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70년사' 실종 사태... 박근혜 정부가 거부한 총장 때문?

1억원 들였지만 대학 도서관에도 비치 안해... 대학 측 "명예훼손 우려 때문"

등록 2019.05.28 19:06수정 2019.06.06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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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70년사가 지난해 10월 발간됐지만 도서관에서도 찾을 수 없어 논란이 되고 있다. ⓒ 조정훈

 
경북대학교 70년사가 사라졌다?

경북대가 지난해 8월 '경북대학교 70년사'를 발간했지만 책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본 사람도 극히 드물어 "사라진 경북대학교 70년사를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북대는 개교 70주년(2016년 5월 28일)을 1년 앞둔 지난 2015년 9월 '경북대학교 70년사 편찬계획'을 세우고 주보돈 사학과 교수(현 명예교수)를 편찬위원장으로 한 편찬위원을 위촉해 집필을 의뢰했다.

또 70년사 편찬예산으로 연구비 4000여만 원과 CD를 포함한 인쇄비 6000만 원 등 모두 1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이 예산은 70년사 1000권을 발행할 수 있는 금액이다.

주 교수는 편찬위원 구성에 대한 권한과 70년사에 들어갈 내용에 대해 간섭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위원장을 맡아 1년여에 걸쳐 집필한 후 2016년 9월말경 대학본부에 원고를 인계했다.

주 교수는 70년사 원고를 집필하면서 "자료를 잘 정리해 놓으면 100년사 작업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여느 대학사와는 다르게 역사서 서술방식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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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일부 동문들이 70년사가 발간되었지만 어느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며 학교 측에 인쇄해 배부할 것을 촉구했다. ⓒ 조정훈

 
하지만 대학본부는 무슨 이유에선지 70주년이 훨씬 지난 지난해 10월 100권만 발간했고 이마저도 일부에게만 공개했다. 또 출판 사실도 외부에 알리지 않아 대부분의 학교 관계자는 물론 학생과 졸업생마저도 출판된 사실을 몰랐다.

책을 발간한 날짜도 2018년 10월이 아닌 2016년 10월로 기재했고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각종 도서에 부여하는 고유 식별번호인 ISBN(국제표준도서번호·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을 받았지만 도서관은 물론 어느 곳에서도 책을 찾을 수 없다.


일부 경북대 동문들이 학교도서관뿐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에서도 도서가 검색되지 않자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했다.

경북대 졸업생인 추아무개씨 등은 지난 1일 학교 측으로부터 "(경북대 70년사를) 배포할 경우 개인 소송을 야기할 수 있는 등 많은 문제점이 있다"며 "전문가의 자문에 따라 최소 발간하여 자료용으로 활용하고 배포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의 답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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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70년사 내용 중 총장 선출 투표에서 김사열 교수가 1위를 차지했으나 박근혜 정부가 임명하지 않아 총장 공석사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 조정훈

  
이에 일부 졸업생들은 70년사에 총장직선제 폐지 과정에서의 학내 갈등, 간선제 도입 이후 교육부의 총장 임용 거부로 인한 총장 공석 사태, 교수회와 본부가 갈등을 빚었던 학칙 재개정 권한 문제 등의 민감한 내용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특히 당시 1순위로 총장후보에 선출됐지만 박근혜 정부에 의해 임명되지 못하고 2순위였던 김상동 후보가 총장에 임명되는 내용이 담긴 것이 껄끄러워 출판을 미룬 게 아니냐고 학교에 따졌다.

경북대 민주동문회와 70년사 정상화 동문모임 등은 개교 73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27일 성명서를 내고 "경북대 총장과 본관은 총론 부분에 명예훼손 부분이 있다며 변호사 2명을 대동해 수정을 요구했다"며 "집필위원장은 많은 부분을 수정 후 의견을 구하고 명예훼손이 없다는 의견을 받아 발간을 지속적으로 독촉했지만 위원장이 퇴직하기 전까지 발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역사학자의 고증에 의한 사실들임에도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2년여 출간하지 않았다"면서 "학자와 연구자들이 애써 지은 책을 함부로 수정하고 출판을 계획대로 하지 않는 것은 학문의 자유 침해이고 예산 불집행으로 인한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것은 경북대 70년사를 말살하고 강탈하고 사초를 태운 것과 같다"며 "70년사를 몇몇 총장과 보직교수들 개인의 판단으로 숨기지 말고 정상적으로 경북대도서관에 배치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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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졸업생들은 지난 27일 오전 경북대 73주년 기념식장 앞에서 경북대 70년사를 돌려놓으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 조정훈

  
주보돈 교수도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대학이 명예훼손과 전혀 관계가 없는데도 애초부터 배포를 안 하려고 한 것"이라며 "김상동 총장이 들어오면서 간행을 안 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주 교수는 "그동안 자기들이 요구하는 것을 완화해 수정해 주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또 주 교수는 "김 총장이 임명될 당시 대학 보직자들은 전임 총장이 임명한 사람들이었다"며 "원고에서 보직자들의 행위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부분도 있었다"고 밝혔다. 2순위 총장 선출 내용뿐만 아니라 보직자들에 대한 비판적 서술도 경북대 측 입장에서 달갑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북대 측은 70년사 내용 중 배부가 돼 나갈 경우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일부만 출판했다고 밝혔다.

이성준 기획처장은 "총장 부재시에 일어난 일로 몇 번 변호사 통해 검토했는데 배부될 경우 명예훼손이 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며 "거론되는 사람들 입장에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100부를 찍어 일부는 배부하고 대여했다가 반납 받은 일도 있지만 공식적으로 배부는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면서 "일부러 숨기는 것도 아니고 관심있는 분들은 다 봤다. 법적으로 문제 된다면 공개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대 70년사 #경북대학교 #주보돈 #총장직선제 #명예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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