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된 비밀정원'이라는 성락원, 모두 거짓이었나

역사 근거 희박한 성락원에 57억 예산 투입... 황평우 "문화재 지정 취소 행정소송 할 것"

등록 2019.06.01 11:30수정 2019.06.0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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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부터 6월 11일까지 한시적으로 일반인에게 개방된 서울 성북구 소재 '성락원'(명승 제35호)에 대해 '명승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제기됐다. 성락원이 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며 이러한 근거를 만드는 과정이 정당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영벽지 전경 ⓒ 서울시청 제공

 
개인 소유의 성락원은 4월 23일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일반인에게 공개하며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당시 서울시는 성락원을 한시 개방하며 보도자료를 내고 ▲서울에 남은 유일한 한국 전통 정원 ▲이조판서(현 장관급)를 지낸 심상응이 별장으로 사용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 이강(1877~1955)이 35년간 거주하며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된 별궁이라고 홍보했다. 대다수 언론은 별다른 검증 없이 이를 그대로 받아 썼다. 또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국내 3대 정원 가운데 한 곳으로 꼽았다거나 '1790년 조성돼 200년 만에 열린 비밀정원'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내용에 대해 근거가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의 주장이다. 

"문화재청, 성락원 검증할 기회 두 번 날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문화재 평론가)은 5월 27일 기자와 통화에서 "1992년에 문화재 지정을 앞두고 조사할 때 문화재청 측은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며 "'송석정'과 그 앞 연못도 실제 조성된 건 1953년이다. 의친왕이 35년간 기거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문화재청은 1992년 성락원을 역사적, 학술적 의미가 높다며 '사적 358호'로 지정했다가 2008년 명승 항목이 신설되면서 예술적 가치가 크고 경관이 뛰어나다는 의미로 '명승 35호'로 재지정했다.

이에 대해 황 소장은 "문화재청이 별다른 학술적 검증없이 소유 가문의 말만 듣고 1992년에 문화재로 지정했다"면서 "2008년 당시 새롭게 검증할 기회가 한 번 더 있었는데 그냥 '명승'으로 바꿔서 재지정했다. 두 번의 기회를 문화재청이 날려버린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송석정 전경 ⓒ 서울시청 제공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이와 같은 황 소장의 문제 제기를 별다른 반론없이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황지사(최초 조성자로 알려짐), 심상응(별장을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짐)에 대해 이들 인물에 대한 연구용역 중에 있으며 현재까지는 (황지사와 심상응에 관련된) 성락원 관련 사료 기록이 없다"고 답변했다.

또 '심상응이라는 인물이 이조판서를 했다는 근거가 있냐'는 질의에 대해서도 "현재까지는 '심상응'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이조판서를 했다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공식 기록물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라고 인정했다. 


성락원 내 정자인 송석정이 조선전통 양식이라는 근거가 있냐는 물음엔 "1993년 성북구가 발간한 <성북구지>와 1996년 서울특별시가 발간한 <서울문화재>에 따르면 송석정은 선비들의 연회장으로 사용되다가 일제강점기 말 불에 타 1953년에 복원한 건물"이라고 답변해왔다.

"조선시대 기록에 '성락원'은 없다"
 

1961년 6월 2일자 < 동아일보 > 기사 ⓒ 국사편찬위원회


학계에서도 성락원의 역사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 이원호 박사는 <명승 제35호 성락원의 정원 변화과정에 관한 연구>(한국전통조경학회, 2012) 논문에 "조선시대 기록 어디에서도 '성락원'이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고 적었다. 최근 쏟아져나온 언론 보도와 달리 성락원이 200년 이상 됐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성락원 바위에 새겨진 '글씨 6점' 일부가 추사 김정희와 황윤명의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시대부터 사대부가 찾아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긴 경치 좋은 곳이었음은 사실로 보인다. 이러한 점 때문에 성락원의 소유주였던 심상준 제남기업 회장은 1950~1960년대에 투자를 유치해 이곳에 대규모 종합 관광시설 조성을 하려 했다(<동아일보> 1961년 6월 2일자 보도).

성락원은 심 회장이 1950년 4월 성북동 일대의 땅을 사들이면서 조성됐다. 성락원이라는 이름도 '도성 밖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정원'이라는 뜻으로 이때 지어진 이름일 뿐 이전부터 명명된 것이 아니었다. 성락원을 대표하는 건물인 송석정과 그 앞의 연못 또한 심 회장이 생전에 조성했다. ​​​​​​현재 성락원은 심 회장의 며느리이자 한국가구박물관의 관장인 정미숙씨가 관리하고 있다.

