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그리울 때... 원조 블랙리스트 윤이상이 한 일

[어디까지 가 봤니?] '와락' 통영 홀로 여행 2일차

등록 2019.06.03 08:47수정 2019.06.0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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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락' 통영 홀로 여행 2일차는 서피랑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동피랑이 관광지로 이미 만개한 꽃이라면 서피랑은 이제 막 봉오리를 피우기 시작한 꽃이라고 할까? 최근 들어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관광객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동피랑에 비하면 아직은 사람들이 훨씬 적은 편이다. 한적한 여행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겐 동피랑보다 서피랑이 한결 여유를 느낄 수 있어 좋다.

통영의 지명은 통제영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이순신이 지키던 통제영을 중심으로 동쪽 포루가 동피랑, 서쪽 포루가 서피랑이다. 서피랑에 도착했을 때 서포루 위로 무지개가 걸린 상서로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서피랑, 서포루에 걸린 무지개 ⓒ 추미전

   
얼마 만에 무지개를 보는 것인지 기억조차 아득할 지경인데 무지개 모양이 마치 둥근 활모양을 닮은 듯하여 신비로웠다. 박경리의 글귀가 새겨진 만장이 펄럭이는 서포루, 그 위에 걸린 둥근 무지개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고 인상적으로 가슴에 새겨졌다.


서포루 일대는 관광객들이 거닐 수 있는 넓은 공원으로 조성돼 있었고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벤치가 곳곳에 놓여 있었다. 주민들이 직접 그림을 그렸다는 알록달록한 벤치에 앉아 영화의 한 장면같은 아름다운 풍경속에 나도 스며들었다.
  

서피랑에서 바라보는 통영 앞바다 ⓒ 추미전



동피랑처럼 서피랑에서도 통영 앞바다는 한 눈에 들어온다. 임진왜란 당시 이 포루에는 얼마나 긴장감이 넘쳐 흘렀을까? 혹시 왜선이 한 척이라도 우리 바다로 들어서지 않는 지 보초를 선 수군들은 눈을 부릅뜨고 앞바다를 주시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금 이 일대는 통영 풍경을 조망하는 최고의 뷰 포인트로 자리 잡았으니 역사의 아이러니하고 해야 할까?

서피랑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데는 박경리의 영향이 크다. 서피랑에는 박경리의 생가가 있고, 서피랑 일대 동네들은 박경리의 초창기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주요 작품 배경이다.
 

서피랑 골목길 안 벽돌집이 박경리의 생가 ⓒ 추미전

 
때문에 문학기행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면서 이 일대는 주목받기 시작했다. 박경리가 통영에 산 기간은 결혼하기 전까지 20여 년이다. 그나마 진주여고에 다닌 3년을 제외하면 20년도 채우지 못하는 기간이지만, 통영의 바다빛은 평생 그녀의 가슴에 진한 그리움의 낙관을 새겼다.
 
고향 통영은 어머니의 태와 같은 곳이예요, 죽을 때는 고향으로 갑니다. 통영은 음식, 기후, 역사, 기질이 너무 독특하고 특별한 곳이지요,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통영 사람들입니다. 통영처럼 예술가가 많이 배출된 곳이 없어요. 모를 부어놓은 것처럼 많지요. 모두가 놀라고 부러워 합니다.  - 박경리
  
박경리의 말처럼 통영에는 마치 모판을 부은 듯 많은 예술가들이 배출됐고, 통영을 잠시 스쳐 지나간 이들도 통영을 끔찍히 사랑했다. 시인 유치환, 김춘수, 백석, 극작가 유치진, 화가 전혁림... 그리고 무엇보다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작곡가 윤이상이다. 윤이상 기념관은 통영시내에서 미륵도 관광특구로 가는 길목에 있다.
 

윤이상 기념관 내부 ⓒ 추미전

  

작곡하는 윤이상 모습, 윤이상 기념관 ⓒ 추미전

   
몇 년 전 유럽에서 전 세계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현대 음악가 30인을 선정했을 때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던 작곡가 윤이상. 그러나 그는 남북한의 극심한 냉전 이데올로기 속에서 끝내 그리워하던 고향 통영에 돌아오지 못하고 독일 베를린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정부에 의해 귀국이 금지된 최초의 블랙리스트가 된 윤이상, 그는 고향이 너무 그리울 때면 독일에서 일본 나가사키까지 그 먼 거리를 달려 왔다고 한다.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한국과 가장 가까이 닿을 수 있는 바다까지 와 한국 쪽을 한참 바라보다가 돌아가곤 했다는 슬픈 이야기는 시대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당시 권력을 쥔 정부는 도대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의 어떤 점이 그렇게 위험하다고 판단해 그의 처절한 그리움을 묵살한 것일까?


일제 강점기 동경에서 유학을 한 윤이상은 비밀결사 일원인 것이 발각돼 옥고까지 치른다. 해방 후 통영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통영 시내 중고등학교의 교가 대부분을 작곡하기도 했던 윤이상은 더 넓은 세계의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1957년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뛰어난 천재 작곡가였던 그가 사상범이 된 사건은 1967년 동백림 사건이다. 당시 대통령 부정선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전 국민적 저항 움직임이 포착되자 정부가 조작한 동베를린 간첩단 일망타진 사건에 그가 포함돼 한국으로 강제납치 당한다. 한때 평양을 다녀온 사실이 문제가 된 그는 사형을 언도 받기에 이른다.
 

