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치약에도 표시된 녹색 점... 이건 몰랐다

[고기 없이 살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채식 국가, 인도 여행 Q&A

등록 2019.06.05 17:00수정 2019.06.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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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은 단지 동물이 불쌍해서 고기를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공장식 축산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해악에 맞서기 위한 운동이기도 합니다. 6월 5일 환경의 날, 하루 세 번 음식 앞에 설 때마다 이 땅의 무언가들을 헤아리는 채식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편집자말]
대학 휴학 후, 모아둔 돈으로 장기 여행을 계획하면서 세계 지도를 펼쳤다. 국외여행이라곤 3박 4일로 일본에 몇 번 다녀온 것이 전부인 내게 유럽, 호주, 북미 등의 선택지가 펼쳐졌지만, 내 눈이 향한 곳은 여자 혼자선 위험하다는 인도였다. 

3년 전 채식을 시작한 뒤로 여행할 때마다 난감했다. 밖에서 끼니를 때워야 할 수밖에 없는데 '고기' 없이 외식하기는 난도 높은 과제 같았다. 삼겹살, 곱창, 회... 심지어 비빔밥에도 소고기고추장이 올라갔다. 일본에서 파는 라멘마저 육수로 만들었다(관련기사: 채식주의자의 여행은 정말로 불행할까?). 

채식주의자인 나는 '세계 최대 채식국가'인 인도의 모습이 자못 궁금했다. 인도 인구의 80%인 힌두교도는 소를 숭배해 소고기를 안 먹지만, 이 가운데 30~40%, 즉 2~3억 명 정도는 고기를 전혀 안 먹는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인도의 영향으로 주변국인 스리랑카와 네팔도 채식에 친숙한 곳이다. 내가 여행의 목적지를 스리랑카와 인도로 정한 이유다.

인도에선 정말 채식이 편리할까? 어려움은 없을까? 채식 음식의 천국일까? 스리랑카-인도 여행 약 80일, 여행하며 알게 되거나 느꼈던 점을 가감 없이 소개한다.

인도에는 '고기 없는 도시'가 있다

Q. 인도에는 '채식주의'가 법적으로 정의돼 있다?

그렇다. 인도 법률엔 'vegetarian(채식주의자)'의 기준이 정의돼 있다. 일반적인 분류로 따지면, 계란 등의 난류는 먹지 않지만 우유, 치즈 등의 유제품은 먹는 '락토 채식'과 유제품, 난류 등 동물성 원료를 모두 소비하지 않는 '비건(vegan)'까지가 인도 채식의 기준이다.
 

한 레스토랑의 메뉴판. 비건 메뉴만 수십 가지다. 비건 피자만 해도 대여섯 종류는 된다. ⓒ 조윤진

 
Q. 인도에선 어떤 식당에 가도 채식 메뉴를 볼 수 있다?

그렇다. 세계 최다 채식 인구를 자랑하는 국가답다. 심지어 메뉴 선택지도 다양하다. '특별히 채식 옵션도 준비했어'의 느낌보다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당연한 듯한 느낌이다. 비채식 메뉴만을 파는 식당은 여행 내내 거의 볼 수 없었다.

사실 가장 놀랐던 것은 글로벌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전문점인 '서브웨이'였다. 인도의 서브웨이에는 채식 메뉴가 무려 8개나 있다. 일주일 동안 매일 새로운 걸 먹어도 하나가 남는다! 한국 서브웨이에 가면 항상 고민할 것도 없이 단 하나뿐인 채식 메뉴 '베지'를 주문하던 나로선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채식 메뉴와 비채식 메뉴를 만드는 곳도 분리돼 있으니 교차오염에 대해서도 안심할 수 있다.

Q. 인도에선 채식이 기본값이다?

답은 세모. 물론 어딜 가나 채식 메뉴가 있지만 채식주의, 채식 그 자체가 기본값은 아니며 여느 사회처럼 비채식인구가 더 많다. 그러나 호텔이든 호스텔이든 조식과 같이 불특정 다수를 위한 식사는 항상 채식이 기본값이라는 점은 감탄할 만하다.

눈앞에 놓인 정체불명의 커리를 먹어도 될지 고민하는 내게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yes, it is vegetarian!(네, 이건 채식 메뉴예요!)"이었다. 다만 유제품이나 달걀이 포함된 식사도 있을 수 있으니 비건이라면 주의하는 것이 좋다.

