 것이오. 세월호 진실 방해하고 역사 왜곡 도를 지나치네. 화-나 화-나"
-대학생들이 꾸린 <저세상텐션>밴드의 '사미인곡' 노랫말 중에서
 
이렇듯 촛불 시민들은 적폐무리의 방해를 아랑곳 않고 한 마음 한 뜻으로 행사를 의미 있게 펼쳐냈다. 자한당이 뿜어내는 온갖 소음에 찌푸린 표정을 웃음과 환희로 바꿔낸 젊은 청춘들의 활약이란 정말이지 찬란히 빛났다.
 
전국에서 모여든 노란버스…4.16세대들
 
발언과 노랫소리가 이어질라치면 노골적으로 스피커를 크게 틀어 방해하는 '시시때때 방해공작'도 촛불무대의 열기를 뚫어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날이 어둑해질수록 사람들은 광장으로 모여 열기를 더했다,
 
"친일후예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앞무대에 바로 뒤이어 촛불 시민들은 오후 6시부터 위 구호를 기치로 <적폐청산! 민주수호! 5.25 범국민 촛불문화제(이하 범국민 촛불문화제)>도 기운차게 열어젖혔다. 이날 촛불광장을 수놓은 것은 단연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약속하는 '노란색'이었다.
 
"자유한국당 없는 깨끗한 지구"라는 선명한 구호를 내걸며 전국 각 지역에서 모여든 <노란버스>도 촛불집회에 힘을 더했다. 대전, 대구, 부산, 춘천 등 곳곳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결합했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자유한국당 해산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열의가 두드러졌다.
 
"우리의 목표는 세월호참사 책임자 처벌입니다. 확실한 진상규명 방해 세력인 박근혜 자한당과 그 우두머리 격인 자한당의 황교안을 처벌해야 합니다."
 
처음 무대에 오른 장훈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의 호소는 절박했다. 자유한국당이 스피커 음량을 뚫기 위해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말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뒤편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한당의 방해는 그만큼 집요했지만, 참가자들의 의지는 그를 훨씬 뛰어넘었다.
 
뒤를 이어 발언한 참가자 모두 세월호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4.16세대'들이었다. 이날 기자는 무대 앞에서 촬영용 카메라를 들었다. 덕분에 시민들과 맨 앞줄에 앉은 세월호 유가족 분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필 수 있었다.
 
"저는 이제 두 돌이 막 지난 2살 아이의 엄마입니다. 고작 아이와 두해 함께 했을 뿐인데 너무나 많은 추억이 있고 잠깐 떨어져 있으면 아이의 얼굴이 아른거리고 아이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멤돕니다. 17년, 18년을 키운 자식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어머님, 아버님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저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습니다."
 
춘천에서 온 정주희 씨는 자한당의 훼방에 분노하며 울먹였다. 그 모습을 보는 세월호 유가족 분들의 눈가에는 어느덧 슬픈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눈물만은 아니었다. 집회에 참가한 모두에게는 앞으로 잘 될 수 있으리란 마음에서 우러나온 웃음도, 굳은 결의로 야무지게 꽉 다문 입술도 엿보였다. 장훈 위원장은 가장 앞자리에 앉아 '황교안 나경원 처벌하라!' 손피켓을 들어 보이며 연신 힘찬 표정을 지었다.
 
집회 마지막 순서로 밴드 타카피가 편곡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오자 모든 참가자들은 일어섰다. 촛불과 함께 "민중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세상"이라는 마음을 담은 팔뚝질 파도가 여기저기에서 일렁였다.
 
인간다움 포기한 자유한국당의 끝
 
"국민을 모욕한 자유한국당 심판을 위해,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 자유한국당과 같은 적폐세력을 청산하는 길이기에 촛불을 들었습니다. 오늘을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진실과 정의의 촛불을 더 넓게, 더 많이 들어 주십시오."
-이날 집회의 마지막 순서, 안순호 4.16연대 상임대표의 호소
 
이날 광화문은 둘로 나뉘었다. 거리로 50m 남짓 되는 바로 길 건너편에서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거부하는 인간다움이 결여된 장면이 펼쳐졌다. 그럴수록 우리는 바로 건너편의 촛불광장을 주시해야 한다. 광화문을 비롯한 곳곳의 촛불광장에서 '진실과 정의의 촛불'을 높이 들어야 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할아버지와 나란히 선 초등학생 여자아이는 '자유한국당 청산'이 적힌 머리띠를 하고 기분 좋게 '승리의 브이'를 보였다. '세월호 진실은폐 황교안 처벌'이 적힌 머리띠를 하고 촛불 모금에 나선 남자아이도 있었다. 남녀노소 따로 없이 저마다 원하는 목표는 한결같았다.
 
이 모든 마음과 행동은 유모차에 탄 아기, 앞으로 엄마·아빠가 될 청년들로도 옮겨갔다. 4.16연대가 행진대열을 앞장섰고 깃발을 휘두르며, 참가자들이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뒤따랐다. 집회 뒤 어깨를 활짝 펴고 광 아스팔트 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오는 여정. 행렬은 9시가 되어서까지 인근에 남아있던 자유한국당 무리들을 뚫고 거침없이 전진했다.

5월 25일은 촛불 시민들의 의지가 불타오른 날이었다. 동시에 '자유한국당의 끝'을 보여준 날이기도 했다. 국민의 눈과 귀를 더럽히고 인간다움을 저버린 자한당의 망동은, 그 자체로 공당의 자격을 내려놓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끝까지 책임자를 처벌하자." "우리 모두는 세월호의 증인입니다." "한 가지만은 확실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 더 절실하게 싸워야 합니다."
 
전국에서 현장을 찾은 모두 당연히 위와 같이 느꼈을 것이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은폐했음에도 반성은커녕 국민 우습기를 당연하게 여기는 적폐무리들. 이들은 스피커를 있는 힘껏 출력해 촛불의 의지를 꺾으려 시도했겠지만 오히려 국민의 적폐청산 의지를 돋웠을 뿐이다.
 
5000여명이 넘는 촛불 시민들이 펼쳐낸 질서와 뚝심은 자한당과 대비됐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촛불은 승리했고 자유한국당은 패배했다고 할 수 있다. 저들이 제아무리 물리력으로 제압하려 시도해도 말이다. 촛불과 세월호 기억공간을 품은 광장은 언제나 우리들의 '민주주의 무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주권연구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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