동백림사건으로 수감당시 윤이상 ⓒ 추미전

 
전도유망한 천재 작곡가에게 내려진 사형선고, 여기에 반기를 들고 나선 이들은 머나먼 타국의 동료들이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비롯해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윤이상의 구명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독일정부는 한국 정부에게 윤이상을 석방하지 않으면 차관까지 중단하겠다는 압박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방의 위대한 작곡가를 알아본 수준 높은 독일음악가들의 안목에 얼마나 감사한지. 한편으로는 그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정권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한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석방하게 되고, 석방되자마자 독일로 돌아간 그는 그때까지 미루던 독일 귀화를 결정한다.

누군들 조국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조국이 서운하지 않을까? 그러나 베를린에 있던 윤이상의 집을 보면 그리움의 크기가 서운함을 넘어선 듯하다. 윤이상 기념관 한 켠에 따로 지어진 베를린하우스, 이 곳은 독일 베를린에 있는 윤이상의 집의 거실과 서재를 재현해 놓았다. 집안의 가구들도 실제 윤이상의 집에 있던 물건들을 그대로 옮겨왔다.
 

윤이상 기념관 한 켠에 있는 베를린하우스, 윤이상이 독일에서 살던 집을 본 떠 만들었다. ⓒ 추미전

 

윤이상의 베를린 집 한켠에 놓여있던 장롱, 그의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준 장롱이다. ⓒ 추미전

  
독일 집 거실 한 켠에 놓여있던 장롱은 윤이상의 아버지가 통영에서 자란 나무로 직접 만들어준 것이라고 한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가족, 윤이상은 이 장롱을 마치 아버지 보듯 보고 닦고 눈물 짓지 않았을까? 장롱은 수십년의 세월에도 새 것처럼 윤이 났다.

뿐만 아니라 한국 족자에 한국 도자기, 마치 고향집인 듯 꾸며놓은 그의 이방의 집을 보니 고향을 향한 그의 그리움의 크기가 어느 정도 였을지 짐작이 된다. 그는 독일에서 서양음악에 안주하지 않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독창적인 음악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뮌헨 올림픽 개막 오페라 <심청>, 관현악곡 <광주여 영원히>,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 등 동양적인 요소와 서양적인 요소가 절묘하게 혼합된 독창적인 그의 음악에 세계는 열광했다.

무심히 흘러가는 듯 보이는 세월은 결국은 옥석을 가려내는 힘이 있다. 그의 귀국을 단호히 막던 권력자들은 세월 앞에 진실이 탄로나 허물어지고 윤이상은 이제 통영 사람이, 아니 대한민국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곡가로 자리매김했다.

베를린 시립묘지 한 켠에 묻혀 있던 그의 유해도 2018년 드디어 그가 간절히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다. 평생 '탁한 곳에 처해 있어도 물들지 않고 맑은 본성을 간직한다'는 뜻의 '처염상정'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는 윤이상, 매년 5월이면 그를 기억하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통영을 찾아 그의 생애를 다시 주목한다.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풍파를 헤치면서도 꿋꿋하고 의연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의 삶에 새삼 감동과 존경을 표하곤 한다.
   

윤이상 음악당 한 켠에 있는 윤이상의 묘, 탁한 곳에 있어도 물들지 않고 늘 맑은 본성을 간직하다는 뜻의 '처염상정'은 윤이상이 평생을 가슴에 새긴 글 ⓒ 추미전

 
 나는 통영에서 자랐고, 통영에서 귀중한 정신적, 정서적인 모든 요소를 내 몸에 지니고 그것을 나의 정신과 예술적 기량에 표현해 평생 작품을 써 왔습니다. 유럽에 체재하던 38년 동안 한 번도 통영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잔잔한 바다, 그 푸른 물색, 가끔 파도가 칠 때도 그 파도소리는 내게 음악으로 들렸고, 그 잔잔한 풀을 스쳐가는 초목을 스쳐가는 바람도 내게 음악으로 들렸습니다. - 윤이상
 
윤이상, 박경리, 유치환, 유치진, 전혁림... 이 자그마한 동네에서 그렇게 많은 예술가들이 탄생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들 모두에게 고향 통영이 그렇게 깊이 각인된 것은 더 놀라운 일이다. 통영의 어떤 점이 그들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 중심에 동피랑과 서피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면 좌우 양옆으로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집들과 밤새 거친 바다와 씨름하고 돌아오는 어선들, 항구를 진동하는 비린내와 악다구니하며 살아가는 갯가사람들, 경치로서의 바다가 아니라 삶의 현장으로서의 바다가 마치 영화 스크린처럼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 동피랑과 서피랑.

그 언덕에 앉아 일정한 거리를 가지고 내려다보는 치열한 삶의 현장은 촉수 예민한 예술가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짚는 사색의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사색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를 누군가는 음악으로, 누군가는 이야기로, 누군가는 그림으로 풀어낸 건 아닐까?

'와락 홀로' 떠나온 여행, 그러나 통영 여행은 혼자가 아니었다. 모판에 뿌려진 모처럼 많은 통영 출신 예술가들의 숨결을 느끼며 함께 동행한 더할 나위 없는 여행이었다.
 

동피랑에서 바라본 강구안 항구 ⓒ 추미전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저자의 개인 블로그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에도 실립니다
#통영여행 #통영 가볼만한 곳 #운이상 기념관 #동피랑과 서피랑 #통영명소 윤이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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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방송작가, (주) 바오밥 대표,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원장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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