Q. 인도에는 '채식도시'가 있다?

그렇다. 도시 자체에서 고기를 팔지 않는 것이다. 식당에서 굳이 'vegetarian' 부분을 찾을 필요도, 사방에 육류가 전시된 것을 봐야 할 필요도 없다. 여럿이 식사를 할 때 괜스레 죄인이 된 것처럼 '저 사실 채식주의자라서요…'라며 말을 흐릴 필요도 없다. 식사나 사람 사이의 만남이 있을 때마다 긴장하거나 경계할 일이 많은 채식주의자에겐 그야말로 가장 안락한 곳인 셈이다. 실제로 채식도시 '리시케시'에서 머물렀던 2주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적인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도 북부의 '리시케시'에서 먹었던 다채로운 채식 음식. 유제품이 들어간 일부 메뉴를 제외하면 모두 비건이다. ⓒ 조윤진

 
한편, 평소에는 육류도 팔지만 일주일에 하루, 수요일에는 채식을 하는 도시도 있다.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이다. 불교도가 많은 이곳에선 수요일을 '고기 없는 날(meet free day)'로 정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많이 흐려졌지만, 여전히 이를 실천하는 식당이 많다. 채식이 어렵다면, 이 역시 좋은 대안이 아닐까.

'채식'이라고 무조건 믿고 먹으면 안 된다
 

물에도 베지테리언 표기가 되어 있는 인도 ⓒ 조윤진

 
Q. 인도에선 글을 몰라도 채식 제품을 살 수 있다?

그렇다. 인도는 모든 식품의 '채식/비채식 마크 병기'를 의무화하고 있다. 인도와 인접한 스리랑카, 네팔 등지에서도 이 마크를 흔히 볼 수 있다. 채식은 녹색 점으로, 비채식은 적색 점으로 표기된다. 비단 식품에만이 아니라 치약, 화장품, 비누 등의 상품에도 마크가 표기된 경우가 대다수다.

이러한 정책은 마트에서 일일이 성분표를 확인하는 수고를 덜어줄 뿐만 아니라 글을 읽지 못하는 외국인, 작은 글씨를 읽기 힘든 노년층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어디서든 녹색 점만 찾으면 되니 '혹시 내가 성분표를 잘못 읽은 걸까' 하는 불안감도 없다. 

Q. 인도는 비건 여행의 천국이다?

답은 '세모.' 앞선 설명을 보면 다소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유제품도 법적 채식으로 분류되기에, 흔히 보이는 '100% 베지테리언' 식당에 들어가도 치즈, 우유 등이 들어간 '논비건(non-vegan)' 메뉴가 있다. 상품에 녹색의 채식 마크가 있어도, 유제품 포함 여부는 알기 힘들다는 것 역시 난점이다.

사실 '세계 최저 육류 소비국' 인도는 동시에 '세계 최대 유제품 소비국'이기도 하다. 우유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암소 강간·착취에 반대하며 소비를 거부하는 비건, 락토 채식주의자는 여기저기서 흔히 보이는 우유, 버터, 치즈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보다 쉽다는 것엔 비교의 여지가 없다. 또한 관광객이 많이 유입되는 일부 지역에서는 점차 그 수요에 맞춰 '비건' 개념이 늘고 있기도 하다. 가까운 미래엔 더 긍정적인 확산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WE LOVE VEGAN." 인도 북부 '다람살라 박수' 식당에서 볼 수 있었던 표지판. 이곳에선 비건 메뉴가 흔하다. 관광객이 늘면서 비건의 개념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 조윤진

 
인도를 여행하면서 많은 부분이 편하고 좋았지만 씁쓸한 순간도 있었다. 유제품이 흔하게 소비되는 풍토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 소/돼지와는 달리 종교적으로 '선택' 받지 못해 고기로 소비되는 닭, 양 등을 보며 종교적 채식과 윤리적 채식의 간극을 느꼈다. 이는 아직까지 제대로 풀지 못한 고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인도 여행을 고민하는 채식주의자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추천한다. 비건 식당/채식 메뉴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는 유럽 몇몇 국가, 동남아 국가와는 또 다른, 세계 최대 채식국가의 놀라움을 몸소 즐겁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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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되 날카로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지금은 여행 중에 있습니다 :)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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