전체 면적 1만6000㎡의 성락원은 현재 18개 필지로 쪼개져 있다. 심 회장의 후손들이 필지를 나눠 소유하고 있거나 일부 필지는 경매로 넘어가 외부인 소유가 됐다. 지금도 일부 토지는 경매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들 토지는 수년째 경매에서 유찰 중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성락원의 이름을 알려 가치를 높인 뒤 '수의계약을 성사시키려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황 소장은 "성락원은 현재 경매로 나와 있다. 유찰이 되면 결과적으로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면서 "왜 국가가 경매에 나온 개인재산을 갖고 이렇게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성락원이 조성되기 전 해당 터에 의친왕 이강이 별궁을 짓고 살았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1921년에 작성된 지형도에 '이강공의 별저'라는 표기와 연못, 건물 등 표기가 확인된다. 또 1917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임야조사부에서 발행한 임야소유대장에 따르면, 현재의 성락원 부지에 해당하는 경기도 고양시 숭인면 성북리 산 12번지의 임야 1만3500평이 같은 해 9월에 국유지에서 의친왕의 소유로 '양여'된 사실이 확인됐다. 

1927년 <동아일보>(12월 23일 자)는 '이강공 별저 화재(李堈公別邸火災)'라는 기사를 통해 그해 12월 20일에 일어난 화재로 의친왕의 별저가 안채 14칸을 포함해 상당 부분 전소됐다고 보도했다. 이후 1932년에 해당 부지는 의친왕의 아들인 이건에게 증여됐다. 이건은 1945년 해방 때까지 해당 필지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모모야마 겐이치(桃山虔一)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귀화해버리면서 필지의 소유권이 무효가 됐다.

이로 볼 때 의친왕이 이곳에 별궁을 짓고 살았던 것은 객관적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의친왕이 해당 부지에서 몇 년을 살았는지는 현존하는 사료로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 의친왕이 1917년 해당 토지를 양도받고 1945년까지 살았다고 해도 최장 28년이다. 1927년 화재 이후 다른 곳으로 옮겨 살았는지 아니면 해당 부지에 새집을 지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또 아들에게 증여한 1932년 이후 같은 곳에서 살았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아들이 거주했고 의친왕은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보는 것이 더 이치에 맞을 듯하다. 1930년에 조선총독부는 그가 가진 공족(公族) 지위를 아들 이건에게 넘겼다. 1955년 79세로 사망했을 땐 사망지가 종로구 사동궁이었다. 그가 '성락원에서 35년간 살면서 이곳이 독립운동의 본거지 역할을 했다'는 기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과장된' 이야기다.

"권력에 의해 문화재로 지정... 모두 점검해야"

앞서 논문에 따르면 성락원은 1960년대에 현대식 주택, 정원 내 시멘트 포장도로, 콘크리트 석축, 옹벽 등이 설치되면서 일부 훼손됐다. 이를 1920년대 의친왕이 살던 당시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2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현재 '복원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성북구청이 수행 중인 성락원의 연혁 등 역사적 근거에 관한 용역연구에도 1억 2000만 원이 소요됐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성락원에 지원된 연도별 보수공사비는 총 29억 3000만 원으로, 현재까지 총 57억여 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됐다.

1921년의 지형도만 남아 있을 뿐 도면이나 사진 자료 등이 없어 복원의 근거자료가 없는 데다가 역사적 근거가 확실치 않아 명승 문화재 취소까지 거론되고 있는 사유재산에 정부가 수십 억대의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옳은지 먼저 점검해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성락원 방문계획이 수립됐으나 지난 28일 백지화됐다. ⓒ 황평우


그뿐만 아니라 한시 개방이 끝나는 이틀 뒤인 6월 13일에 국회의원들의 성락원 방문 계획이 마련됐다가 최근 '백지화'됐다. 국회의원 방문계획에 대해 황 소장이 몇몇 의원실에 문제 제기하자 해당 의원실에선 "그런 논란이 있는지 몰랐다"면서 "방문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소장은 5월 29일 "국회에서 6월 13일에 방문한다고 했다가 백지화됐다. 문화재청장도 동행한다고 공문에 나와 있었다. 청장과 국회의원들이 왜 사유재산에 가는가"라며 "성락원 현장 조사한다고 하면서 왜 사립 가구박물관에 가려 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앞으로 성락원 문화재 지정 취소 행정소송을 할 계획"이라며 "권력에 아부해서 권력에 의해서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래서 1960년~1990년대에 지정된 문화재들을 전수조사하자고 제안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30일 문화재청은 해명자료를 내고 "최근 제기되는 '조선시대 철종 때 심상응'의 존재 여부와 '조선시대가 아닌 정자와 연못' 등에 대하여 이번 연구(종합정비계획 수립 용역)에서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관계를 확인할 예정이며, 그 결과를 관계 전문가와 문화재위원회 검토 등을 거쳐 필요할 경우 조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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